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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요물

“귀신이든 뭐든 빨리 죽여버려!” 손태호는 다급하게 외쳤다. 김연아에게 구원투수가 있을 줄은 놀랐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의 가장 유능한 부하인 진이수도 잃고 말았다. 그는 두 사람의 시체를 토막 내서 분을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강준이 갑자기 일어나서 눈을 감았다. 윙. 윙윙윙윙윙. 과일칼은 다시 한번 날아올라 강준의 앞으로 갔다. 그리고 번뜩거리는 칼날을 손태호 등을 향해 겨눴다. 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넋을 잃었다. 김연아도 영혼이 가출한 표정이었다. ‘이런 건 영화에서만 본 적 있는데? 현실에서도 가능하다고?’ 손태호는 완전히 변한 안색으로 곁에 있던 킬러 두 명을 앞으로 밀었다. “빨리 움직이지 않고 뭐해? 과일칼 하나로 뭘 할 수...” 슥. 푹! 손태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과일칼은 그의 미간에 찍혔다. 손태호는 눈을 뜬 채로 의식을 잃었다. “헉! 저, 저희는 죽이지 마세요. 저희랑 상관없는 일이에요...” 킬러들은 겁먹고 오줌을 지릴 지경이었다. 아무리 살벌한 인생을 살았다고 해도 이런 장면은 처음이었다. 미신은 믿든 말든 개인의 자유였다. 그러나 뭐가 됐든 존경해야 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것도 미신과 다를 바 없었다. 강준의 시선에는 살기가 서렸다. 한 명을 죽여도 살인이고, 10명을 죽여도 살인이다. 만약 특별한 능력이 없었다면, 지금쯤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을 사람은 그였다. 그는 굳게 마음을 먹고 킬러들 속에서 과일칼을 마구 휘저었다. “살려주세요!” “자식, 너...!” 푹! 푹! 푹! 푹! 푹! 가벼운 과일칼은 빠른 속도로 자유롭게 이동했다. 호흡 두 번 하는 새로 바닥은 피바다가 되어 있었다. 순식간에 고요해진 데이지룸에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강준과 김연아만 있었다. 김연아는 온몸에 소름이 돋은 채 얼어붙었다. ‘손태호가 죽었어. 준이가 손태호를 죽였어!’ 손씨 가문에는 손자가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손태혁, 즉 그녀의 전남편이었다. 다른 한 명은 손태호, 지금 눈앞에서 죽은 사람이다. 손씨 가문의 손자 두 명이 전부 세상을 떴다. 그 말인즉슨 손씨 가문의 대가 끊겼다는 것이다. 이 생각에 김연아는 몸에 힘이 다 풀렸다. 손씨 가문이 어떤 식으로 복수할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누나, 왜 그래요?” 강준이 다가와서 김연아를 부축해 줬다. 실은 그도 후폭풍이 두려워 겁에 질려 있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속으로 말 못 할 희열이 맴돌기도 했다. 그는 어쩐지 변태가 된 것 같았다. 살인도 처음에만 거북했을 뿐 이제는 완전히 적응된 상태였다. 김연아는 크게 심호흡하며 말했다. “준아, 나 좀 일으켜줘.” 그녀는 도무지 스스로 일어날 힘이 없었다. 강준은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를 부축하려면 어쩔 수 없이 겨드랑이로 손을 넣어 만지면 안 되는 곳을 만져야 했다.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 거친 손이 피부에 닿자 뜨거운 느낌이 온몸을 맴돌았다. 뒤늦게 자기 손이 어디에 닿았는지 알아챈 강준은 어리숙하게 손을 빼내지 않았다. 그저 그대로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다음에는 손을 빼내고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김연아는 몽롱한 표정으로 강준의 냄새에 빠졌다. 몸에는 완전히 힘이 풀려 그의 품에 계속 안겨 있고 싶었다. “나 못 걷겠어. 2층까지 안아줘.” 사심을 빼고도 걷기 못 하겠는 건 사실이었다. 하도 오래 묶여 있어서 두 팔은 드는 것조차 버거웠다. 다리도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강준은 별생각 없이 그녀를 훌쩍 안아 올렸다. 김연아는 그의 품이 너무 넓게 느껴졌다. 그의 품에서는 한없이 안심되었다. 강준의 동작이 너무 큰 탓에 그녀가 걸치고 있던 옷은 흘러내려 버렸다. 강준은 힐끗 보자마자 바로 얼굴이 빨개지면서 시선을 돌렸다. 힘이 빠진 그녀는 옷을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강준이 부끄러워하는 것을 보니 마냥 수치스럽지는 않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그의 품에 더욱 밀착하며 물었다. “나 예뻐?” 강준은 이미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김연아의 말을 듣고 그는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세차게 뛰었다. 목구멍에서는 당장이라도 불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하하하, 너 지금 부끄러워하는 거야?” 김연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강준의 순진한 반응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곧 2층에 도착했다. 강준은 김연아의 지시에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그녀의 옷이 있었다. 김연아는 숨길 것도 없이 그의 앞에서 옷을 입기 시작했다. 옷을 입으면서 그녀는 말했다. “감사 인사는 저녁에 할게.” 김연아는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강준은 말을 잇지 못한 채 얼어붙었다. 그녀가 무슨 뜻으로 말했는지 잘 알았지만 거절하지 않았다. 솔직히 김연아는 완벽한 매력을 지닌 여자였다. 그녀의 몸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김연아는 옷을 입고 나서 책상 위에 있던 전화기를 들어 번호를 눌렀다. “너 어디야? 휠튼 리조트로 와. 지금 당장.” 전화를 끊은 뒤, 그녀는 서랍에서 담배를 꺼내 강준에게 던져주었다. 강준은 아주 가끔만 담배를 피웠다. 일주일 내내 한 갑 다 못 피울 정도였다. 그래서 그다지 중독성 있는 습관은 아니었다. 김연아가 피우는 담배는 매우 가늘었다. 담배 냄새도 그리 강하지 않았다. 담배에 불을 붙인 그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강준은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휠튼 리조트는 영업하지 않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들 외의 다른 사람은 없었다. 한 시간 후, 하얀색 차가 호텔 정문에 도착했다. 차에서는 작은 체구의 한 사람이 내려왔다. 눈썹 쪽에는 흉터가 있었고 발을 약간 절면서 걸었다. “누나, 웬 절름발이가 왔어요.” 강준이 말했다. “응.” 김연아는 대답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상대는 사무실에 들어와 강준을 힐끔 노려봤다가 김연아를 바라봤다. 김연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데이지룸에 있는 시체 좀 처리해 줘.” 절름발이는 잠시 놀랐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그는 강준을 다시 바라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이때 김연아가 또 말했다. “준이 넌 먼저 집에 돌아가. 내가 저녁에 연락할게.” 강준은 약간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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