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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온천의 로망

“연아 누나, 혹시 어젯밤의 납치범들이 아까 그 아저씨가 보낸 건가요?” 차 안, 이번에는 김연아가 운전하고 있었다. 반면 조수석에 앉은 강준은 방금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자 어쩌면 어제 만났던 납치범이 엄철수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대담한 추측을 했다. “꽤 똑똑한데?” 김연아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엄철수는 똘마니에 불과해.” “그 사람들은 왜 연아 누나를 죽이려고 하는 거죠?” 강준이 의혹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일 때문에.” 그녀는 말을 이어가면서 길가에 차를 대고 백미러를 흘긋 쳐다보았다. “널 데리고 기분 전환할 겸 온천 갔다가 등산이나 하려고 했는데 오늘은 안 될 것 같아. 내일 다시 보자. 지금은 우선 급한 용무부터 처리해야 해서 내일 다시 찾으러 갈 테니까 아침에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알겠어요.” 강준은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 차에서 내리라는 뜻인가? 하지만 차 문을 열고 한쪽 다리를 밖으로 내민 순간 곰곰이 생각하다가 도로 안으로 집어넣고 문까지 닫았다. 김연아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침착하게 타일렀다. “오늘 진짜 해야 일이 생겼는데 택시 타고 가면 안 될까? 택시비는 챙겨줄게.” 이내 말을 마치고 현금을 찾기 위해 지갑을 뒤적거렸다. “연아 누나, 택시비는 나도 있어요.” 강준이 김연아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기라도 한 거예요? 지금 미행당하고 있죠?” 강준도 백미러를 연신 힐끔거리는 김연아를 발견했다. 게다가 그가 앉은 각도에서 뒤를 돌아보면 마침 갓길에 멈춰 있는 차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유리창을 짙게 선팅한 탓에 몇 명이 탔는지, 그리고 누구인지 확인이 불가했다. 김연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너도 발견했어?” “호텔을 떠난 이후부터 줄곧 따라오던데요?” 강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쥐도 궁하면 고양이를 물기 마련이야. 설마... 남아서 날 도와주려고?” 강준이 남아 있기로 한 이유가 어쩌면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내 김연아의 눈이 반짝 빛났다. 강준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연아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감동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내 두말없이 기어를 바꾸고 액셀을 밟았다. “똑바로 앉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가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강준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굳이 묻지 않았고, 그녀도 운전하는 데 집중했다. 곧이어 차는 도심을 벗어나 외부 순환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반면, 미행하는 차량도 바짝 따라붙었고 도저히 따돌릴 수가 없었다. 상대방은 들통이 난 사실을 이미 알고도 미행을 멈추지 않았다. 외부 순환 고속도로를 타고 20분 동안 달린 다음 톨게이트에서 빠져나와 국도를 지나 계속 직진해서 산속 도로에 들어섰다. 그리고 15분 정도 흘러 오전 9시 정각, 두 사람은 휠튼 리조트라는 곳에 도착했다. 김연아가 주차하고 룸미러를 힐긋 쳐다보자 검은색 미행 차량이 보이지는 않았다. 이때, 리조트에서 유니폼을 입은 웨이터들이 우르르 뛰어나왔고, 선두에는 슈트 차림의 대머리 남자가 서 있었다. “오셨어요?” 현태라고 불리는 남자가 김연아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김연아는 쌀쌀맞은 말투로 명령했다. “우리를 미행하는 차가 있는데 상대방이 누구든지 관심 없으니까 모조리 체포해. 번호판은 XXXX이야. 내 차 끌고 가.” “네!” 남자는 잽싸게 차에 올라타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은성, 정태, 서준, 도현은 차에 타고 나머지는 남아서 연아 누나 경호해.” “네!” 리조트 웨이터들이 즉시 두 무리로 나뉘었고, 4명이 차에 올라타자마자 현태는 액셀을 끝까지 밟고 총알처럼 달렸다. 나머지 사람은 김연아와 강준을 에스코트하며 리조트 안으로 들어갔다. 다만 아직 영업 전인 듯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강준은 문득 휠튼 리조트가 설마 김연아의 소유는 아닌지 싶었다. 