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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연설

동료는 진심으로 그녀를 생각하고 있었다. “서아 씨, 계산해 봤어요? 서아 씨 계약 한 달 남았어요. 만약 돌아가지 않으면 한 대표님이 서아 씨와 재계약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럼 계약이 만료되면 자동으로 해제된다고요. 한걸음 물러서서 정말로 계약을 끝낸다고 해도 본사로 돌아가서 끝내야죠. 그래야 서아 씨 경력에 영향 주지 않아요.” 이서아는 이 생각까진 하지 않았지만 직접 가서 만나야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한수호가 지사에 방문하는 날 이서아는 특별히 풀 메이크업에 흰색 원피스를 입고 회사 문 앞에서 기다렸다. 10분 후, 차 세 대가 멀리서부터 서서히 다가오더니 계단 아래에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자마자 한수호가 먼저 내렸고 이서아가 아직 미소를 짓기도 전에 반대편 차 문에서 다른 사람이 내렸다. 백인하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한수호는 어딜 가든 항상 그녀와 동행했다. 이서아는 잠깐 멈칫했다가 그래도 다가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대표님.” 한수호는 그저 그녀를 대충 훑어볼 뿐 대답하지 않고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 지사의 대표와 함께 회사로 들어갔다. 이서아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는 항상 검은 정장을 즐겨 입었는데 맞춤 제작한 거라 그의 체형에 완벽하게 맞았다. 그리고 그의 넓은 어깨와 길쭉한 다리를 더욱 돋보이게 하여 훨씬 멋스러웠다. 백인하는 이서아 앞으로 달려가 나지막하게 인사했다. “서아 언니, 오랜만이에요.” 두 눈을 깜빡이는 모습이 참으로 귀엽고 순진해 보였다. 백인하의 인사에 이서아는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이서아가 이 프로젝트의 담당자라 대표에게 보고하는 회의에서 그녀가 발표를 맡았다. 외국 바이어도 있어 이서아는 영어로만 발표했다. 유창한 영어 실력에 자신감도 넘쳐 보였다. 가끔 가벼운 농담도 섞으면서 모두를 웃음 짓게 만들었다. 연설은 40분 동안 이어졌지만 아무도 지루하게 느끼지 않았다. 발표가 끝난 후에는 사람들의 박수갈채도 받았다. 한수호도 박수를 쳤지만 얼굴에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아 이서아가 정말 발표를 잘해서 친 건지, 아니면 그냥 체면 때문에 친 건지 알 수 없었다. 이서아는 웃으면서 인사한 후 연설대에서 내려왔다. 한수호는 맨 앞자리에 앉아있었다. 그의 옆을 지나가던 이서아는 실수로 테이블 모서리를 차는 척하며 작게 소리를 내면서 허리를 굽혔다. “으악.” 그녀는 갈색 웨이브 머리를 하고 있었다. 머리의 옅은 꽃향기가 테이블 위에 놓인 남자의 손을 가볍게 스쳤다. 이서아가 고개를 들자 마침 한수호의 시선과 딱 마주쳤다. 그의 두 눈이 어찌나 깊고 어두운지 끝없는 구멍처럼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면서 일어나 계속 걸어 내려갔다. 이서아의 자리는 다섯 번째 줄이라 백인하를 지나가야 했다. 백인하는 머리를 숙인 채 필기를 하고 있었는데 머리카락이 그녀의 옆모습을 가리고 있어서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난 후, 한수호가 먼저 회의실을 떠났고 다른 사람들도 차례로 나갔다. 이서아만 혼자 남아서 천천히 물건을 정리하다가 사람들이 다 나갔을 때 서류를 가지고 나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문밖에서 한 사람이 들어왔다. 190cm나 되는 키로 떡하니 선 채 그녀의 앞을 막았다. 이서아는 편안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대표님 왜 또 들어오셨어요? 뭐 두고 가신 게 있어요?” “두고 가긴 했지.” 한수호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더니 번개처럼 그녀를 안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이서아의 다리 사이에 몸을 넣고 손으로 테이블을 짚으면서 그녀를 완전히 품에 끌어안았다. 두 사람의 거리가 무척이나 가까워졌다. 서로의 몸에서 풍기는 옅은 향기가 얽히면서 오랜만의 재회를 알렸다. “출장 간 지 두 달 동안 여기서 뭘 배웠어? 유혹하는 능력? 응?” 한수호가 목소리를 내리깔자 더욱 유혹적으로 느껴졌다. 이서아는 그의 넥타이를 잡고 속삭였다. “대표님은 마음만 먹으면 그 어떤 구실도 만들 수 있네요.” 한수호는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회사 문 앞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향수 냄새가 나질 않았는데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향수 냄새가 났어. 그런데도 의도적이 아니라고?” 그러자 이서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표님 절 엄청 신경 쓰셨네요?” 한수호는 그녀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게 입술을 막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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