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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장

윤경민은 갑자기 얼굴이 어두워졌다.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 윤북진은 무슨 정이 그렇게 많은 거래? 그 정을 조금 떼서 너한테나 주지.” 고남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됐거든.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해.” 고남연이 웃음을 보일수록 윤경민의 안색은 어두워만 갔다. ‘보나 마나 윤북진이 묘지에서 돌아와 좋은 낯을 보이지 않았겠지. 마음에 둔 사람이 있으면 이 결혼을 받아들이지 말았어야지! 사람 앉혀놓고 저렇게 무시하는 건 너무하잖아.’ 윤경민은 엄숙한 얼굴로 고남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남연, 정신 차려. 점쟁이들의 말이 맞는지 틀린지 네가 어떻게 알아? 이번 생에는 꼭 윤북진하고만 살아야겠어?” 모처럼 보는 윤경민의 진지하고 엄숙한 모습에 고남연은 그를 달래줄 수밖에 없었다. “이혼한대도 그러네.” 이 대답을 듣고 나서야 윤경민은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게 한참 더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고남연은 휴지를 뽑아 손을 닦은 후 소파에서 일어났다. “난 이만 갈래. 너도 일찍 자.” 이때 윤경민도 따라서 일어나며 말했다. “돌아가서 뭐 하려고? 널 반겨주는 사람도 없잖아.” 정곡을 찔린 고남연은 윤경민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너 오늘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윤경민은 아무렇지도 않게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얼른 씻고 자기나 해.” 윤경민의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돌아가도 별로 재미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고남연은 기지개를 켜며 침실로 걸어갔다. 양손을 주머니에 지르고 고남연이 집에 갈 생각을 단념한 걸 보고 나서야 윤경민은 안색이 밝아졌다. … 같은 시각 여지수가 사는 동네에서 빠져나온 윤북진은 혼자 차를 도로변에 세웠다. ‘북진아, 네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 신고는 하지 않을게. 여지수는 우리를 살려줬고 이 사고에 무고한 피해자야. 만약 내가 변이라도 당한다면 앞으로 여지수를 나라고 생각하고 잘 챙겨줘.’ 윤북진은 왼손을 창문에 걸치고 오른손으로 옆에 놓인 담배와 라이터를 집어서 불을 붙인 후 힘껏 한 모금 빨았다가 연기를 내뿜었다. 지나간 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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