김연아는 로비에 들어선 이후로 신발을 갈아 신고 웨이터 중 한 명에게 말했다. “지훈아, 강준을 데리고 환복한 다음 데이지룸으로 보내.” “네,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강준과 김연아의 관계를 알 수 없는 웨이터들은 일단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그녀의 안전이 걱정된 나머지 강준은 남자 탈의실에서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가운을 걸친 다음 데이지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데이지룸은 사실상 개인용 스파 풀로서 타인에게 개방되지 않았다. 이는 김연아만이 사용하는 풀장이며 다른 사람은 함부로 출입이 불가능했다. 심지어 밖에서 경호하는 웨이터도 있었다. 송지훈은 강준을 데이지룸까지 안내하고 나지막이 말했다. “연아 누나가 안에서 기다리고 계시니 얼른 들어가세요.” “감사합니다.” 문이 열리자 진한 꽃향기가 풍겨왔다. 데이지룸은 따뜻한 계열의 색감으로 꾸며져 있고, 천장은 통유리로 되어 고개를 들면 푸른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꽃이 활짝 핀 복숭아나무와 각종 다양한 식물이 울창했다. 데이지룸 한가운데에 스파풀이 있는데 뜨거운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김연아는 이미 온천탕에 들어갔다. 그녀도 옷을 갈아입었고, 초록색 꽃무늬 수영복은 등이 훤히 파여 글래머한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순간 강준은 아랫배에 피가 쏠리는 기분이 들었다. 김연아는 태연하게 강준을 향해 손짓했다. “들어와서 잠깐 몸 담그고 있어. 건강에 좋으니까.” “아니에요. 여기 앉아서 과일 먹으면 돼요.” 강준은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딱 잘라 거절했다. 남녀가 같은 탕에 들어가다니? 낯 뜨거워서라도 불가능했다. 김연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여자인 나도 괜찮은데 네가 왜 부끄러워해? 얼른 들어와. 거기 앉아서 눈에 거슬리게 하지 말고.” “눈에 거슬린다니?” 비록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지만 결국 마지못해 쭈뼛쭈뼛 온천으로 걸어가 가운을 벗었다. 가운이 흘러내리는 순간 김연아의 눈이 반짝 빛났다. 구릿빛 피부에 복근까지 있지 않겠는가? 탄탄한 몸매는 보기만 해도 건강미가 넘쳤다. 그녀의 시선이 점점 아래로 향하자 강준은 황급히 돌아서서 뒷걸음질로 온천 풀에 들어갔다. 김연아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몰래 혀를 찼다. 그녀를 보고 반응할 줄이야... 강준은 물속에 목까지 담근 다음 뒤를 돌아 시뻘게진 얼굴로 더듬거렸다. “연아 누나, 밖에... 지금...” 뜻인즉슨 밖에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지금 온천이 웬 말이냐는 것이다. 김연아가 피식 웃었다. “운명은 피할 수 없거든.” 그러다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이제 기분이 좀 나아졌어?” 김연아는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강준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차마 그녀의 몸을 직시할 수가 없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네, 고마워요. 연아 누나.” “별말씀을, 오히려 내가 더 고맙지. 어젯밤에 네가 없었더라면 이미 저세상으로 갔을지도 몰라.” “아니에요. 이웃으로서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강준은 계속해서 시선을 피했다. 김연아의 가슴이 눈앞에서 아른거려 입이 바짝 말랐다. 후끈거리는 아랫배는 잠잠해지기는커녕 되레 기승을 부렸다. 더욱이 앙증맞은 발이 물속에서 움직이며 가끔 다리에 닿을 때면 미칠 것 같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강준을 보자 김연아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결국 참다못해 웃음이 터진 나머지 재빨리 입을 가렸다. 마치 온천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강준의 모습이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되는 듯싶었다. 한편 강준이 초조한 얼굴로 절대 추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김연아가 문득 헤엄쳐 왔다. 첨벙. 김연아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강준의 곁으로 다가갔다. 강준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고 싶었지만 도망갈 길이 없었다. 목은 점점 타들어 갔고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때, 김연아의 나긋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만약 이따가 누군가 쳐들어오면 내 뒤로 숨어 있어.” 뜨거운 입김이 귀에 닿자 강준은 이상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팔을 짓누르는 말캉한 감촉에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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