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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진가희는 밝은 대낮에 하도훈이 이런 사적인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걱정해 주는 것이긴 하지만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다. 진가희는 한순간 자리를 떠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연고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진가희는 얼굴이 빨갛게 변한 채로 한동안 침묵했다. 어느새 귀 끝까지 벌겋게 물이 들었다. 진가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린 하도훈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냥 일반적인 약일 뿐이니까 곤란해하지 않아도 돼." 하도훈의 말에 진가희는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재빨리 연고를 받아들었다. "나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올게." 하도훈은 손을 거두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응, 그래." 진가희는 손에 들고 있는 연고가 뜨거운 감자처럼 느껴졌다. 버릴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계속 들고 있기에도 적합하지 않았다. 하도훈이 병실에 돌아왔을 때, 진이나는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진이나는 병에 걸린 지금도 화장을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깔끔하게 자신을 단장했다. 부모님에게 둘러싸여 애교를 부르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진이나는 한눈에 봐도 즐거운 여자아이로 보였다. 진이나에 비해 진가희는 언제나 조용했다. 사실 하도훈은 진이나에게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진즉 알고 있었다. 진가희는 사생아라 예쁨을 받지 못했다. 진이나와 약혼하던 날, 진씨 집안으로 갔을 때 만났던 진가희가 몇 살이었던 것인지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아무튼 나이가 어렸던 것은 분명하다. 그녀는 존재감 없이 멀리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하도훈은 그 뒤로도 몇 번 진가희를 만난 적이 있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멀리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진이나와 달리 진가희는 진씨 집안에서 투명 인간과 같은 존재였다. 하도훈은 진가희가 희고 가냘프다는 대체적인 이미지만 기억했다. 하도훈은 옆에 늘어뜨린 손을 짓눌렀다. 흰 피부는 만지면 쉽게 자국이 남았다. 마치 나뭇가지에 피어있는 꽃처럼 움켜잡으면 꽃물이 흘렀다. 진가희는 저녁에 고희숙과 진기천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들어간 그녀는 하성그룹에 들어갔다는 우지성의 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를 본 진가희는 참지 못하고 소리 없이 웃었다. 그러다 멈칫 표정을 굳히고 핸드폰을 꽉 움켜쥐었다. 이때 고희숙이 방문을 노크했다. 문에 기대어 있던 진가희는 노크 소리를 듣고 몸을 긴장하며 핸드폰을 쥔 채로 문을 바라보았다. 고희숙은 진가희가 아직도 우지성과 연락하고 있을까 봐 걱정되었다. "가희야, 아직 안 자?" 진가희는 눈물을 닦고 재빨리 대답했다. "네, 곧 자려고요." 진가희는 서둘러 방의 불을 껐다. 방안의 불이 꺼진 것을 본 고희숙은 그제야 문 앞을 떠났다. 그 후 며칠 동안 진가희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도훈과는 연락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우지성을 마주치는 일도 없었다. 허지연의 말로는 최근 업무로 바빠서 학교에 올 시간도 없다고 했다. 하여 진가희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쉬었다. 전과 다름없는 며칠이 지나고 진가희는 수업을 마친 후, 다급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자마자 매니저가 다가와 룸에 손님이 왔다며 진가희에게 서빙을 가라고 했다. 진가희는 술을 챙겨 룸으로 가서 문을 노크했다. "안녕하세요. 주문하신 술 도착했습니다." 옆에 앉은 사람의 말에 집중하고 있던 하도훈은 진가희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드는 순간 진가희의 얼굴이 보였다. "가희?" 하도훈은 눈썹을 찌푸렸다. 진가희가 입고 있는 옷은 이 호텔의 작업복이었다. 상반신은 튜브탑에 허리선을 강조한 정장 외투를 입고 있었고 하반신에는 엉덩이를 감싸는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가늘고 긴 다리가 검은 스타킹에 감싸인 채 아래로 쭉 뻗어 있었다. 머리카락을 전부 올려 묶어 희고 매력적인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순간 하도훈을 제외하고 룸 안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진가희를 훑어보았다. 마치 맹수가 눈앞에 있는 좋은 먹잇감을 응시하는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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