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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지은아, 연이가 지금 홀로 걸을 수 없는 상황까지 됐어, 네가 신부 들러리로 연이 데리고 무대로 올라가 줄 수 있어? 너도 연이 상황 잘 알잖아, 우린 나중에 시간이 많잖아. 연이 소원 이루면 너한테 더 큰 결혼식 치르게 해줄게." 그는 회색 소파에 기대 담배를 피우며 아무런 감정 없이 말을 뱉어냈다. 허지은은 자기와 7년을 만났고 자기와 같이 사업을 일궈낸 남자 친구 부성훈이 이런 요구를 꺼낼 줄 생각도 못 했다. 더 상상하기 힘든 건, 모레 있을 성대한 결혼식이 여자 친구인 자신의 것이 아니라, 부성훈과 그의 소꿉친구의 것이었다. 한 달 전, 백아연이 부성훈을 찾아왔고, 자신이 폐암으로 오래 살지 못하는데, 유일한 소원이 바로 자기만의 결혼식을 올리는 거라고 했었다. 그들이 소꿉친구였고 부성훈이 어렸을 적 백아연을 짝사랑했다는 걸 허지은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백아연이 그 말을 꺼냈고 부성훈이 바로 동의했을 때, 허지은은 심장이 찢어진 듯했다. 허지은의 심혈이 모두 남을 위한 게 되었지만 그녀는 거절할 수 없었다. 거절하면 그녀가 쪼잔한 게 되었고 곧 죽을 사람도 봐주지 않게 되는 거였다. 이제 청첩장도 모두 내보냈었다. 모레 신부가 신부 들러리가 된 걸 보게 되면, 아마 그녀는 안현시의 재벌 사모님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것이었다. 허지은은 마음이 너무 씁쓸해 났다. "이 결혼식을 내가 8개월이나 준비했어, 웨딩드레스는 내가 한 땀 한 땀 수놓은 거야, 매칭하는 액세서리는 우리 집 가보야. 그런데 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 "허지은, 지금 나랑 말하는 거야?" 부성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전후 사정은 내가 모두 설명했잖아, 항상 이해를 잘하더니, 왜 나한테는 이렇게 따지는 건데?" 따진다고? 부성훈은 그녀의 불쾌함을 눈치채고는 담배를 끊고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지은아, 너도 알다시피 연이가 곧 죽을 거잖아, 우리 따지지 말자, 응? 날 도와준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 그는 아주 오만했고 자신감도 넘쳤다. 남을 위해서 이렇게 사정하는 그를 보며 허지은은 바로 멍해졌다. 뭘 도와줘? 다른 여자랑 결혼하게 도와줘? 아직도 덜 도와줬어? 그동안 회사가 자금이 끊기는 위험에 처했을 때면, 그녀는 몰래 각종 대회에 참가했고, 작품을 경매해서 얻은 자금으로 그와 같이 편인 회사를 세웠다. 부성훈은 지금 국제에서 제일 이름 있는 양면 자수 수낭이 바로 허지은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편인 회사에서 그렇게 많은 계약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사장님들이 허지은의 체면을 봐준 거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안현시의 많은 대회사에서, 자수업의 선도 기업인 성진 그룹도 허지은을 스카우트하고 싶어 한다는 건 더더욱 모르고 있었다. 허지은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부성훈이 자신보다 강한 여자를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뜨거운 눈물이 그녀의 눈가를 타고 내려와 그녀의 피부를 따끔하게 했다. 지난 7년 고생했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래, 신부 들러리할게..." 그녀의 목소리는 속삭이듯 아주 낮았다. 그 말에 그녀의 모든 정력을 쏟아낸 것 같았다. 부성훈은 기쁘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우리 지은이는 제일 착한 여자야." - 성진 그룹 해외 지사. "대표님, 알아냈습니다." 테이블 뒤에 있는 남자는 아직도 야근 중이었고 틈틈이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강 비서는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이번 국제 10대 자수품, 최고급 수낭이 편인의 허 대표님이었습니다." 빠르게 글을 쓰고 있던 주민호는 멈칫했다. "허지은?" "이번 국제 대회뿐만 아니라, 작년에 수십억에 팔렸던 자수품, 그리고 박물관에서 가져간 양면 이색 홍복 금계도 모두 허 대표님이 만든 겁니다. 하지만 사촌 동생 '심지민'의 이름으로 시합에 참가했습니다." 