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왜? 나 식당 가서 밥 먹으면 안 돼?" 주은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됐어, 유시영한테 밥 챙겨주러 가는 거 아니야? 나에게도 한 그릇 가져다주지 그래?” 진태용이 눈을 뒤집었다.
“그래, 내가 돌아올 때 가져다줄게.”
주은우는 또 책을 가지고 식당에 갔다.
“너...”
진태용은 화가 나 씩씩거렸다. “이게 나한테 밥을 챙겨달란 말이 아니잖아.”
오후 1시 반, 유시영과 전영미는 손을 잡고 하하호호 웃으며 교실로 들어섰다.
“진태용, 주은우는?”
진태용은 워크맨의 이어폰을 빼고 유시영을 힐끗 쳐다보며 대답했다. “몰라.”
“이 주은우 몇 시인데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야, 우리 둘 굶어 죽게 할 작정이야?” 전영미는 언짢은 표정이었다.
유시영이 대답했다. “주은우가 길에 무슨 일이 생겼나 봐. 곧 오겠지.”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주은우가 왼손에는 책을, 오른손에는 밥을 두 개 들고 교실에 들어섰다.
유시영은 과 전영미는 웃으며 말했다. “주은우, 정말 고마워.”
진태용은 이 광경을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이 자식 정말 구제 불능이야.’
주은우는 어리둥절했다. “뭐가 고맙다는 거야?”
유시영은 눈을 반달 모양으로 뜨고 말했다. “당연히 영미와 내 밥을 챙겨줘서 고맙지.”
“너희 둘 밥은 가져오지 않았어!” 주은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만해.”
전영미는 귀찮은 듯 말했다. “밥까지 챙겨왔는데 시치미를 떼기는.”
그녀는 손을 뻗어 주은우가 가지고 있는 도시락을 집으려 했다.
주은우는 몸을 돌려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태용아, 빨리 밥 먹어, 조금 있으면 수업 시작이야.”
“어... 나... 그...” 진태용은 주은우가 건넨 도시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챙겨온 거야?”
“당연하지, 밥 좀 갖다 달라며.”
주은우는 일회용 젓가락을 쪼개며 말했다.
“헤헤, 고마워.” 진태용은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기분이 좋아 도시락을 들춰 먹었다.
옆에 서 있던 유시영과 전영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표정이 일그러졌다.
도저히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었다.
유시영은 주먹을 불끈 쥐고 눈썹을 찌푸렸다. “주은우, 점심에 내 말 못 들었어?”
“들었어.” 주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우리 둘 밥을 안 챙겼어?” 유시영은 화를 냈다.
“돈을 안 줬으니까.”
유시영은 예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심부름시켜도 돈을 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이건 그에게 주는 영광인데 감히 돈을 요구하다니!
“그... 그런데 왜 진대용 밥은 갖다 줬어? 너한테 돈을 줬어?”
주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태용이가 어제 피시방 돈 내줬거든. 그러니 밥 좀 가져다주는 건 당연해.”
“너...” 유시영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주은우에게 아무것도 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하하하... 친구 오늘 밤같이 피시방이나 갈까? 내가 쏠게.” 진태용은 밥을 내뿜으며 주은우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주은우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시간이 없어. 서둘러 공부해야 해.”
유시영은 두 사람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을 보고 씩씩거리며 이를 갈았다. “주은우, 나 화났어, 앞으로 귀찮게 하지 마.”
말을 마치고 난 그녀는 화를 내며 떠난다.
전영미는 주은우를 가리키며 한마디 했다. “주은우, 오후에 빨리 시영에게 사과하는 게 좋을 거야, 흥.”
“시영아, 기다려.”
진태용은 주은우를 향해 경고의 눈빛을 지으며 말했다. “주은우, 오후에는 아무 데도 가지 마.”
“어디 가는데? 오후에 책도 읽어야 해.”
주은우는 가지 반찬 한 입 먹으며 말했다. “식당 가지 반찬이 맛있어. 먹어봐.”
진태용은 한 젓가락 집으며 대답했다. “내 최애.”
...
오후 첫 수업은 수학이다.
수학책을 꺼내든 주은우는 빽빽한 공식을 보며 문득 천서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문과는 외울 수 있지만, 이과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했다.
머릿속으로는 전생 수능 때 이과 마지막 큰 문제를 떠올리려고 애썼다.
수업이 끝나자 주은우는 수학책을 들고 첫 번째 줄에 앉은 학우를 향해 걸어갔다.
첫 번째 줄에 앉은 전영미는 거울을 들고 머리카락을 다듬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주은우의 모습을 본 그녀는 바로 옆에 있는 유시영의 허리를 찌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영아, 주은우 왔어.”
“흥.”
유시영은 콧방귀를 뀌며 두 팔을 가슴에 안은 채 교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오면 뭐? 오늘 이 일은 절대 이렇게 쉽게 용서할 수 없어.”
“나를 화나게 한 대가가 뭔지 알게 할 거야.”
전영미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렇게 배가 고픈데 그렇게 쉽게 용서할 수 없었다.
주은우는 수학책을 들고 유시영의 옆으로 갔다.
유시영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 “말했잖아. 앞으로 귀찮게 하지 말라고.”
‘아닌 척하기는, 결국 순순히 자신에게 잘못을 인정할 거면서.’
그녀는 한참을 기다렸지만 주은우의 기척을 보지 못했다.
마음이 좀 답답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이 자식이 뜻밖에도 돌아서 있었다.
주은우는 옆에 서서 첫 번째 줄에 함께 앉은 반장을 향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반장, 뭐 좀 물어보자.”
반장인 도시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400도 넘는 안경을 바로잡았다.
그녀는 순진무구한 큰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무슨 문제?”
반장으로서 그녀는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을 도와주는 걸 즐겼다.
학우들을 도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인상도 깊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바로 이거야.” 주은우가 펜을 들고 가리켰다.
도시아는 진지한 표정으로 책의 제목을 보았다.
주은우는 감히 방해하지 못하고 옆에 서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제야 그는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이 처음으로 도시아를 자세히 관찰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짱 급 미녀는 아니지만 깨끗한 이목구비와 무결점 얼굴에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전생에 도시아와 교제가 많지 않았다. 도시아는 공부에만 전념했고, 자신은 유시영에게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도시아의 집이 부자라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쉽게 강성대학교에 합격했고, 졸업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가문에서 차린 회사에서 일했다. 나중에 결혼하고 시집갔으니 인생의 승자인 셈이다.
도시아는 입을 꼭 다문 채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꽤 어려운 문제였다.
겨우 10분이 흐르자 그녀는 자신이 풀 수 없는 문제라 느끼고 고개를 들어 주은우를 향해 말했다. “저기... 주은우, 아니면 저녁에 학교 끝나고 가르쳐줄게. 이제 곧 수업이 시작되잖아.”
“알았어, 반장 고마워.”
주은우도 이 문제의 난이도를 알고 있지만, 그는 도시아가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몸을 돌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전영미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주은우와 유시영을 번갈아 보았다. “저... 저 녀석이 그냥 가버린 거야?”
“왜 아직도 사과하러 안 오는 거지?”
유시영은 입술을 깨물고 차갑게 말했다. “사람이 많으니 쑥스러운 거겠지.”
“정말?” 전영미는 반신반의하며 오늘 주은우가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
어깨를 으쓱하고 난 유시영은 여전히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이지.”
“내가 강성대학교에 가는 줄 알고 열심히 하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