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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나 좋아해?

김유정은 우악스럽게 엘리베이터로 끌려들어 간 후 곧바로 제일 위층의 스위트 룸까지 데려가 졌다. 문이 열리고 연수호는 그대로 그녀를 침대 위에 던져버렸다. “이제는 쌈박질까지 해?” 연수호의 차가운 목소리가 룸 안에 울려 퍼졌다. 김유정은 침대에서 윗몸을 일으키고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남자를 향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물었다. “당신이야말로 또 여자랑 노닥거리려고 여기로 왔니?” 제호 클럽은 재벌 2, 3세들이 자주 오는 곳이니만큼 업소녀들의 외모도 다 연예인급이었다. 연수호는 가볍게 웃더니 앞으로 두어 걸음 다가가 김유정의 몸 옆에 한 손을 내려놓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았다. “내가 여자랑 노닥거리는 거 봤어?” 갑자기 거리가 가까워지는 바람에 연수호 특유의 시원한 향수 냄새가 그대로 그녀의 코를 간지럽혔다. 게다가 연수호는 지금 몸을 앞으로 기울인 상태라 풀어진 셔츠 단추 사이로 그의 쇄골과 그 위에 새겨진 흔적들이 훤히 보였다. 이건 간밤 그녀가 직접 새겨 넣은 흔적이었다. 김유정은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려버렸다. 아까 연수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정아진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이 또다시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당신 말이야. 정말 정아진을 좋아하기라도 하는 거야?” “안 좋아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온 그의 대답에 김유정은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왜 왔어?” “일 얘기하러.” 연수호는 그녀의 얼굴을 다시 옆으로 돌려 자기와 시선을 마주하게 했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궁금한 건 여기서 끝이야?” 김유정은 연수호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왜 당신 곁에서 맴돌게 내버려 두는 건데?” 그 말에 연수호의 눈이 예쁘게 휘더니 더 크게 웃었다. 김유정은 그 웃음에 아주 잠깐 넋이 나가버렸다. 연수호는 여전히 그녀의 취향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남자였다. 김유정은 3년 전에 그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를 좋아했다. 말하자면 첫눈에 반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그 누구에게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얼굴이 취향인 건 맞지만 연수호를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예쁜 얼굴로 개만도 못한 말을 꺼내는 지금 같을 때는 특히 더. “나도 너 안 좋아하는데 너랑 결혼했잖아.” 김유정은 화가 치밀어 올라 그를 차버리려는 듯 다리를 힘껏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연수호가 손으로 그녀의 다리를 제압에 다시 침대에 고정했다. 김유정은 다리가 막히자 이번에는 손을 들어 그를 때리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연수호에 의해 손이 잡혀버렸다. 압도적인 힘 차이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입을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인간으로 대해주지 않았다고 정말 인간이길 포기라도 한 거야?” 그녀는 연수호가 평소처럼 입술을 깨물 줄 알고 말을 마친 다음 바로 입을 꾹 닫았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연수호는 입술이 아닌 그녀의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김유정의 손바닥은 유리에 베인 건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까 술병을 들었을 때 상처가 난 건가?’ 그녀는 아까 분노로 잠깐 이성을 잃었던 터라 지금까지 아픈지도 몰랐다가 연수호가 이렇게 손바닥을 뚫어지게 바라보자 그제야 슬슬 아픔이 느껴지는 듯했다. 연수호의 뜨거운 눈빛에 김유정은 손을 빼려고 했지만 쉽게 허락되지는 않았다. 연수호는 김유정의 손목을 잡더니 그대로 고개를 숙여 상처 부위에 자기 입술을 가져갔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김유정은 정신이 아득해지며 마치 꽁꽁 얼어버린 듯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뜨겁고 축축한 무언가가 아주 조심스럽게 상처를 핥은 느낌이 아주 정확하게 전해졌다. 김유정은 시선을 들어 완벽하게 세팅된 연수호의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문득 이여진의 말이 떠올랐다. 이여진은 연수호가 어릴 때부터 혼자 해외에 있었다고 했고 무척이나 엄격한 아버지와 아픈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고 했다. 또한 연수호는 사람이 주는 따뜻함을 모르고 자라 지금의 이런 성격이 되었다고도 했다. 