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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손톱이 거의 손바닥에 깊숙이 파고들었으나 강희진은 시선을 늘어뜨리고 원망을 감추었다. “상궁이 오늘 안에 언니의 옷을 빨아야 한다고 했어요. 저의 마당에 우물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옆채에 가서 빨 수밖에 없었어요...” 강원주는 이를 악물고 강희진을 노려보면서 싸늘한 목소리로 상궁에게 물었다. “저 말이 다 사실이란 말인가?” 상궁은 잠깐 멈칫했다. 강희진을 찾았을 때 옆채에서 빨래하고 있었던 건 사실이라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마, 송구하옵니다. 폐하께서 납시실 줄은 정말 몰랐사옵니다. 마마께서 옷을 갈아입으셨기에 빨래를 시켰을 뿐이옵니다...” 그 말에 강원주는 울화가 치밀었으나 강희진에게 화풀이를 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는 어디를 가든 꼭 먼저 상궁에게 고하거라.” 그녀는 분노를 억누르면서 강희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오늘 일은 일단 용서하겠다. 또 말썽을 일으키면 그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강희진은 바닥에 꿇어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잘못했어요.” 강원주는 또다시 주먹을 꽉 쥐었다. 얼어서 조금 붉어졌지만 여전히 가늘고 예쁜 강희진의 손을 보니 질투와 원망이 다시 한번 솟아올랐다. 두 사람의 얼굴이 많이 닮긴 했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강희진에게는 요염한 기운이 감돌았다. 찡그리거나 웃는 모습 하나하나가 사내들의 혼을 빼놓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강희진은 어릴 적부터 궂은일을 했고 햇볕에 그을리면서 자랐는데도 피부가 뽀얗고 부드러웠다. 애지중지 자란 강원주보다 훨씬 더 예뻤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 강원주는 냅다 발로 강희진의 손가락을 짓밟았다. 강희진은 고통스러움에 얼굴을 찌푸리고 신음을 내뱉었다. 옆에 있던 춘희가 급히 다가와 강원주를 말렸다. “마마, 진정하시옵소서. 이 여인은 폐하를 모셔야 하옵니다. 만약 폐하께서 상처라도 보시면...” 강원주는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결국 발을 떼었다. 강희진의 손가락이 퉁퉁 부어올랐고 여린 피부가 다 벗겨졌다. “이만 방으로 돌아가거라.” 강희진은 비틀거리며 일어선 후 손을 감싸 쥔 채 방으로 돌아갔다. 강원주의 반응만 봐도 오늘 선우진이 쌀쌀맞게 대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설령 선우진이 아무 낌새도 눈치채지 못하고 강원주더러 시중을 들라고 해도 석녀인 그녀가 어찌 감히 승은을 입을 수 있겠는가? 이번 일로 강원주는 분명 며칠 동안 냉대를 받을 것이다. 그러다가 조바심을 느낄 때면 자연히 선우진을 다시 유혹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감시하는 눈이 많은 명광궁에 가만히 갇혀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생각에 강희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손의 상처를 치료한 다음 옷을 입은 채 침상에 누웠다. ... 아니나 다를까 그 후 며칠 동안 선우진은 다시 명광궁에 오지 않았고 강원주를 찾지도 않았다. 결국 초조해진 강원주는 강희진을 주전으로 불러들였다. “폐하께서 그날 일로 마음이 상하신 것 같다. 내가 알아봤는데 오늘 밤 상서방에서 상소문을 처리하신다고 하더구나. 가서 잘 모시고 내가 다시 총애를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강희진이 순종하는 척하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강원주가 이만 나가보라고 손을 젓자 강희진이 갑자기 입술을 깨물었다. “언니, 이대로 폐하를 뵈러 가면 딴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여 오히려 폐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어요. 음식을 만들어 가져가면 명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녀의 말에 강원주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으나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네 그 여우 같은 어미와 아주 똑 닮았구나. 사내를 홀리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는. 정말 천생이 상스러운 계집이로다.” 그녀는 강희진을 쏘아보면서 말했다. “그렇게 하거라. 만약 일을 망쳤다간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다.” 강희진은 일부러 겁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궁과 함께 물러갔다. 