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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지수현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아내가 해야 할 일들, 안 해도 될 일들 전부 걔가 다 해버렸는데 뭐. 둘은 그냥 혼인신고만 하면 되잖아.” 허정운은 지수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슬픔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찾아내고 싶었지만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조금도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허정운은 마음 한 구석이 아팠다. 그는 시선을 돌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이혼을 하지 않은 이상 너에겐 날 챙겨줘야 할 의무가 있는 거야!” 지수현은 조금 짜증이 난 데다가 허정운의 말에 대꾸도 하기 싫어 휴대폰을 꺼내 지연정의 연락처를 블랙리스트에서 찾아낸 뒤 문자 하나를 전송했다. 지 씨 저택. 샤워를 마치고 자려고 준비하던 지연정은 지수현이 보내온 메시지를 보고 순식간에 얼굴이 파리해졌다. 지수현 이 나쁜 년! 그녀는 빠르게 옷을 챙겨 입고 아래로 내려갔다. 마침 파티에서 금방 돌아온 한현영과 지진성을 마주쳤다. 그녀가 외출하려는 모습을 보자 둘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연정아, 이렇게 늦었는데 어디 가는 거니?” 지연정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한현영에게 말했다. “엄마, 정운 오빠가 취했는데 지금 혼자 집에 있대. 걱정돼서 한 번 가보려고.” 한현영은 지진성을 흘깃 쳐다봤다. 그에게서 아무런 표정변화가 느껴지지 않자 그제야 웃으며 지연정에게 말했다. “너무 늦었으니까 혼자 운전해서 가지 말고 엄마가 진 기사한테 말해놓을게.” “응, 고마워 엄마.” 지연정이 떠난 뒤 한현영은 골똘히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상황을 보니 허정운이 연정이한테 감정이 있긴 하나 봐요. 아니면 술을 먹었다는 것까지 연정이한테 말하진 않았겠죠.” 지진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연정이한테 잘 말해둬. 마침 허정운이랑 수현이 결혼한 일을 아는 사람도 많이 없으니 앞으로 새로 남자를 찾기에도 수월하겠지.” 지신성에게는 허정운과 결혼하는 사람이 지수현이든 지연정이든 딱히 상관이 없었다. 그의 회사에 이익만 가져다줄 수 있다면 말이다. 허정운과 이혼한 뒤 지수현에게는 지 씨 가문에 도움이 될만한 남편감을 다시 찾아서 소개해줄 것이었다. 둘은 가는 길 내내 말이 없었다. 저택 입구에 도착하자 안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고 허정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저택은 그와 지수현을 빼고 보통 방문하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늦은 시간에 말이다. “오늘 왔다 갔었어?” 지수현은 덤덤하게 대꾸했다. “문 열어보면 알겠지.” 허정운은 도어록 비밀번호를 눌렀다. 문을 열자마자 가냘픈 한 인영이 보였다. 그의 눈빛은 단번에 어두워졌다. “지수현, 너 지금 이게 무슨 뜻이야?” 지연정은 해장국을 끓여 그릇에 담아 식탁에 올려놓자마자 입구에서 전해오는 허정운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문 앞으로 향했다. 문 밖. 허정운은 화가 난 표정으로 지수현을 노려봤다. 마음도 쿵 하고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지수현이 이런 짓까지 할 줄은 예상을 못했던 것이었다. 지연정을 그들 집으로 부르다니! 이게 무슨 뜻인 줄 알고 저지른 건가? 지수현은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은 채 말했다. “술 많이 마셨다며? 그래서 네가 밤낮없이 보고 싶어 할 사람을 불러 너 돌봐주라고 했는데. 나한테 고마워해야지.” “너 다시 말해봐!” 허정운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지수현은 계속 그와 다툴 기분이 아니었다. “사람은 이미 불러다 놨으니까 난 더 이상 둘 방해 안 할게. 이혼합의서는 사인하고 퀵으로 보내주면 돼.” 지수현은 몸을 돌려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허정훈은 머리끝까지 차오른 화를 주체 못 하고 그녀를 쫓아가려는 순간 팔이 누군가에게 잡혔다. “정운 오빠… 내가 해장국 끓여놨는데. 들어와서 좀 먹어.” 지연정의 조심스러운 태도에 허정운은 미간을 좁히며 팔을 빼냈다. “연정아, 먼저 돌아가봐.” 지연정은 고개를 저었다. “정운 오빠, 나 안 가. 여기서 오빠랑 같이 있어줄 거야. 언니가 그러더라고, 오빠 많이 취했다고. 오빠 혼자 있는 거 마음이 안 놓여.” 