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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허정운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고작 이 정도 가지고? 난 아직 부부관계 의무에 대해선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지수현은 이를 악물었다. “꿈 깨!” “나랑 돌아가던지, 아니면 나랑 여기서 지내던지. 네가 골라.” 지수현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일주일이니 조금만 참으면 금방 지나가겠지 생각한 뒤 뒤를 돌아 길가에 세워진 마르바흐로 향했다. 허정운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짐 안 챙겨?” “일주일 뒤에 돌아올 건데 뭐, 챙길 필요 없어.” 허정운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굳어진 표정으로 차에 올라타더니 지수현과 말을 섞지 않고 서류를 들고 읽기 시작했다 옆에 앉은 지수현은 그의 손에 들린 서류를 흘깃 쳐다보더니 갑자기 표정이 바뀌었다. “MY 인수하려고?!” 허정운은 미간을 좁히며 그녀를 바라봤다. “전에는 내 회사 일에 대해선 관심도 없었잖아.” 지수현은 비웃음을 띤 채 답했다. “내가 관심 있다고 하면 나한테 알려줄 것처럼 구네.” 어젯밤 지수현이 출근한다는 얘기가 생각난 허정운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MY에 입사한 거야?” “응. 그러니까 MY 인수할 계획은 하루빨리 버려. 인수 못 할 거야.” 허정운은 덤덤하게 말했다. “돈만 있으면 불가능한 건 없어.” “그러면 해보던지.”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그녀는 MY를 팔 리가 없었다. 허정운은 지수현의 태도가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금방 MY에 입사했는지라 회사에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해서 그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MY에서 무슨 일 하고 있는데?” “청소도우미.” “…” 전혀 안 믿는다는 그의 표정에 그녀가 답했다. “못 믿겠으면 말고.” 회사를 갉아먹는 쓸모없는 해충을 치워내는 것도 청소니까. 잠시 침묵하다 허정운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 “MY 인사 팀 안목을 좀 길러야 할 것 같네. 아니면 이런 일을 왜 너한테 주겠어.” 지수현은 코웃음을 쳤다. “개랑 사람이 어떻게 보는 눈이 같겠어. 자기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걸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마.” 허정운은 눈썹을 치켜떴다. “내가 개인데 넌 내 와이프네. 그럼 넌 뭐야?” “…” 그녀는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더 이상 허정운을 대꾸하기 싫다는 태도였다. 허정운은 화가 난 그녀의 모습이 왠지 조금 귀여워 보여 목소리도 살짝 부드러워졌다. “다음 주 토요일 네 할아버지 생신이시지. 그때 나랑 같이 가.” 지수현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가서 우리 이혼하겠다고 말씀드리면 되겠다.” 허정운은 다시 차가워진 태도로 말했다. “지금 생신 축하해 드리러 가는 거야, 아니면 할아버지 화를 돋우러 가는 거야?” 지수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알려줄 일이잖아. 미뤄봤자 의미도 없고.” 허정운은 냉소를 지었다. “일단 100억부터 내오고 말해.” 그의 말투에는 비아냥이 담겨있었다. 지수현이 100억을 내올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는 눈치였다. 지수현은 시선을 내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시간 뒤, 차는 저택 앞에서 멈춰 섰다. 지수현이 문 앞에 가서 비밀번호를 눌렀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눈썹을 찌푸린 채 뒤를 돌아 몇 걸음 뒤에 서있는 허정운을 바라보았다. “비밀번호 바꾼 거야?” “응, 네 생일로.” 지수현의 눈동자에는 순간 무언가 스쳐갔다. 그녀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그를 바라봤다. “대체 내 생일인지 지연정 생일인지는 네가 잘 알겠지.” 그녀는 다시 뒤를 돌아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허정운은 미간을 좁힌 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가 비밀번호를 바꿀 때 속으로 생각한 건 분명 그녀의 생일이었다. 그녀와 지연정이 같은 날 생일이라는 건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지수현이 소파에 가서 앉자 허정운이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려버린 이혼합의서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잠시 시선을 멈추다가 다시 태연하게 눈길을 돌렸다. 허정운은 그녀의 맞은편에 가서 앉았다. “저녁은 뭐 먹을 거야?” 지수현은 휴대폰을 흔들어 보였다. “배달시킬 거야. 넌 맘대로 해.” 그러자 허정운은 인상을 찌푸렸다. “배달음식 몸에 안 좋아.” “너한테 먹으라고 안 했어.” “내 말은, 너도 먹으면 안 된다는 거야.” 고개를 숙이고 배달 앱을 살펴보던 지수현은 그 말에 멈칫하더니 불만 가득한 얼굴로 허정운을 바라보았다. “배달 아니면 뭐 먹어? 공기나 마시고 있으라고?” “직접 해 먹으면 되잖아.” 