부엌에 도착한 후 상궁이 상황을 설명하자 곧 그녀의 지시대로 식자재를 가져왔다. 강희진은 흰목이버섯을 물에 불려 약한 불로 천천히 끓여 흰목이버섯찜을 만들었다. 그리고 솥에서 꺼내려던 그때 몰래 품에서 비단 주머니 하나를 꺼내 옅은 황색 가루를 쏟아 넣었다. 흰목이버섯찜이 완성됐을 무렵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강희진은 화비의 옷을 갖춰 입고 춘희와 함께 상서방으로 향했다. 그녀를 본 호위병이 서둘러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다. “화비마마께 인사드리옵니다.” “예는 됐고 폐하를 뵈러 왔다. 안으로 들어가 아뢰거라.” 그녀는 붉은 옷을 입고 밝고 화려한 자태를 뽐냈다. 눈빛 하나만으로도 사람의 혼을 빼놓을 듯했다. 눈웃음을 지으면서 쳐다보는 그녀에게 넘어가지 않을 사내가 있을까? 이런 절세미인은 오직 황실에서만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잠깐 넋을 놓고 쳐다보던 호위병은 문득 주제넘었다는 걸 깨닫고 서둘러 무릎을 꿇었다. “마마, 잠시만 기다리시옵소서... 소인 바로 아뢰겠나이다.” 강희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 호위병이 나와 공손하게 말했다. “마마, 안으로 드시옵소서.” 강희진은 그제야 춘희에게서 흰목이버섯찜을 받아 들고 상서방으로 들어갔다. 선우진은 굳은 얼굴로 상소문을 처리하고 있다가 인기척에 고개를 들어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은 고맙다만 밤이 깊었다. 가져온 건 여기 두고 돌아가거라.” 역시나 아직 화를 내고 있었다. 강희진은 문을 닫고 시선을 늘어뜨린 채 다가갔다. 그러고는 흰목이버섯찜을 한 숟가락 떠서 선우진의 입가에 가져갔다. 선우진은 쓰던 글을 멈추고 그녀를 쏘아보았다.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어있었다. “상소문을 오랫동안 보셨으니 많이 지치셨을 것이옵니다...” 그녀의 하얗고 가느다란 팔목이 선우진의 얼굴을 스쳤다. “이 흰목이버섯찜은 소첩이 손수 만든 것이오니 식기 전에 드시는 것이 좋사옵니다. 폐하, 한 입 드셔보시겠사옵니까?” 그녀는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똑바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열로 단련된 강철도 녹아내릴 만큼 부드러웠다. 선우진은 붓을 쥔 손을 움켜쥐었다가 결국 입을 벌렸다. 하지만 그가 문 건 숟가락이 아니라 부드럽고 연약한 그녀의 팔목이었다. 갑작스러운 아픔에 강희진은 낮은 신음을 내뱉었고 숟가락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겨우 버텼다. 선우진은 그녀의 손을 감싸 쥐고 그릇을 탁자 위에 올려놓은 후 그녀를 잡아당겼다. “단지 이걸 가져다주려고 온 것이냐?” 그의 품에 안긴 강희진은 허리에 감긴 단단한 팔을 느꼈다. 쑥스러운 나머지 순식간에 귓불까지 붉어졌다. 선우진을 유혹하러 온 건 맞지만 여긴 상서방인데... ‘됐어. 전생에서도 이런 황당한 짓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닌데.’ 강희진은 선우진의 허리끈을 붙잡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렇사옵니다...” 선우진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고작 이런 식으로 짐에게 먹이겠다는 것이냐?” 그녀는 그의 뜻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올려다보았다. 선우진은 그녀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눈빛을 즐겼다. 순간 흥미가 생긴 그는 그녀의 볼을 잡고 따뜻한 흰목이버섯찜을 그녀의 입에 넣었다. 강희진은 사레들린 나머지 기침했고 두 눈이 벌게졌다. 그러다가 기침이 멈추기도 전에 선우진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선우진은 그녀의 턱을 잡고 달콤함을 조금씩 빨아들였고 손으로 가느다란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입안 가득 퍼진 달콤함이 묘하게 사람을 홀렸고 은은한 계화 향과 단향이 전해졌다. 그러다가 품 안의 여인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놓아주면서 쉰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을 넣었기에 이리 단 것이냐?” 강희진은 선우진의 품에 기대어 몇 번 기침한 뒤 허리띠를 붙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의 어머니께서 만드신 계화 가루인데 은은한 단맛이 돌아 소첩이 어릴 적 가장 좋아했던 것이옵니다. 하여 폐하께도 드리고 싶어 만들어 보았나이다... 입맛에 맞으시옵니까?” 선우진은 그 말을 마음에 새겼다. 입가의 미소가 더욱 깊어졌고 뜨거운 손바닥으로 그녀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입맛에 맞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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