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장 간섭하지 마세요

배진호가 당연히 디자인을 몰랐고 디자인 디렉터는 나밖에 없었고, 지금 디자인팀이 모두 한마음 한뜻이었기에 그가 끼어들어 올 수 없었기에 결국 쪼르르 떠났다. 그가 어르신한테 일러바칠지 몰랐지만 나는 절대 양보하지 않을 거였다. 내가 양보하면 중요한 두 부서가 그의 손에 넘어가게 되는데 그러면 배지훈의 지위가 위험해진다. 퇴근하기 전에 성수지가 전화 왔고 그녀는 여전히 부리나케 나의 모든 걸 마련해주었다. "하연아, 네 행운이 왔다!" 그녀는 수화기 너머로 흥분해서 십여 분이나 말했고 마지막에 나한테 자기 사촌 오빠가 바로 지난번에 항암제를 연구한다던 친척이었고 귀국한다고 했다. "오늘에야 귀국한다는 걸 알았어, 내가 이미 잡아뒀으니까 저녁에 같이 밥 먹자!" 내가 동의하기도 전에 그녀는 바로 주소를 보냈다. 어쩌면 이게 기회일지도 있어 나는 그들과 만나기로 했다. 배지훈한테 성수지와 만난다고 했는데 그가 조금 언짢아하는 것 같았다. "왜 걔랑 약속 잡았어? 두 사람 사이 안 좋은 거 아니었어?" "누가 그래? 우리 둘 학교 다닐 때 사이좋았어." 나는 전혀 찔려하지 않고 말했고 배지훈이 오히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나는 결국 성수지도 회사의 중요한 고객이라 건드릴 수 없다고 해서 겨우 그가 동의했다. 지금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부부의 이미지를 지켜야 해서 매일 같이 출퇴근했는데 솔직히 정말 질식할 것 같았다. 그래서 겨우 개인 공간이 생겨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줄무늬 셔츠를 입고 안경을 쓰고 있는 남자가 성수지 옆에 앉아 있었고 성수지가 뭐라고 하든 계속 무표정으로 있었기에 성수지가 좌절감을 느낄 정도였다. "성문걸 씨, 이미 귀국했고, 여긴 내 구역인데 좀 웃지?" "난 몸 안 팔아." 내가 걸어가자 그가 그 말을 했는데 나는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성수지는 열정적으로 인사했다. "하연아, 우리 다 먹고 나서 오지 그랬어?" "배성 그룹에서 퇴근 도장도 찍냐? 그냥 도망 나와도 너한테 뭐라 할 사람 없잖아?" 나는 어이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