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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장

강은영을 달래서 방으로 보낸 뒤. 박강우는 진기웅과 함께 서재로 돌아갔다. “최근 은영이 주변에서 생긴 일들 좀 알아봐.” 예전에도 줄곧 진기웅과 진부성을 시켜 감시하게 했지만 아무런 이상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일을 겪으면서 박강우는 조금 더 그녀를 믿어보기로 했다. 연기가 아니라면 분명히 무슨 계기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바뀔 리가 없었다. 진기웅도 강은영의 진심이 무척 궁금했기에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 박강우가 방으로 돌아갔을 때 강은영은 이미 샤워를 마치고 얌전히 누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에는 각방을 고집하던 그녀가 지금은 그가 돌아왔을 때 불편할까 봐 탁상등을 켜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여보, 내가 씻는 거 도와줄게.” 옷을 갈아입고 욕실로 향하는 그에게 그녀가 말했다. 박강우는 침대에서 일어나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녀에게 부드러운 미소로 말했다. “괜찮아.” “아니야, 필요해. 당신 상처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되잖아.” 이따가 샤워를 마치면 약을 새로 발라줄 생각에 그녀는 주저없이 말했다. 박강우는 그런 그녀의 입가에 부드럽게 키스했다. “당신이랑 같이 들어가면 오히려 씻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래.” “그게 무슨 소리야?” 강은영은 뒤늦게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플 때는 좀 얌전히 지내면 안 돼?” 그녀가 새침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그건 불가능해!” 남자가 단호히 말했다. 강은영은 정색한 그 표정을 보고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예전에 사이가 안 좋을 때도 그 방면의 욕구가 많았던 그였으니 지금은 아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 혼자 가서 씻어!” 말을 마친 그녀는 도망치듯 침대로 갔다. 박강우는 토끼처럼 도망가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런다고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 샤워를 마치고 약을 바를 시간이 돌아오자 박강우는 완전히 야수로 돌변했다.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뒤, 강은영은 결국 지쳐서 약이고 뭐고 침대에 누워 잠들어 버렸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뜬 강은영은 화가 나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앞으로는 나 만질 생각도 하지 마!” 남자는 만족스러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강은영은 씩씩거리면서도 약을 가져다가 발라주고 나윤범을 호출해서 한번 더 확인한 뒤에야 시름을 놓았다. 아침 식탁. 진기웅이 또 업무보고를 하러 찾아왔다. 강은영은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진기웅의 옆통수를 노려보았다. 예전에는 그냥 묵묵히 자기 일만 하는 직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남편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불량업주처럼 보였다. “대표님,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진기웅은 강은영을 힐끗 보고는 아이패드를 박강우에게 건넸다. 강은영은 혹시 자신과 연관된 일일까 싶어서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탁! 내용을 확인한 박강우가 짜증스럽게 패드를 식탁에 던졌다. 강은영은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또 무슨 일이지? 손을 뻗어 패드를 들고 보니 대문짝만한 기사 제목이 눈에 띄었다. ‘부현그룹 대표 사모님, 시조카와 밤중에 은밀한 밀회!’ 밑에는 박성철이 그녀를 끌어안고 있는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박성철의 귀뺨을 때리고 그를 폭행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은 어디에도 없었다. 강은영은 순간 화가 치밀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박성철 이 자식을 그냥!” 박강우와 진기웅마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보, 이 기사 가짜야. 나를 믿어줘야 해. 분명 박성철 이 자식이 돈 주고 사온 기자일 거야!” 강은영은 말할수록 격분해서 한참이 지나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박강우의 눈빛에도 서늘한 서리가 끼었다. 강은영은 그가 말이 없자 더욱 조바심이 나서 그의 옆으로 다가가 손을 잡았다. “여보….” 그녀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힘들게 마음을 열어준 사람인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기사 때문에 모든 걸 망칠 수는 없었다. 지금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박강우의 믿음이었다. 진기웅은 강은영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 “처리하기 좀 곤란하긴 해요. 이 일 마무리될 때까지 사모님은 집에 계시는 게 좋겠어요.” 말이 끝나기 바쁘게 강은영의 싸늘한 눈총이 이어졌다. 진기웅은 뻘쭘하게 코를 매만졌다. ‘내가 뭐 틀린 말을 했나?’ 강은영은 긴장한 눈빛으로 박강우의 눈치만 살폈다. 분노에 이마에 핏줄이 선 남자의 얼굴을 보자 그녀의 속은 타들어만 갔다. “여보,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 그녀는 이대로 그가 더 이상 자신을 믿어주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박강우는 바짝 긴장한 그녀의 얼굴을 보자 마음속 분노가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그는 큰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당신을 못 믿어서 이러는 거 아니야.” “그럼 이제 화 풀어. 이 일은 내가 해결할게. 맡겨만 줘.” 강은영은 큰 결심을 하듯 단호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예전의 강은영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미움 받을까 불안에 떠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박강우의 눈빛은 다시 부드러워졌다. “그래, 알았어. 기다리고 있을게.” “응. 나한테 맡겨.” 그가 드디어 표정을 풀자 강은영은 몰래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면서 속으로 어떻게 박성철과 강설아를 족칠지 고민했다. 힘들게 시댁 식구들의 마음까지 겨우 돌려놓았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 박강우는 싸늘한 얼굴로 진기웅에게 말했다. “기사 내리도록 처리해.” “그럼 성철 도련님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박강우의 두 눈에 살기가 돌았다. 하지만 강은영을 바라볼 때는 하염없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어?” 강은영은 이게 떠보는 말인지 아니면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지 종잡을 수 없었다. 어쨌든 이 집에서 쫓겨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었기에 그녀는 숨을 고르고 차분하게 말했다. “그 자식은 내가 직접 처리할 거야.” 박성철이 언론을 이용해서 이혼 압박을 가한다면 똑 같은 방식으로 돌려줄 것이다. “여보, 박성철 그 자식 조심해야 해.” 잠깐의 고민 끝에 강은영은 정색해서 박강우에게 말했다. 지난 생에 박성철은 이런 비겁한 수단으로 박강우를 자극해서 이성을 흐리게 만들었다. 비록 그녀가 회귀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박성철의 비겁한 수단은 더하면 더했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할머니 손에 녀석이 원하는 게 있어.” 박강우가 말이 없자 강은영은 한마디 덧붙였다. 순간 박강우의 눈빛이 흠칫하고 흔들렸다. 박성철에게 그 정도의 야망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강은영의 말을 믿기로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아침 식사가 끝난 후, 박강우는 출근 준비를 했고 강은영은 이번에는 같이 간다고 조르지 않았다. 집에 남은 그녀는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한 시간 후, 호화 외제차 한 대가 별장 앞에서 멈추더니 훤칠한 키에 오피스룩을 입은 여자가 차에서 내렸다. 강은영은 그녀를 보자마자 반갑게 맞으며 달려갔다. “연주야, 오래 기다렸어.” 다연주는 자신에게 달려오는 강은영의 손길을 교묘하게 피하고는 묘한 말투로 그녀에게 물었다. “뭐야? 갑자기 나갔던 정신이 돌아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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