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임서우는 도통 강하성을 이해할 수가 없다.
결혼한 지 1년이 되었는데 그는 단 한 번도 그녀를 터치한 적이 없다.
임서우는 어렴풋이 1년 전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이유 없이 자아를 잃고 말았다.
순간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강하성은 울고 있는 그녀를 보자 기분이 더 언짢아졌다.
그는 임서우의 목을 확 졸랐다.
“울긴 뭘 울어? 네가 원한 거잖아!”
임서우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가 원하는 건 결코 이런 게 아니다.
목에 힘이 점점 더 세지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대로 죽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또다시 울려 퍼졌다.
“대체 무슨 배짱인 건데? 이게 벌써 몇 번째야? 왜 자꾸 날 모함해?”
임서우는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속으로 강하성이 목을 졸라 죽이길 바랐다.
한 시간 후, 남자는 도망치듯 일어나서 자리를 떠났다. 임서우 옆에 1초라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런 결혼 생활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임서우는 지칠 대로 지쳤다.
1년 동안 그녀도 노력해왔다.
온 마음을 다해 강하성을 사랑했는데 정작 결과는?
그녀는 상처투성이에 온몸이 너덜너덜해졌다.
“우리 이혼해요!”
이 말을 내뱉은 임서우는 드디어 숨통이 트였다.
‘좋아. 이젠 다 끝났어.’
그녀는 더 이상 이 결혼 생활이 언제 끝날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강하성이 대뜸 걸음을 멈췄다.
“방금 뭐라고 했어?”
“우리 이혼하자고요. 자유를 줄 테니까 하성 씨 사랑하고 싶은 사람...”
가느다란 목이 또다시 조여왔다.
강하성은 분노가 들끓었다.
“임서우, 그새 잊었어?”
“애초에 네가 약 타고 침대에 기어올라서 우리 엄마한테 한사코 결혼하겠다고 다그치지 않았다면 너 따위가 우리 가문에 발을 들일 수 있을 것 같아?”
“이혼?”
“설사 이혼해도 그 얘긴 내가 꺼내.”
“넌 아무 자격 없다고!”
강하성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임서우는 멍하니 침대에 앉아 모든 감각을 잃은 것만 같았다.
강하성은 샤워를 마친 후 객실에 갔다.
다음날 이른 아침 그는 식탁 위에 놓인 이혼합의서를 발견했다.
임서우는 그의 맞은편에 묵묵히 앉아 있었다.
강하성은 콧방귀를 뀌고 이혼합의서를 식탁에 내던졌다.
임서우는 절대 하룻밤 사이에 이딴 서류를 작성할 자가 아니다. 이 여자는 일찌감치 준비한 게 뻔하다.
그는 비아냥거리며 물었다.
“뭐가 이렇게 급해? 벌써 딴 사람 찾은 거야?”
임서우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확실히 진작 준비했었다.
그 문자를 받았을 때 이 결혼 생활이 끝났다는 걸 알아챘다.
이혼합의서는 서랍에 며칠 동안 넣어두었다. 그녀는 좀처럼 꺼낼 수가 없었고 강하성에게 이혼이란 두 글자를 말할 엄두가 안 났다.
뼛속까지 비굴해진 강씨 가문 사모님이지만 그녀는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성 씨, 사인해요. 난 아무것도 안 가질래요.”
강하성은 화나서 실소가 새어 나왔다.
파렴치함도 무릅쓰고 강씨 가문에 시집온 약아빠진 그녀가 아무것도 안 갖겠다니?
강하성은 이혼합의서를 휴지통에 버렸다.
“서우야, 나랑 이럴 필요 없어.”
“너 진짜 이혼할 생각이었다면 어젯밤엔 왜 약을 탄 건데?”
‘약을 타다니?’
임서우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슨 약을 타 내가?!’
그녀는 전혀 그런 적이 없다.
“이제 알겠지? 너 진짜 역겨워!”
강하성이 그녀를 째려보며 말했다.
“약 안 먹으면 너한테 아무런 흥미도 못 느껴.”
그는 자리를 떠나려 했다.
이때 임서우가 달려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하성 씨, 나 아니에요. 당신한테 약 탄 적 없다고요.”
“이딴 거짓말을 지금 나더러 믿으라고?”
강하성은 그녀를 힘껏 밀쳐냈다.
임서우는 바닥에 넘어졌지만 여전히 필사적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나 아니에요. 진짜 그런 적 없어요.”
다만 강하성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아니라고?
그럼 설마 강하성 스스로 약을 탔을까?
