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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장

“그래서 이젠 어쩔 생각이야? 육태준 씨랑 언제 결혼할지는 얘기가 다 된 거야?” 유이서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어갔다.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내가 가서 하채원 SNS에 폭로할게. 아예 확 매장해버려야지.” 배다은은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놓인 꽃꽂이를 다듬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그러지 마.”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하면 오빠한테 영향 끼치잖아.” 유이서는 그제야 마음을 접었다. 그녀를 돌려보낸 후 배다은은 온전한 장미 한 송이를 싹둑 잘라서 바닥에 떨어트렸다. 예나 지금이나 육태준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결혼 얘기를 꺼낸 적이 없다. 사랑하면 티 난다는 말, 틀린 것 하나 없다. 육태준은 어쩌면 단 한 번도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애초에 자신만만하게 귀국하며 육태준과 다시 만나겠다고 큰소리쳐놓고 이제 와서 여자친구라는 타이틀만 달린 상태, 배다은은 그저 한낱 웃음거리에 불과했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꽃병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꽃병이 부서지니 안에 들어있던 생화도 모조리 떨어져 나왔다. 배다은은 손이 긁혀 피가 새어 나왔다. 흘러나오는 피를 보더니 그녀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파편 한 조각을 주워서 모질게 손목을 그었다. 곧이어 육태준에게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 [오빠, 나 너무 아파요. 보고 싶어요, 오빠. 나 보러 와줄 수 있나요?] 30분 뒤. 육태준이 부원힐에 도착했을 때 배다은은 얇은 옷차림으로 주저앉아 있었고 손목의 피가 바닥에 퍼져서 송이송이 매화꽃을 방불케 했다. 육태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그녀에게 질문했다. “왜 자해하는 거야?” 배다은은 그를 보더니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 “오빠, 제발 나 가져요. 내가 이렇게 빌게요. 오빠랑 결혼 못 해도 좋으니 제발 나 한 번만 가져요, 네?” 순간 육태준의 눈가에 증오가 가득 찼다. 그는 매정하게 배다은을 뿌리쳤다. “내가 한 말 다 잊었어?” 가차 없이 거절당한 배다은은 얼굴이 다 화끈거렸지만 끝까지 집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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