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대표님이라고만 생각할 거야

배지훈은 전화를 들고 멀리 가는 것 같았고 그제야 나지막하게 윽박질렀다. "내가 뭘 하든 너랑 상관없어." "그래, 상관 안 할게." 나는 정말 이 문제로 더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그가 여자를 처음 데리고 돌아온 날, 사실 알았어야 했었다. 그때 나는 내가 왜 그러는 줄도 몰랐고 매일 속상해 죽을 것 같았다. 정말 그한테 진실을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가 속상하고 아파하고 힘들어할 것 같았다. 이제야 난 깨달았다. 그는 나 같은 사람 때문에 속상해하지 않을 거기에 해명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말에 또 화가 났는지 그가 또 윽박질렀다. "강하연, 뭘 비꼬는 거야?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 상관해?" "잘 들어, 집에 있는 건 모두 내가 돈 주고 산 거야,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 없어." "진아한테 협박하지 마, 내 말 똑똑히 들어, 진아는 달라, 건드리지 마!" "너 당장 회사로 돌아가, 안 그러면 너 이제부터 한 푼도 안 줄 거야!" 난 그가 전화를 끊을 줄 알았는데 그가 그러지 않았다. 그는 고집스럽게 내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십몇초가 지나서야 나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야근 수당 줘야 해." "젠장, 줄게!" 전화를 끊을 무렵, 여진아가 또 달콤하게 "지훈아"라고 부르는 걸 들었다. 한때는 나만의 애칭도 이제는 남의 것이 되었다. 난 그가 여진아와는 그저 노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데리고 당당하게 두 사람이 함께 회사를 드나들었다. 여진아가 대놓고 인스타를 업로드하게 했고 심지어는 날 도발하게까지... 원래 속상했던 마음이 그가 보낸 야근 수당 200만 원을 보고 바로 나아졌다. 대표님이라고만 생각하면 그다지 받아들이기 힘든 것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바로 돈을 받자 그는 또 음성 메시지를 한가득 보냈다. 나는 바로 전화를 꺼버렸고 답하지 않았다. 생각하지 않아도 뭐라고 했을지 뻔했다. 지금껏 계속 그런 말이었기에 진작에 질렸다. '어차피 걔한테 나는 돈을 좋아하는 여자니까 돈 받는 게 뭐가 문제가 돼?' 퇴원하는 날, 구연서가 출장 가야 해서 날 데려다줄 수 없었기에 계속 가족한테 날 데려다주겠다고 했었다. 나는 그녀한테 동료가 데리러 올 거라고 했고 택시 기사와 사진을 찍어 보내서야 그녀가 안심했다. 집에 도착하자 나는 몽이의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옆집 아주머니가 바로 문을 열었다. "돌아왔네, 돌아왔어, 회복 잘 됐어?" 아주머니는 눈물을 닦고 내 손을 가볍게 잡았다. "야위었어." "지금 약한 게 유행이잖아요, 다이어트할 필요도 없게 됐는데, 안 좋아요?" 나는 가볍게 아주머니의 손을 다독였다. 낯선 사람의 손이 너무 따뜻해서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몽이는 내 주위를 돌고 또 돌았다. 아주머니가 계속 몽이한테 내가 지금 몸이 약해서 덮치면 안 된다고 했기에 몽이가 계속 내 주위를 맴도는 것이었다. 나는 몸을 쪼그리고 앉았고 몽이는 꼬리를 마구 흔들었다. 몽이 머리를 만지며 나는 드디어 진심으로 웃었다. "지훈아, 너무 큰 개야, 무서워." 여진아의 비명에 나와 몽이는 모두 놀랐다. 두 사람이 커플 캐리어를 끌고 커플티를 입고 있었는데 정말 부부 같았다. 배지훈은 미간을 찌푸리고 날 쳐다보았다. "이렇게 많이 야위었어?" "너랑 상관없어." 나는 몽이의 머리를 두드리며 짖지 않도록 했다. 여진아는 겁에 질렸는지 부들거리며 배지훈의 뒤에 숨었다. "지훈아, 집에 있는 개 처리한다고 하지 않았어? 왜 아직도 있어?" "지훈아, 내가 개털 알레르기가 있는데, 개 보내면 안 돼?" "개고기 파는 식당에 가져가도..." "젠장, 다시 말해 봐." 나는 몽이를 뒤에 보호하면서 여진아를 분노에 차서 노려보았다. '천박한 년, 쓰레기 남자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감히 내 개를 죽이려고 해?' 몽이는 여진아의 나쁜 심보를 눈치챘고 내가 화난 것도 눈치채고는 두 사람을 보며 계속 짖었다. 배지훈은 여진아를 품에 안고 나를 노려보았다. "너 뭐 하는 거야? 강하연, 너 언제부터 욕 배운 거야? 상년 같잖아!" "욕? 내가 언제 사람 욕했는데, 내가 욕한 건 사람이 아니야!" "감히 내 개를 해치려 해? 그럴 능력이 있기나 해? 젠장, 천박한 년, 다시 말해보라고." 나는 아주 흥분했고 상처가 찢어졌는지 호흡까지 가빠졌다. 배지훈이 다가오려 했는데 여진아가 그를 꽉 잡았다. "지훈아, 너무 무서워, 저 개도 너무 무서워." "도시에서 대형견 못 기르게 하지 않아? 우리 신고하자, 사나운 개는 때려죽여야 하는 거 아니야?" 그녀는 입으로는 무섭다고 했지만 눈에는 도발이 가득했다. 나는 드디어 그녀가 개털 알레르기며, 개를 무서워한다던 말이 다 핑계라는 걸 알아챘다. 그냥 내가 몽이를 아끼는 걸 알고 내가 슬퍼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 속상하지 않을 거고 지랄할 거였다. 나는 견인줄을 아주머니한테 넘겼고 온 힘을 다해 여진아를 잡아당겼다. "짝짝!" 나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 여진아의 뺨을 두 번 내리쳤고 여진아의 볼은 바로 부었다. 그녀가 반격하려 하는데 배지훈이 바로 날 밀어버렸다. "강하연, 너... 아..." 개소리와 함께 몽이가 힘껏 견인줄을 뿌리쳤고 나를 밀려고 하는 배지훈의 팔을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