그래서 국제에 이름을 날린 최고급 수낭 '심지민'이 사실은 허지은이었다. 강 비서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러고 보니, 지금 국내에서 양면 자수 대가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허 대표님뿐이네요." 그는 잠깐 침묵하고 말했다. "주민서한테 약속 잡으라고 해." 강 비서는 자료를 잡고 고개를 저었다. "요즘 약속 못 잡을 것 같아요..." "왜?" "허 대표님이 모레 결혼입니다." - 모레. 편인 회사의 두 대표의 결혼식이라, 안현시에서 이름 있는 기업들은 거의 모두 참석했다. 파노라마 강당에는 나지막하고 은은하고 클래식한 분위기의 곡이 울려 퍼졌고 현장에는 손님들이 가득했다. 강당 밖. 백아연은 아주 느낌 있는 홑꺼풀이었다. 그녀는 지금 허지은이 한 땀 한 땀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고 빛나고 있었다. 손과 머리에는 허지은의 가보를 하고 있었다. "지은아, 이렇게 너그럽게 소원 이루게 해줘서 고마워." 백아연은 화장했기에 낯빛이 그렇게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더니 그녀는 투정하듯 말했다. "허리가 너무 두터워, 허리를 좀 더 얇게 했으면 나한테 더 어울렸을 거야." "미안하지만 원래 내 사이즈대로 한 거야." 허지은은 지금 그녀를 쳐다볼 용기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미쳐버려서 백아연의 웨딩드레스를 벗겨버릴까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입고 있잖아." 백아연은 갑자기 승리자처럼 웃었다. 그러더니 마치 허지은을 시녀로 생각하듯 손을 내밀었다. 허지은은 정말 마른 그 손을 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고서야 백아연의 손을 잡았다. 10미터가 되는 강당의 문이 서서히 열렸고 음악 소리에 맞춰, 그녀는 백아연을 부추겨 무대로 올라갔다. 문이 열리자 손님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다들 아주 어리둥절해했다. 어떻게 된 거지? 신부가 바뀌었어? 신부가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원래 신부가 신부 들러리가 된 거야? 저 신부는 누구지? 허지은은 진작에 이렇게 될 줄 알았기에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그녀는 지금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상관할 겨를이 없었다. 부성훈이 흥분해하며 자신이 아닌 백아연을 지긋이 바라보자 허지은은 심장이 찌릿해 났다. 어쩌면 첫사랑이랑 결혼하는 게, 부성훈이 제일 큰 소원 아니야? 무대. 원래는 무대가 짧다고 생각했던 허지은은 지금 무대가 너무 길게 느껴졌고 걸을 때마다 마음이 아파 왔다. 부성훈의 반응이 그녀의 생각과는 달랐다. 백아연의 소원을 들어주려는 게 아니었어? 왜 흥분해 하는데? 음악 소리에 따라, 눈앞에 자기가 직접 만들어준 옷을 입고 서 있는 부성훈을 보며, 시선이 점점 흐려졌고 결국 7년 전의 모습으로 변했다. 부성훈도 집안 환경이 괜찮았지만 백아연보다는 못했다. 부씨 가문도 세대가 사업을 했었지만, 그의 할아버지가 재산을 모두 날렸었다. 그러다 야망이 그를 그 마을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녀는 스무 살부터 그와 같이 있었다. 그들은 공원 벤치에서부터, 첫 번째 집을 사게 되었고, 그의 자존심을 지켜주려고 그녀는 몰래 많은 시합에 참가했었고 그 상금으로 그에게 제대로 된 정장을 사주었다. 그래야 그가 협력할 때 체면이 서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그녀의 손끝은 찔려서 피가 나고 딱지가 앉고, 또 찔려서 피 나고 딱지가 앉는 걸 반복했다. 지금 그녀는 더는 쉽게 손을 찔리지 않았고 찔리더라도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그와 같이 한 고생길이 끝났다고 생각했고 이제 행복만 남았다고 생각했었다... 무대 끝까지 걸어갔고, 부성훈은 마치 오래 기다린 선물을 손에 넣은 듯 긴장해했다. 그는 왼손을 내밀지 오른손을 내밀지 망설이다가, 결국 왼손을 내밀었다. 허지은이 전에 결혼식에서 왼손으로 그녀를 잡아야 한다고 말해줬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 손으로 다른 여자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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