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노을이 질 무렵, 신세희는 감옥 대문을 나섰다.
그녀는 임시 보석으로 출소를 한 것이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휴가는 단 하루뿐이었다.
그녀는 주소를 손에 꼭 쥔 채로 차에 올라탔다. 해가 다 진 후에야 그녀는 산 중턱에 위치한 낡은 별장 앞에 도착했다.
문지기가 신세희를 별장 안으로 인도했다.
별장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들어서자마자 풍겨오는 짙은 피비린내를 맡을 수가 있었다. 신세희가 미처 어둠에 적응하기도 전에 한 쌍의 팔뚝이 그녀를 단단히 품속으로 끌어안았다.
이내, 뜨거운 숨결이 그녀를 덮치기 시작했다. “너구나? 걔네들이 죽기 전에 즐기라고 보낸 아가씨?”
신세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당신… 곧 죽어요?”
“맞아! 나 손님으로 받은 거 후회하고 있는 거야?” 남자가 조용히 냉소했다.
“후회 안 해요.” 신세희가 처량하게 대답했다.
그녀에겐 후회할 여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살려야 할 어머니의 목숨이 아직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별장은 남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무척이나 어두웠다. 하지만 남자가 곧 죽을 사람 같지 않다는 사실 하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두, 세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죽은 건가?
신세희는 두려움에 떨 시간도 없었다. 그녀는 황급히 별장에서 도망쳤다.
밤하늘에는 거센 비가 차갑게 내리고 있었고 그녀는 내내 비를 맞으며 임씨 저택으로 달려갔다.
밤 열한 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임씨 저택의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런데도 신세희는 저택 안에서 들려오는 즐거운 말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축하하는 것 같았다.
“문 열어요! 빨리 문 열어요! 돈 줘요! 빨리요! 우리 엄마 살리러 가야 한단 말이에요…. 문 열어요! 문 열어요!”
대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비바람을 맞으며 버스를 기다린 탓인지 신세희의 정신은 무척이나 흐릿했다. 제대로 몸을 가눌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반드시 정신을 차리고 부서져라 대문을 두드려야 했다. “문 열어요! 문 열라고요! 빨리 돈이나 줘요! 나 엄마 살리러 가야 해요…”
“쾅!” 대문이 열렸다. 절망감만이 가득했던 신세희의 눈에 한 줄기의 희망이 어리기 시작했다.
허영의 눈에서는 경멸과 혐오가 가득했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신세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지금 자신의 모습이 거지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신세희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신경 쓸 새가 없었다. 그녀는 허영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빌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빛은 무척이나 비굴했다. “당신들이 하라고 한 일, 이미 다 했으니까 빨리 돈부터 줘요. 우리 엄마 지금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이란 말이에요. 제발…”
“너희 엄마 이미 죽었어. 그러니까 넌 이제 더 이상 돈이 필요하지 않아.” 허영은 검은색 액자를 빗속으로 던지며 매정하게 대문을 닫았다.
“뭐라고?” 갑작스러운 소식에 신세희의 몸은 그대로 얼어버렸다.
한참이 지난 후, 그녀는 귀가 째질듯한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내가 너무 늦게 와서 그런 거야? 내가 엄마를 살릴 시간을 놓쳐버린 거야? 우리 엄마가 죽었어… 우리 엄마가 죽었다고…” 신세희는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끌어안은 채로 빗속에 몸을 웅크린채 내내 중얼거렸다.
곧이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미친 사람처럼 대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거짓말쟁이! 약속한 일 다 했는데도 당신들은 우리 엄마를 살리지 않았어. 우리 엄마 돌려줘! 거짓말쟁이! 당신 집안에 불운이 들이닥칠 거야…. 사기꾼, 사기꾼, 사기꾼! 죽어서도 눈 편히 못 감게 내가 당신네 집안 평생 저주할 거야…”
신세희는 한참을 울다 임씨 저택 앞에서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사흘이나 지난 후였다. 그녀는 그대로 감옥으로 송되었다.
정신을 잃었을때에도 그녀는 내내 몸이 아팠었다. 열이 내내 내려가지 않았고 의식도 없었다. 사흘 후, 열이 내린 후에야 그녀는 다시 원래 있던 감옥으로 돌아왔다.
몇 명의 여죄수들이 그녀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난 네가 가석방 받아서 자유의 몸이 된 줄 알았는데… 고작 사흘 만에 돌아온 거야?”
“소문으로는 밤새 남자랑 놀아났다던데?”
사나운 여자 한 명이 신세희의 머리를 과격하게 잡아당기며 악독하게 웃기 시작했다. “너 진짜 팔자 좋다! 내가 너 오늘 어떻게 죽이는지 두고 보자고!”
신세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냥 날 죽여. 그럼 엄마도 다시 만날 수 있고 좋지 뭐.
한 무리의 여자들이 그녀의 옷을 벗기려 손을 대던 그때, 문 앞에서 엄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무리의 대장이 빠르게 대답했다. “신세희가 아파서요. 봐주고 있었어요.”
교관은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신세희의 죄수 번호를 불렀다. “죄수 번호 036, 나와!”
신세희는 앞으로 걸어가 멀뚱히 교관에게 물었다. “저 또 뭐 잘못했어요?”
“당신 무죄로 석방됐어.” 교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뭐라고요?” 신세희는 지금 이 상황이 꿈만 같았다. 교도소 대문을 나선 후에야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이 사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기쁨에 겨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엄마! 엄마 목숨 못 살린 거 말이야, 용서해줄 거지? 지금 당장 엄마 보러 갈게. 엄마 어디에 묻혔어…”
“신세희 아가씨 맞으시죠?”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복을 입은 그녀의 앞에 남자가 멈춰서더니 곧이어 그의 뒤에 검은 승용차 한 대가 멈추어 섰다. 검은색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그녀를 주시하고 있는 모습이 창문 너머로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당신은…”
남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몸을 돌려 차 안에 있는 남자에게 공손하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도련님, 저분이 맞습니다.”
“타라고 해.”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그에게 명령했다.
신세희는 멍한 상태로 차에 떠밀려졌고 그렇게 선글라스를 낀 남자와 나란히 앉게 되었다. 그녀는 옆에서 풍겨오는 남자의 살기를 똑똑히 느낄 수가 있었다.
자신의 목숨이 그의 손에 달린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내 이름은 부소경이야.” 남자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차가웠다.
신세희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 사실은 석방된 게 아니라… 곧 사형당할 건가요? 그래요?”
“지금 혼인신고 하러 가는 거야!” 부소경은 그녀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는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신세희는 그의 목소리가 어딘가 귀에 익었다. 부소경의 목소리는 그날 밤에 만난 그 남자의 목소리와 무척이나 비슷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이미 죽었는데.
“뭐라고요?” 그녀는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