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뭐라고?” 부소경이 눈썹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빠르게 원래대로 돌아왔다.
욕실에 있던 사람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고 한 줄의 혈서만이 벽에 남아있었다. ‘부소경씨, 당신은 나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난 당신이랑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다시는 보지 말죠!’
그녀의 혈서는 깔끔하고 날카로웠다. 죽어도 굴하지 않을 듯한 고집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부소경은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내가 뒷조사를 잘못한 건가?
몇초 뒤 그가 입을 열었다. “얼른 뒷산으로 가서 찾아봐!”
자신의 어머니에게 여한을 남겨줄 수는 없었다.
산에 가득 자란 가시덤불이 신세희의 옷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 가시덤불 덕분에 그녀는 산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는 무성하게 자란 가시덤불 아래에 숨어 비서의 눈을 피했다.
어두운 밤, 신세희는 산의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다음 날 아침, 신세희는 또 임씨 저택으로 발길을 향했다.
신세희의 모습이 임지강과 허영을 무척이나 당황하게 했다.
“너… 너 어떻게 감옥에서 탈출한 거야?” 허영이 안절부절못하며 물었다.
신세희가 비웃는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사모님, 저 석방됐어요.”
“그래도 우리 집에 오지 말았어야지. 몸에 냄새 나는 거 좀 봐, 누구 하나 질식하겠어. 얼른 꺼져!” 허영이 강한 기세로 신세희를 몰아붙였다.
허영을 대꾸하는 것조차 너무 귀찮았던 신세희는 임지강을 보며 말했다. “임씨 아저씨, 당신네 집에서 제일 잘 알지 않나요? 그때 내가 왜 감옥에 들어갔는지? 당신 나흘 전에 면회하러 와서는 주소 하나 주며 거기에 있는 남자랑 하룻밤만 보내고 오라고 했잖아요. 엄마 살릴 돈 주겠다면서. 그 남자랑 하룻밤은 이미 다 보냈는데… 우리 엄마는 그만 죽어버렸네요?”
뭔가 켕기는 게 있는 듯 임지강이 소리를 질렀다. “사람마다 주어진 운명이라는 게 있는 거야. 나는 진심으로 너네 엄마 살리고 싶었어. 근데 너네 엄마가 너무 빨리 죽어버렸잖아. 그걸 내 탓이라고 할 수가 있나?”
신세희는 분노어린 눈빛으로 임지강을 째려보았다.
그녀는 살점이 손톱 안으로 파고들 정도로 주먹에 힘을 주었다. 그녀는 당장 임지강을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눌렀다. 그녀에게는 아직 어머니의 죽음을 밝혀낼 능력이 없었다. 어머니의 죽음이 임씨 집안과 상관이 있든 없든 그녀는 참아야만 했다.
그녀는 이를 꽉 깨물며 담담하게 물었다. “우리 엄마 어디에 묻혔어요?”
“당연히 너네 고향에 묻었지! 내가 너 8년 동안 먹여주고 재워준 거로 부족해? 목 좋은 자리에 고이 모시라는 건 아니지?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얼른 꺼져!” 임지강은 말끝을 흐렸다.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만 같았다.
문을 닫으며 임지강은 20만 원을 바닥에 던졌다. “그날 밤에 서비스 한 돈이야!”
그날 밤 얘기에 신세희는 심장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마치 심장을 칼로 찌르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치켜들며 처량하고도 고독하게 말했다. “돈을 줘도 그 남자가 나한테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남자는 이미 죽었잖아요. 그러니까 이 돈도 필요 없어요! 그리고 나 몸 팔러 간 거 아니에요! 내가 당신의 제안에 응한 이유, 첫째는 엄마를 살리기 위함이었고 둘째는 8년 동안 거둬준 당신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였어요. 우리 이제 서로 빚진 거 없는 거예요!”
8년의 시간 동안 임씨 집안에 산 걸로 이미 충분했다.
앞으로 다시는 임시 집안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그건 아마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서일 것이다.
낡고 헤진 옷을 입고 단호하게 떠나는 신세희의 모습에 임지강의 가슴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곧바로 허영이 그런 그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왜? 마음 아파? 임지강, 쟤가 우리 딸 죽인 사실 절대로 잊지 마! 쟤랑 우리 딸 같은 날에 태어났어. 근데 왜 쟤는 살고 내 딸은 태어나자마자 죽은 건데?”
임지강이 입을 열었다. “나… 마음이 아픈 게 아니라… 세희 이제 금방 출소 했잖아. 그날, 같이 밤을 보낸 남자가 죽기는커녕 하룻밤 사이에 부씨 집안의 최고 권력자가 됐다는 사실을 알아버리기라도 해봐. 우리가 얼마나 곤란해지는데!”
허영이 차갑게 웃었다. “누구랑 잤는지도 모르던데,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부씨 집안 넷째 도련님이 우리 복덩이 서아랑 결혼하게 하는 거, 그게 가장 급한 일이야. 서아가 부씨 집안 도련님의 아이를 임신하기만 하면 더 이상 우리를 어쩌지 못할 거야.”
