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82화
그쪽에서 구은정의 짧은 침묵이 흘렀고, 두어 초 뒤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바로 갈게요.]
방연하는 기쁜 듯 환하게 말했다.
“네, 기다릴게요!”
전화를 끊은 연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는 일부러 여진구의 굳어진 표정을 외면한 채 임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온대. 집에 있었나 봐.”
유진은 무심코 입술을 깨물었다. 문득 긴장된 기분이 밀려왔다. 막상 다시 마주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스쳤다. 역시 어떤 일은 한 번 벌어지고 나면,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몇 분 뒤 누군가 문을 두드렸고, 연하가 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유진아, 네가 나가 봐.”
유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일어나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자, 익숙한 남자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일주일 가까이 지나 있었지만, 마주하는 순간 그보다 더 긴 시간이 흘렀던 것만 같았다. 시선이 부딪치는 찰나, 유진은 본능적으로 숨을 멈췄다.
은정은 막 퇴근한 듯 흰 셔츠에 짙은 색 슬랙스를 입고 있었다. 특유의 차가움은 여전했지만, 어딘가 더 단정하고 안정된 느낌이 감돌았다. 깊은 눈동자엔 이전보다도 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은정은 한 손에 와인 한 병을 들고 있었고, 살짝 웃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들어가도 될까?”
유진은 얼굴이 붉어지며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물론이죠.”
연하가 다가와 반갑게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은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정중한 말투로 답했다.
“안녕하세요.”
모두 함께 식탁 쪽으로 이동했다. 70평 남짓한 넓은 집답게 주방은 크고 여유로웠고, 열 명이 넘는 인원이 모이기에도 충분했다.
연하는 효성과 추연설에게 은정을 소개했다. 진구는 모르는 척 무시했고, 연하는 일부러 유진과 은정이 나란히 앉게 자리를 배치했다. 진구는 그 의도를 모를 리 없었고, 냉소를 흘렸다.
“은정 씨가 가져온 술, 가격이 장난 아니네요. 오늘 유진이 덕분에 억대짜리 술 맛보게 되네요.”
연하는 웃으며 주방으로 가서 와인병을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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