허정운은 멈칫하더니 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사람이 너한테 비밀번호 가르쳐준 거야?” “응…” 허정운의 안색이 안 좋아진 것을 발견하자 지연정은 다급히 덧붙였다. “만약 내가 여기 오는 거 싫으면 다음부턴 안 올게. 그러니까 화내지 마.” 허정운은 눈을 감았다. “연정아, 나 혼자 있고 싶어.” “나 옆에서 그냥 조용히 있을게. 방해 안 할게.” “김 기사님 보고 너 데려다 달라고 할게.” “정운 오빠…” “말 좀 들어!” 지연정은 아래입술을 꾹 깨물더니 내키지 않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아픈 곳 있으면 꼭 나한테 전화해야 돼!” “응.” 지연정이 떠난 뒤 허정운은 문을 닫고 거실로 들어갔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이혼합의서를 발견한 그의 눈에는 한기가 스치더니 재빨리 다가가 합의서를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이혼? 꿈 깨라지! 이튿날 아침. 지수현이 사무실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양건덕이 그녀를 찾았다. 그는 분노가 가득 서린 얼굴로 지수현을 향해 말했다. “지 대표님, 제 수하 사람들 절반을 해고시키신 건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지수현은 태연하게 한쪽 눈썹을 치켜들고 말했다. “양 사장님, 진정하시죠. 인사 팀에 다시 직원을 채용할 때 제일 먼저 양 사장님이 관리하는 팀을 고려하도록 말해놓겠습니다.” 양건덕의 얼굴은 붉으락 푸르락 해졌다. 그런 뜻이 아니란 걸 알면서! 그가 들여보낸 그의 친척들 전부 지수현에 의해 해고되었다. 덕분에 아침부터 그의 휴대폰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전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묻는 전화였다. 원래라면 양건덕은 공사장에서 벽돌이나 날랐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지수현을 알게 됐고 집이 가난하던 양건덕은 지수현에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지수현은 그렇게 MY의 주식 10%를 그에게 넘겨준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양건덕은 점점 더 지수현에 의해 규모가 커져가는 MY를 보며 양건덕에게 매년 떨어지는 이윤도 20억을 넘겼다. 그제서야 양건덕도 MY의 지분 10%가 얼마나 큰돈인지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양건덕도 지수현에게 감사함만 느꼈는데 갑자기 떨어진 거금이 그의 마음을 변화시켜 버렸다. 친척과 고향사람들의 아부에 양건덕은 날이 갈수록 더 우쭐댔다. 자신이 내키는 대로 친척들에게 회사에서 자리 하나 만들어주는 권리도, 그런 친척들에게서 우대를 받는 느낌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지수현이 그의 친척들을 전부 해고해 버렸으니 그들 앞에서 체면을 구겨버리는 셈이 되어버렸다. 그는 그런 지수현에게도 불만이 생겼다. “지 대표님, 다시 직원을 모집한다고 해도 시간이 걸리는 거 아닙니까? 게다가 신입 직원들이 어떻게 지금 잘린 직원들보다 더 수월하게 일을 해내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회사를 나가면 제가 지금 관리하고 있는 팀들도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고요!” 지수현은 손에 들린 서류를 내려놓고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다 꿰뚫어 본다는 그런 눈빛이었다. 왠지 모르게 양건덕은 그녀와 시선을 맞추기가 두려워졌다. 자신의 마음을 들킬 것 같았다. 지수현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양 사장님이 말해보시죠. 어떻게 해야 좋을지.” 양건덕은 다급히 답했다. “지 대표님도 돌아오신 지 얼마 안 되었고 회사 업무에 대해서도 아직 익숙하지 않으시니 먼저 회사 운영 상황을 알아보시죠. 각 부서에서 하는 업무들을 알아본 뒤에 다시 해고를 고려해 보시는 거 어떠신가요?” 잠시 침묵한 뒤 지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 사장님 말도 일리가 있네요.” 그 말을 들은 양건덕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렇게 쉽게 속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앞으로도 회사에 사람들 계속 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바로 자음, 지수현의 말에 그는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마침 양 사장님이 여기 계시니 한 번 말해보시죠. 지금 관리하고 있는 부서들 몇 년간 어떤 일을 했는지, 내가 해고한 그 직원들이 매일 뭘 하고 있었는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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