김유정은 그 말을 가만히 곱씹어보다가 마치 뭔가에 홀린 듯 왼손을 들어 연수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이에 연수호는 흠칫하더니 이내 거칠게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고는 다시 허리를 세우고 고압적인 자세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개야?” 김유정은 아직도 따뜻한 감촉이 그대로 남아있는 듯한 자신의 오른손을 한번 쳐다보다가 이내 다시 시선을 돌려 연수호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먼저 개처럼 행동했잖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상처를 핥는 행동 같은 건 하지 않는다. 그녀의 말에 연수호는 얼굴을 무섭게 굳혔다. “지금이라도 그 입 꿰매줘?” 그러자 김유정이 피식 웃었다. “그럼 더 이상 나랑 키스 못 할 텐데?” “그걸 내가 아쉬워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연수호는 말을 마친 후 호텔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소독할 것들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김유정은 그런 그를 보며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당신 나 좋아해?” “미쳤어?” 연수호가 빠르게 답했다. “그럼 왜 주인이 아파서 속상한 강아지처럼 낑낑거리는데?” 김유정이 그가 핥은 손바닥을 내밀어 보이며 물었다. 그러자 연수호가 빈정거리는 얼굴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머리가 잠깐 어떻게 됐나 보지. 아니면 죽을 때가 됐다던가.” 그 말에 김유정은 웃음을 거두어들이고 하이힐을 벗어 그를 향해 던졌다. “그럼 차라리 지금 빨리 죽어버리지 그래?” 연수호는 하이힐을 가볍게 피하고는 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문을 열고 나가기 전 발 옆에 있는 그녀의 신발을 멀리 던져버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김유정은 유유하게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 제호 클럽의 복도.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 몇 명과 클럽 매니저들은 지금 하나 같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자세를 바로 하고 양옆 벽에 몸을 딱 붙이고 있다. 그때 누군가의 구두 소리가 들려오고 남자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연수호는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고 다른 한 손에는 담배를 쥔 채 의미 모를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걸어왔다. 룸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 보자 남자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중 제일 젊은 남자는 여전히 두 손으로 자신의 가랑이 사이를 감싼 채 새우 자세를 하고 있었다. 연수호는 앞으로 발걸음을 옮겨 그 젊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나를 안다고?” 공기마저 얼려버릴 것 같은 싸늘한 음성이 룸 안에 울려 퍼졌다. 이에 유명한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넌 또 뭐야? 내가 너 같은 걸 어떻게 알아! 내 뒤에는 유안 그룹이 있어. 나는 너 같은 게 함부로 내려다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는 말을 마친 후 뒤에 있는 클럽 매니저를 바라보았다. “뭐 하고 있어? 빨리 구급차 부르지 않고!” 매니저는 그 말에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얼굴로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연수호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내뱉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표정을 바꾸더니 손에 든 담배를 그대로 유명한의 손등에 꾹 눌러 꺼버렸다. “악!!” 유명한의 비명이 룸 밖에까지 울려 퍼졌다. 연수호는 자리에서 일어 일어난 후 구두 굽으로 마치 개미를 밟듯 유명인의 얼굴을 세게 밟아버렸다. “내가 뭐냐고 했지? 연수호, 그게 내 이름이야.” 방금까지 발버둥 치던 유명한은 몸이 굳어버린 듯 멈칫하더니 이내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유안 그룹의 대표가 연수호라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그 연수호가 미친 사이코같은 인간이라는 것 역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유안 그룹 대표가 왜... 여기에...’ 유명한은 이곳에서 연수호와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표님, 구급차 부를까요?” 매니저의 말에 연수호가 피식 웃었다. “이 정도 상처로 구급차를 부르면 쓰나. 그쪽은 다른 환자들이 이런 것 때문에 치료 순서가 밀려도 상관없나 보지?” “제가 실언했습니다.” 매니저는 깍듯하게 고개를 숙인 후 옆에 있는 직원들에게 말했다. “이 룸으로 술 더 가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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