임지강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부씨 집안 어르신, 집안에 대한 요구가 엄청 높던데. 입양아라고 우리 서아 싫어하는 건 아닌가 몰라.”
“싫어한다고?” 허영은 정신이 나간 것처럼 웃어대기 시작했다. “부소경도 서자야. 상속권도 없었던 남자라고. 그래도 하룻밤 사이에 부씨 집안을 손에 넣었잖아.”
“부소경이 그날 밤 자신의 순결을 바쳐 자기 목숨을 바친 여자가 바로 우리 서아라는 사실을 알아버린다면, 아무도 그들의 결혼을 막을 수가 없을 거야. 지강씨, 우리 복덩이 서아가 남성에서 제일가는 집안의 안주인이 되기만 기다리자.”
임지강은 기쁨에 겨워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속에 남아있던 신세희에 대한 동정도 아예 사라진 것 같았다.
신세희는 임시 저택에서 한참 멀어지고 있었다. 막 길을 건너려는데 빨간색 스포츠카 한 대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임서아는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차에서 내리더니 오만한 걸음으로 신세희에게 걸어갔다. “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집에서 8 년 동안 거지처럼 빌붙어 산 가난뱅이 신세희 아니야? 대체 얼마나 많은 남자랑 구르고 다닌 거야? 씻지도 않고. 냄새 좀 봐. 누구 하나 죽겠네. 또 우리 집에 구걸하러 왔어? 이미 몸 한 번 팔았잖아. 왜 이렇게 질척거리는 거야…”
“짝-“ 신세희는 손을 들어 임서아의 얼굴을 내려쳤다.
순식간에 빨간 손바닥 자국이 임서아의 얼굴에 각인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얼굴에서 냄새도 좀 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너… 지금 감히 나 때린 거야?” 그녀가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신세희의 말투는 무척이나 차분하고 덤덤했다. “이제 됐네. 이제 너도 나랑 똑같이 냄새나고 더러운 년이 됐어.”
말을 끝낸 후, 그녀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그녀의 차가운 태도가 임서아를 충격에 빠트렸다. 임서아는 감히 쫓아갈 수가 없었다. 차마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신세희는 남성에서 제일 낡은 달동네로 발길을 향했다. 그녀는 잠깐 거주할 집 하나를 맡았다.
그녀에게는 고향으로 돌아갈 차비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남성에서 일자리를 찾아 천천히 돈을 모으고 싶었다. 하지만 금방 출소한 그녀를 기꺼이 써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신세희는 신분을 위조할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원민지라는 이름의 새로운 신분을 획득했다.
며칠 뒤, 그녀는 원민지라는 이름으로 고급 레스토랑의 웨이터가 되었다. 알바비는 무척이나 적었지만 신세희는 지금의 상황에 만족했다.
부지런한 그녀의 성격과 부드럽고 달콤한 그녀의 생김새 덕분에 매니저는 그녀를 3주 만에 VIP 전용 웨이터로 승진시켜 주었다.
“지민씨, VIP 룸은 홀이랑 달라요. 오시는 손님들 모두 중요하신 분들이에요. 실수하지 않게 조심해야 해요.” 매니저는 신세희의 가짜 이름을 부르며 세심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신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그녀의 일은 무척이나 순조로웠다.
레스토랑이 잠깐 한가할 때, 웨이터 몇 명이 신세희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원지민씨, 당신 정말 운 좋아요.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VIP 룸 전담 웨이터도 되고 말이에요. 근데 170 넘는 당신의 키에 이 얼굴이면 뭐… VIP 룸 전담 웨이터가 뭐야. 승무원이나 모델, 연예계에 진출해도 아무 문제 없겠어요.”
신세희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그만 자리를 떠났다.
동기 몇 명은 신세희에게 아부를 떨더니 그녀가 자리를 떠나자마자 곧바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VIP 룸 전담 웨이터면 다야? 뭐가 저렇게 건방져!”
“예쁘면 다야!”
“난 뭐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던데. 그냥 좀 청순할 뿐이지. 근데 도도하긴 진짜 도도하네. 학력도 배경도 없는 게 고상한 척은!”
“쟤, 도도한 게 아니라 말수가 적은 거야. 사람은 좋아, 실속 있어. 못 믿겠으면 확인해볼래…”
동기 한 명이 갑자기 신세희를 불러세웠다. “지민씨, 나 배가 좀 아파서 그런데, 대신 서빙 좀 해줄 수 있어요?”
신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3층에 있는 플레티넘 룸이에요. 고마워요.” 말을 끝낸 후, 동기는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신세희는 다른 동기들의 당황스러운 눈빛을 받으며 3층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서빙할 음식을 손에 든 후 문을 열어 룸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음식을 서빙하는 데 열중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신세희는 몸을 움찔거렸다. 자신의 손목을 낚아챈 손님이 누군지 확인한 그녀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사람을 멸시하는 듯 차가운 얼굴이 그녀의 눈앞에 놓여있었다.
“내가 여기 자주 오는 건 어떻게 알았어?” 부소경은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고 눈빛에서는 차가운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