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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장 나 못 참아

어르신은 아이를 아주 좋아했지만 애석하게도 손자가 배지훈 하나였다. 배진호의 아들이 겨우 두 살이었고 지금 한창 귀여울 때라 모두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생일 연회에 모두 가족들뿐이었지만 그래도 화려했다. 큰어머니는 계속 내가 아이가 없다며 비꼬았고 다른 사람들은 뒷수습 해주었다. 나는 열심히 랍스타와 해삼을 먹었다. '내 돈으로 먹는 게 아니라 더 맛있네.' 배불리 먹고 나서 나는 구석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지금 난 일 초라도 배씨 가문 사람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작은어머니가 미소 지으며 걸어와 티를 건넸다. "시원할 거야, 조금 마셔." 그녀는 내 옆에 앉았고 할 말이 있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하는 것 같았다. 나는 차를 옆에 놓고 물었다. "작은어머니, 할 말 있으면 하세요."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또 휴대폰을 꺼냈다. "하연아, 사실 난 널 좋아해, 선도 잘 지킬 줄 알고 능력도 있잖아." "지훈이가 그냥 누군가한테 홀려서 그런 거야, 하지만 언젠간 정신 차릴 거야. 특히나 이렇게 천박한 년한테서는 말이야." 나는 그녀의 휴대폰에 사진이 두 개 있는 걸 보았다. 여진아가 한 남자랑 레스토랑에서 밥 먹는 사진이었다. 작은어머니는 나한테 사진을 보냈다. "지금 내연녀도 일편단심은 아니네, 남자를 많이 만나나 봐, 특히나 지훈이는 와이프가 있는데 말이야." "지훈이가 이걸 알면 걔를 차버리지 않을까?" 그녀는 나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일어나 떠났다. 나는 사진 속 남자가 낯이 익은 것 같아 사진을 확대했고 갑자기 입찰 회의에서 구연서의 뒤에 있던 남자가 떠올랐다. 그가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왼손에 빨간색 모반이 크게 있었는데 아주 선명했다. '설마 여진아가 이 사람이랑 통화한 거야? 그러니까 이 사람이 구연서를 배신한 거야?' 만약 이 남자가 바로 구연서의 팀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게 말이 되는 것 같았다. 본가를 떠날 때도 나는 계속 그 일을 생각했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일이었지만 우연히 겹치는 단서들이 있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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