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강설아는 자신이 박강우의 아내라고 당당히 말하는 강은영을 보며 속으로 말못할 질투가 치밀었다.
그녀는 잔뜩 서러운 얼굴을 하고 진미선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안 그래도 화가 잔뜩 나 있던 강준형은 강은영이 박강우 이름까지 꺼내자 자존심이 확 상했다.
“박 대표로 지금 이 아비를 협박하는 거니? 박 대표는 내 사위야. 사위가 장인한테 뭘 할 수 있는데!”
“협박하면 뭐가 어때서요?”
이때, 입구에서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박강우와 진기웅이 안으로 들어왔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씩씩거리던 강준형은 박강우를 보자마자 하려던 욕을 도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강은영은 박강우를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그에게 달려갔다.
“여보, 어떻게 왔어?”
조금 전 진기웅이 가져온 서류 양을 봤을 때는 한 시간 안에 절대 끝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던 일을 미루고 달려와 준 걸까?
박강우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고는 음침하게 굳은 표정으로 강준형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내 아내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했죠?”
강준형은 그제야 손에 들린 가죽띠를 내려다보고 급기야 그것을 바닥에 던지고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대표님 왔어요? 은영이가 설아를 때렸다길래 상황을 알아보고 있었죠.”
박강우가 사위이긴 하지만 강준형은 절대 그의 앞에서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밖에서는 부현그룹 장인이라고 마음대로 떠들고 다니지만 박강우의 앞에만 서면 위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존심이 상해도 절대적인 권력 앞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강은영과 둘 사이가 계속 악화되면서 나중에 그들이 이혼하면 강설아를 대신 시집보낼 생각에 위로를 받고 있었다.
박강우는 싸늘한 눈빛으로 일가족을 훑어보고는 차갑게 물었다.
“손에 가죽띠까지 들고 뭘 하려고 했던 겁니까?”
강준형은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박강우가 강은영을 보호하고 나서자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급기야 강은영에게 눈치를 보냈다. 알아서 해명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평소에는 고분고분하던 강은영이 이번에는 그의 뜻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의 눈빛을 깔끔히 무시하고 박강우의 품에 몸을 바짝 밀착하며 말했다.
“여보, 나 얼굴 아파.”
강은영의 한마디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박강우 일행을 제외하고 다들 이를 부드득 갈며 강은영을 노려보았다.
진미선은 친딸인 강은영에게 반감이 가득했지만 사위인 박강우는 무척 만족스러웠다. 매번 쇼핑센터에 가서 그의 이름을 대면 점원들이 황후 모시듯이 깎듯이 대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부현 산하의 쇼핑센터는 모두 무료로 해주었다.
진미선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다가가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박 대표, 뭔가 오해가 있었나 본데 은영이 성격 잘 알잖아요. 우리도 애가 너무 철부지처럼 행동해서 교육 좀….”
박강우가 싸늘한 눈빛으로 노려보자 진미선은 저도 모르게 하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
강설아도 소파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강우야, 오해야.”
그러면서 일부러 머리를 쓸어올려 이마의 상처를 드러내며 박강우의 가까이에 다가갔다.
강은영은 그런 강설아를 분노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지난 생에도 저 연기에 속아서 불이익을 당한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대체 왜 몰랐던 걸까?
강설아가 해명을 계속하려던 찰나, 강은영은 남편에게 손을 뻗는 그녀의 손을 매몰차게 쳐내며 말했다.
“오해 아니야!”
그러고는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듯이 박강우의 앞을 단단히 가로막고 섰다.
진미선은 온화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은영아, 이리 와. 엄마가 할 얘기가 있어.”
할 얘기는 핑계고 박강우와 강설아가 단둘이 있을 시간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였다.
강은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속은 뒤집어지고 가슴에서는 피가 흐르는데 약한 모습은 절대 보이고 싶지 않았다.
두 번의 생을 통틀어 부모님이 이 정도로 역겹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향해 뻗은 엄마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진미선은 순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강은영을 바라봤다.
예전에는 조금만 따뜻한 말을 해주면 순순히 따라오던 딸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모두가 강은영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강은영은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랑 내 남편한테 또 그 더러운 손 뻗으면 절대 용서 못할 줄 알아!”
박강우와 그의 일행마저 벙찐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잠시 후, 박강우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터뜨렸고 진기웅은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 박강우와 옷깃조차 스치기 싫어하던 여자가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강설아와 진미선의 얼굴은 수치심에 뻘겋게 달아올랐다.
“은영아, 뭔가 오해가 있었나 본데 대화로 풀자. 우리가 너한테 나쁜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야….”
짝!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은영은 손을 번쩍 들고 그녀의 귀뺨을 내리쳤다.
어떻게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저런 거짓말을 술술 뱉어낼까?
“강은영, 정도껏 해!”
진미선이 분노해서 말했다.
그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싸운 건 그렇다 치더라도 뻔히 부모가 지켜보고 있는데 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건 참을 수 없었다.
강준형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박강우가 자리에 없었더라면 아마 가죽띠를 몇 번은 휘둘렀을 것이다.
반면 박강우의 출현으로 강은영은 더욱 기세가 늘었다.
“여보, 이제 가자.”
그녀는 더 이상 역겨운 얼굴들을 보고 싶지 않아 박강우의 손을 잡고 뒤돌아섰다. 어차피 자신을 버린 가족들이니 이제 여기 다시 올 이유도 없었다.
강준형은 예전이었다면 불러세워서 톡톡히 혼냈겠지만 박강우가 있어서 입도 벙끗하지 못하고 있었다.
“진 비서.”
박강우는 아내의 손을 잡고 뒤돌아서며 진기웅을 호출했다.
“네, 대표님.”
“강영물산과의 모든 비즈니스를 정리해.”
“네, 알겠습니다.”
진기웅은 공손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상사의 마음을 너무 손쉽게 움직이는 강은영이 못내 못마땅했다.
하지만 만약 갑작스러운 그녀의 태도 변화가 진심이라면 조용히 지켜볼 생각이었다. 다만 진심이 아니라면 그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강준형과 진미선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박 대표님, 그건 좀 너무하지 않나요?”
강준형은 다급히 박강우를 따라나오며 애걸했다. 박강우는 고개를 돌리고 무심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은영이가 진짜 이집 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박강우의 아내인 건 확실합니다. 강 회장님, 선을 넘으셨어요.”
그 말을 들은 강준형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강설아한테 들은 내용으로는 박강우는 완전히 강은영에게 실망해서 꼴 보기도 싫어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강은영의 편을 들어줄 줄이야!
박강우는 그의 대답도 듣지 않고 차를 출발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