이 여자는 입만 열면 허튼소리만 해대니 실로 역겨울 따름이다.
강하성은 바람처럼 휙 하고 사라졌다.
임서우는 여전히 넘어진 자세였다.
가소롭다!
모든 게 너무 가소롭다!
그래서 어젯밤에 갑자기... 강하성은 처음부터 그녀를 극도로 싫어했다.
임서우는 바닥에 엎드린 채 한참 울다가 겨우 힘내서 일어났다.
그녀는 위층에 올라가 짐을 싸고 떠날 채비를 했다.
이 지경이 돼서야 임서우는 결혼 생활이 정말 실패했다는 걸 깨달았다.
결혼식도 안 올리고 결혼반지도 없으며 1년 동안 아무런 선물도 못 받았다.
그녀의 짐은 1년 전 이 집에 이사 올 때와 똑같았다.
그땐 단순하게도 본인만 이 결혼 생활을 잘 이어나가면 단란한 가정을 이룰 거라 여겼다. 그녀에게 속하는 가정을 반드시 이룰 거라 여겼다!
하지만 현실이 그녀에게 매정한 귀싸대기를 날렸다.
그건 그렇고 강씨 가문을 떠나서 그녀가 과연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임씨 가문은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녀의 엄마는 줄곧 강하성을 돈줄로 여기니 딸아이의 이혼을 동의할 리가 없다.
곰곰이 생각하던 임서우는 절친 김은아에게 전화했다.
인플루언서인 김은아는 매일 과장된 가면을 쓰고 라이브 방송에서 신랄한 입담을 선보인다. 몇 시간 동안 반복된 내용 없이 한 사람을 죽어라 욕하는 재주가 있다.
임서우가 이혼하겠다는 말에 전화기 너머로 김은아는 입이 쩍 벌어졌다.
“왜? 서우 너 강하성 씨 죽도록 사랑하잖아?”
임서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 문자를 캡처해서 김은아에게 전송했다.
“임예지 귀국한대.”
김은아는 캡처 사진을 확인했다.
“이렇게 뜬금없이?”
“뜬금없어?”
임서우는 임예지가 조만간 돌아올 거라고 짐작했었다.
김은아가 씩씩거렸다.
“근데 임예지 그때 온 동네 발칵 뒤집고 강하성 싫다고 했잖아.”
“인제 와서 너보고 돌려달라는 거야?”
“걔 진짜 뻔뻔스럽다.”
임서우는 베개에 머리를 파묻었다.
“그만해. 그해 그 일은 원래 내 잘못이야.”
“그래도 서우야...”
김은아는 잔뜩 속상한 말투로 말했다.
“너도 피해자잖아.”
임서우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가 피해자라고? 누가 이 말을 믿어줄까?
“근데 강하성 씨 어젯밤에 또 누가 자기한테 약을 탔대?”
김은아는 참지 못하고 오지랖 넓게 물었다.
“혹시 제 몸 자제하지 못해서 핑계 둘러대는 거 아니야?”
임서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1년 동안 하성 씨는 나 건드리지도 않았어.”
이 말인즉슨 자제하지 못할 거면 일찌감치 덮쳤다는 뜻이다.
김은아는 또 한 번 빅이슈에 입이 쩍 벌어졌다.
“1년이나 터치를 안 했다고? 약을 먹고 나서야 들이대? 그 사람 설마 안 서는 건 아니겠지?”
임서우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날 안 건드렸다고 다른 여자를 안 건드린 건 아니야. 지금 대체 무슨 생각하는 건데?”
“하긴.”
김은아가 입을 삐죽거렸다.
강하성처럼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 주위에 여자가 끊길 리 없지!
임서우가 아무 말 없자 김은아가 선뜻 물었다.
“네가 약 탄 게 아니라면 과연 누굴까?”
“혹시 강하성 씨 밖에서 누군가에게 모함을 당한 건 아니야?”
강씨 가문에는 가정부가 없다. 강하성은 임서우를 전업 가정부로 삼고 있다.
인제 보니 그녀는 정말 전업 가정부일 뿐만 아니라 공짜 가정부 노릇을 일삼고 있었다.
김은아는 몰래 다짐했다. 오늘 밤 라방에서 이 양심 없는 장애자 쓰레기 녀석을 저격해야겠다고!
“그건 아닐걸.”
임서우는 고개를 내저으며 어젯밤의 상황을 되새겨보았다.
모든 일의 서막은 강하성이 침대 머리맡에 놓인 물 한 잔을 마신 데로부터 시작됐다. 한편 그 물은...
임서우는 잠시 뭔가 떠올리더니 못 믿겠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