지수현은 말이 없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난 그럴 시간 없어. 네가 먹을 거면 네가 혼자 만들어 먹어.” 허정운은 아무 말 없이 냉장고를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에 지수현은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저 무심결에 말한 건데 정말 허정운이 음식을 만들러 갈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갈무리하더니 아까 골라둔 치킨을 시킨 뒤 위층으로 올라가 샤워를 했다. 그녀는 안방이 아니라 그 옆의 방에 들어갔다. 그 방에도 화장실과 욕실이 딸려있었다. 다 씻고 다시 내려온 지수현은 한참을 기다려도 치킨 배달이 오지 않자 앱을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앱에는 이미 배송이 완료되었다고 알림이 떴다. 그녀는 배달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20분 전에 이미 배송완료했다는 배달원의 말에 지수현은 미간을 좁혔다. 그녀는 일어서서 주위를 찾아보다 쓰레기통에서 자신이 시킨 치킨을 발견했다. 지수현은 전화를 끊고 화가 가득 난 채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 입구에 다다르자 허정운이 마침 찌개를 들고 나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부딪혀버렸고 허정운의 손에 들려있던 찌개도 흘러넘쳤다. 뜨거운 국물이 지수현의 몸에 닿으려 하자 허정운은 재빨리 그녀를 밀쳤다. 국물도 그의 팔에 쏟아졌다. 팔은 순식간에 빨개졌고 물집이 잡혔다. 지수현은 잠시 멍해지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가서 구급상자 가져올게.” 상처를 처리한 뒤 지수현이 구급상자를 정리할 때 허정운이 자신을 계속 쳐다보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아까는 미안해. 하지만 내 배달 음식을 버리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거야.” 허정운은 잠시 말이 없었다. “난 그냥 네가 건강한 음식을 먹었으면 한 거고, 너랑 같이 식사를 하고 싶었을 뿐이야.” 지수현의 표정은 여전히 싸늘했다. “됐어. 배달은 한 번 더 시키면 되니까. 허정운, 일주일 뒤에 이혼할 사인데 그동안은 거리를 두는 게 나을 거 같아.” 허정운은 미간을 좁히며 지수현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로 이혼해야겠어?” 지수현은 덤덤하게 그의 시선을 마주하며 단호하게 답했다. “응.” “지수현, 내 생각엔 우리…” 그녀는 허정운의 말허리를 자르더니 또박또발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마. 난 한 번 결정한 건 다시 번복 안 해. 일주일 뒤에 100억 너한테 줄 거니까 너도 마음 바꾸지 마.” 그러자 허정운의 일그러진 표정은 무시한 채 뒤돌아 자리를 떴다. 위층에 돌아간 뒤 지수현은 다시 음식을 시키지 않았다. 다시 내려가서 허정운과 마주치기 싫었던 것이다. 그녀는 휴대폰을 켜고 3년 동안 들어가지 않은 사이트에 들어가 로그인했다. 로그인을 하자마자 액정에는 금빛 동그라미가 뜨더니 그 아래는 “만월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뜻의 영어문장이 적혀있었다. 지수현은 곧바로 임무 카테고리 쪽을 살펴보았다. 일주일 내로 100억을 구하기 위해서는 이 사이트에서 임무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화면 왼쪽에서 대화창이 떴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대머리 독수리라는 ID였고 검은색 프사를 하고 있었다. 대머리 독수리: 설마 아이이스 본인이야? 아이리스: … 대머리 독수리: 본인 맞네. 3년 동안 안 나타나더니. 난 또 어느 임무에서 죽은 줄 알았지. 아까 네 프사에 표시가 뜬 걸 보는데 난 또 귀신이라도 든 줄 알았잖아. 대머리 독수리는 전에 그녀와 자주 임무를 나갔던 파트너였다. 하지만 매번 나갈 때마다 분장한 상태여서 현실 생활에서는 어떤 신분인지 서로 모르는 상태였다. 아이리스: 그동안 일이 좀 있었어. 대머리 독수리: 다시 돌아온 걸 보니 임무를 받을 생각인가 보네? 아이리스: 응. 대머리 독수리: 마침 내가 요즘 임무를 하나 받았는데 파트너가 한 명 필요해. 금액은 100억. 임무 성공하면 우리 둘이 반띵. 어때, 할래? 아이리스: 시간이랑 임무 내용 보내줘 봐.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은 기밀문서를 보내왔다. 지수현은 익숙하게 잠금을 푼 뒤 문서를 살펴본 후 대머리 독수리에게 OK라는 사인을 보냈다. 대머리 독수리도 특별히 답장하지 않고 이내 사이트를 나갔다. 잠시 후 지수현은 금액이 60억짜리 임무 하나를 더 받고는 그녀도 로그아웃했다. 이 두 임무를 완수한다면 100억쯤 나올 것이다. 마음속의 큰 짐이 내려앉는 듯한 기분을 느낀 지수현은 잠시 스케줄을 생각하다가 바로 잠을 청했다 이튿날 아침, 지수현은 현관 초인종 소리에 잠에서 깼다. 원래는 대꾸하고 싶지 않았는데 계속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마지막 남은 잠까지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지수현은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6시 5분이었다. 그녀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다 문밖에 있는 사람이 지연정인걸 발견하자 바로 미간을 좁혔다. 지연정도 그녀를 발견한 뒤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언니가 왜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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