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인정사정없이

그런데 이서아가 생각지도 못한 답을 말했다. “10분이면 돼요.” 백인하는 화들짝 놀랐고 옆에 있던 한수호도 눈살을 찌푸렸다. 이서아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침대를 잡으며 김정욱에게 다가갔다. “공장장님, 부탁드릴 게 있어요.” 김정욱이 바로 말했다. “말씀하세요.” 이서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공장에서 사진 찍던 그 인플루언서 불러줄 수 있어요? 아까 그분도 다친 분들을 병원에 데려왔던데 지금도 아마 응급실에 있을 겁니다.” 김정욱은 흠칫하더니 눈치 있게 목소리를 낮췄다. “알았어요. 지금 당장 불러올게요.” 이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둘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듣지 못했다. 한수호는 냉랭한 얼굴로 이서아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백인하의 표정이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백인하는 이서아가 일부러 이러는 건지, 아니면 진짜로 증거가 있는 건지 알지 못했다. 잠시 후 김정욱이 검은 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가방을 쳐다보았다. 김정욱이 이서아에게 말했다. “제가 그 젊은이한테 이런 일이 있었다고 얘기하니까 왜 찾아왔는지 바로 알더라고요. 그러면서 이걸 전해주라고 했어요. 젊은이는 오기 불편하다면서 안 왔고요.” 이서아는 가방을 건네받고 열어보았는데 카메라였다. 이서아가 그를 찾은 건 바로 카메라 때문이었고 수상한 그 남자는 단번에 알아맞혔다. 그 남자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이서아는 바로 앨범을 뒤졌다. 공장에서 왠지 자신을 찍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최근 찍은 사진이 대부분 다 그녀였다. 백인하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 카메라는 뭐예요?” 김정욱이 설명했다. “오늘 젊은 인플루언서가 공장에서 드래곤보트를 찍었거든요. 이게 그 사람의 카메라예요. 아무래도 뭔가 찍힌 게 있길래 이 비서님이 가져오라고 했겠죠?” 백인하의 눈빛이 급격하게 흔들리더니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 카메라 앨범을 뒤지던 이서아는 영상 하나를 클릭했다. 몇 초 보던 이서아는 입꼬리를 씩 올리면서 정지 버튼을 누른 후 백인하에게 카메라를 돌렸다. “내가 줄 잡아당기는 거 직접 봤다면서요? 그럼 이건 뭔데요?” 영상 속에 4번 줄 앞에서 백인하와 얘기 중인 이서아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손을 든 적도 없었다. 사람들은 일제히 다가가 영상을 확인했다. 4K 고화질이라 희미하지도 않았고 조작되었을 가능성도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이서아가 줄을 잡아당겼다고 확신했던 백인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까? 한수호를 포함한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백인하에게 쏠렸다. 백인하는 조금 전부터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걸 눈치챘지만 정말 찍혔을 줄은 몰랐다. 그녀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졌다. “저...” 이서아는 카메라를 들고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저 뭐요?” 이서아가 가까이 다가오자 백인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전... 전...” “내가 진짜 증거를 찾을 줄 몰랐던 거예요? 아니면 이렇게 빨리 찾을 줄 몰랐던 거예요?” 백인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이 사람만 없었더라면 이서아 오늘...’ “찍는 사람만 없었더라면 오늘 내가 누명을 벗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죠?” 백인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어떻게 내가 뭔 생각하는지도 알지?’ 왜냐하면 이서아는 스타 그룹의 비서 실장이니까! 이서아가 능구렁이 같은 사업가들을 상대할 때 백인하는 아직도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백인하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여 가만히 있은 게 아니었다. 이런 유치한 수단을 지금까지 수도 없이 본 이서아였다. “영상이 없었다면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었어요. 줄에 내 지문이 있나 없나 확인하면 바로 알아요.” 백인하는 할 말을 잃었다. “이런 형편없는 수단으로 날 모함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대표님이 인하 씨 편을 들어주니까 내가 저번처럼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했죠?” 백인하는 뭐라 반박할지 몰라 한수호에게 도움을 청했다. “대표님...” 그런데 백인하가 한수호를 쳐다보자마자 이서아는 가차 없이 따귀를 날렸다. 짝! 정말 인정사정이라곤 없었다. 미처 손 쓸 새도 없었던 백인하는 그대로 침대 위로 넘어졌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수호는 이서아의 손목을 잡고 호통쳤다. “이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