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3장 엔딩 9
노정민이 웃었다.
“그때 용산을 떠나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어디 가서 뭘 할 수 있는지 몰라서 아예 북 그리튼으로 출발해서 몇 달을 놀기만 하다가 덴모크의 어느 작은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데 옆 테이블에서 로피 그룹이 골드 그룹을 인수한다는 얘기가 들리는 거예요. 나 들으라고 그랬는지 일부러 콕 찝어서 로피 그룹에 새로 나타난 고씨 성을 가진 여자를 토론했어요.”
“그때는 일부러 그런다는 생각은 못 했죠. 그저 로피 가문과 고씨 성을 가진 여자가 궁금해서 렉스틴 마르헨으로 가서 고씨 성을 가진 여자가 산다는 곳에 죽치고 있었어요. 그러다 집을 나서는 형수님을 보게 되었고 형수님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형수님을 찾아가 형수님을 위해 일하겠다고 했죠.”
사실 그때 북 그리튼으로 간 건 놀러 간 게 아니었다. 이서아의 죽음에 책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만약 이서아가 광야로 도망가는 걸 돕지만 않았다면 광야에서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북 그리튼으로 간 건 현실 도피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모든 게 너무 딱딱 들어맞았다. 렉스틴 회사의 동향이 왜 갑자기 덴모크 술집에서 들린 것인지, 그 소식이 왜 하필이면 노정민의 귀에 들어갔는지 노정민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형, 내가 형수님을 찾아가길 바라서 일부러 그 사람들 덴모크로 보낸 거죠?”
근거 없어 보이는 의심이었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그럴듯했다. 이서아가 죽지 않고 로피 가문에서 지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한수호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한수호가 준비한 계획만 봐도 한수호가 얼마나 꼼꼼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 맞아.”
한수호가 노정민을 보며 인정했다. 노정민은 넋을 잃은 표정으로 한수호를 바라봤다. 역시는 역시였다.
“혼자 렉스틴에 있기도 하고 로피 가문에 정을 붙일 수 있는 사람도 없었잖아. 믿을만한 사람이 없으면 뭘 하든 손과 발이 묶일 테니 네가 옆에서 도와주길 바랐어.”
노정민은 말까지 버벅댔다.
“형, 형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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