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침대에서 먹는 걸 싫어해

나유아는 씻자마자 소파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나유아는 벌떡 일어나 앉더니 침대에 누운 고선호에게 물었다. “문 잠갔어?” 고선호는 그녀를 흘겨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장선댁이 물었다. “도련님, 저예요, 할머니가 저녁에 제비집을 끓이셨는데, 저보고 사모님께 한 그릇 가져다드리라고 하셨어요. 안 주무셨으면 제가 들어갈게요.”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나유아는 소파에서 거의 뛰어내리다시피 했고 장선댁이 침실 현관을 통과하는 순간 소파에 있던 이불을 침대 밑으로 밀어 넣고 고선호의 이불을 젖히며 물고기처럼 파고들었다. 들어가는 순간 고선호의 가슴에 머리를 부딪치며 두 사람 모두 나지막하게 신음을 냈다. 한밤중에 들려오는 이 소리는 유난히 난감하게 들려와, 들어가던 아주머니는 순간 걸음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련님, 사모님... 들어가도 될까요?” 고선호는 이를 악물고 이불 속에 드러난 정수리를 쳐다보며 어두워진 눈빛으로 대답했다. “들어와요.” 나유아도 이불 속에서 기어 나와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한 뒤 살며시 웃으며 장선댁에게 인사했다. “장선댁.” 그녀가 침대에서 내려오려 하자 장선댁이 서둘러 말했다. “내려오실 필요 없어요. 제가 갖다 드릴 테니 다 마시면 제가 갖고 나갈게요.” 나유아는 이쪽의 이불이 정리되지 않은 걸 발견했다. 장선댁이 다가오면 들킬까 걱정된 그녀는 모질게 마음먹고 이불 속에서 고선호를 꽉 잡았다. 고선호의 무덤덤하던 표정이 눈에 띄게 흉악해졌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침대에서 내려와 장선댁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한테 주세요.” 장선댁은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쟁반을 건네주었다. “그래요. 그럼 도련님께서 작은 사모님에게 먹여주면 되겠어요.” 쟁반을 넘겨받던 고선호의 손이 멈칫하더니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씩 올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쟁반을 자기 쪽 침대맡에 놓았다. 수정 그릇을 든 그는 숟가락으로 제비집 한 숟가락을 떠서 나유아의 입술 쪽으로 내밀었다. 나유아는 어이없었다. 그녀는 고선호가 왜 이러는지 몰라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고선호는 눈썹을 씰룩거리며 눈빛을 그녀의 작은 얼굴에서 숟가락으로 돌리더니 움직이려는 기색이 없었다. 그녀가 변덕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정말 고선호를 깊이 사랑한 적도 있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 이렇게 다정한 모습을 보이기는 처음이라 어색했다. 연기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녀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하지만 고선호는 배지혜의 것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고선호가 자신을 도와줄 것을 기대하지도 못한 그녀는 생각 끝에 한마디 했다. “침대에서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장선댁은 숟가락에 담긴 제비집을 간절히 바라보다가, 입가에 있는데도 나유아의 입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어색해 황급히 입을 열었다. “딱 한 번만인데 괜찮아요!도련님은 이렇게 컸는데 다른 사람에게 밥을 먹여 본 적이 없어요!” 먹지 않으면 가지 않으려는 장선댁의 모습을 본 나유아는 심호흡을 하고 입을 벌려 고선호가 떠준 제비집을 먹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았기 때문에 숟가락을 든 고선호의 손이 이따금 그녀의 얼굴에 닿았다. 따뜻하고 매끄러운 피부는 비단결 같았다. 원래 빨갛던 입술은 설탕물이 묻어서 촉촉하고 불빛 속에서 잘 익은 앵두처럼 느껴졌다. 마른 침을 삼키고 난 고선호는 숟가락을 잡은 손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맛있어?” 장선댁이 황급히 물었다. “도련님도 한 입 드실래요?” 나유아는 숟가락을 같이 쓰고 싶지 않았다. 간접 키스를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손을 뻗어 그릇을 받아 제비집을 한입에 다 비우고 고선호를 향해 도발적으로 눈썹을 치켜세우고 말했다. “맛있어.” ‘하지만 너는 못 먹어.’ 고선호는 나유아의 이런 모습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장선댁은 주위를 둘러보고 서둘러 앞으로 나가 그릇과 쟁반을 모두 챙기더니 소리 없이 방을 나갔다. 문 앞에서 할머니 문에 귀를 대고 엿듣고 있었다. 장선댁이 빈 그릇을 들고나오는 걸 본 김순자는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다 먹었어?” “다 드셨어요.” 장선댁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쉽게도 작은 사모님 혼자 다 드셨어요.” 이에 김순자가 대답했다. “괜찮아, 남자라면 도망갈 수 없어.” 그녀는 손자를 꼭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흔적이 남지 않도록 설거지를 잘해.” 김순자가 흡족해하며 분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