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모함
너무도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사고였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치지 않은 사람은 나무를 옮기면서 구조에 나섰고 다친 사람은 병원으로 옮겨졌다.
다행히 드래곤보트가 아직 뼈대만 만들어진 상태라 너무 무겁진 않았다. 이서아가 종아리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골절은 아니었다. 만약 완성된 드래곤보트였더라면 무게가 몇 톤에 달하여 다리가 그 자리에서 으스러졌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찰스도 다쳐서 기절했다. 이 일을 나중에 제대로 설명해야 할 듯싶었다.
그들이 병원에 간 사이 김정욱은 사건의 원인을 재빠르게 조사했다. 알고 보니 드래곤보트를 매달아 놓은 줄 하나가 풀려 드래곤보트가 중심을 잃은 바람에 나머지 줄도 줄줄이 풀리면서 사고가 생긴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줄이 왜 풀렸을까?
병실로 온 김정욱이 씁쓸하게 말했다.
“풀린 줄은 4번 줄이었어요. 그런데 공장에 CCTV가 없어서 왜 풀렸는지 알 수가 없어요. 사람들한테 물어봤는데 사고 전에 딱 한 사람이 그 자리에 서 있었더라고요. 바로...”
한수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하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지금 무척이나 화난 상태라는 걸 알고 있었다.
“누굽니까?”
김정욱은 머뭇거리다가 어느 한 곳에 시선이 머물렀다.
“바로...”
이서아는 창가 쪽 침대에 기댄 채 갑자기 입을 열었다.
“저예요.”
한수호는 이서아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 사고로 이서아의 머리는 잔뜩 헝클어졌고 옷도 더러워졌다. 게다가 가느다란 종아리에 붕대까지 칭칭 감고 있어 참으로 가여워 보였다.
그는 문득 어젯밤이 떠올랐다. 어젯밤에 붉어진 눈시울로 한수호를 쳐다볼 때도 지금처럼 가여웠다. 한수호가 무뚝뚝하게 물었다.
“거기 서서 뭐 했어?”
이서아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인하 씨가 드래곤보트 제조 회사에 투자하면 돈을 벌 수 있냐고 물어봐서 거기 서서 대답해줬어요.”
김정욱은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버냐 못 버냐 둘째치고 드래곤보트를 만들 때 쓰는 삼목 나무만 해도 5년 동안 찾은 끝에 겨우 적당한 거 구했어요. 적당한 삼목 나무가 아니라면 백 미터가 넘는 드래곤보트를 만들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그게 지금 다 망가져서 고칠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손해가 정말 어마어마해요...”
한수호가 물었다.
“줄 건드린 적 있어?”
이서아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없어요.”
그런데 이서아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백인하가 갑자기 한마디 했다.
“있는 것 같아요.”
이서아와 한수호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
현장에서 가장 가볍게 다친 사람이 백인하였다. 손바닥이 바닥에 쓸리면서 피부가 까진 게 다였다. 한수호는 그래도 간호사더러 백인하에게 상처를 치료해주라고 했다.
백인하는 침대 옆에 앉아 그렁그렁한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백인하의 말에 이서아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있는 것 같다니요? 뭐가 있어요?”
이서아의 싸늘한 목소리에 백인하는 겁에 질린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언니가 그때 줄을 잡아당긴 것 같아서...”
한수호가 말했다.
“계속 얘기해봐.”
“그래서... 그때 혹시 실수로 줄이 풀어진 게 아닌가 해서요. 죄송해요, 대표님. 줄을 살짝 건드렸다고 이렇게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알았더라면 서아 언니를 말렸을 텐데... 그럼 이런 일도 없었을 거 아니에요.”
이서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백인하를 쳐다보았다.
한수호가 백인하를 좋아하기 때문에 부리는 수작들이 눈에 보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편애 앞에서 도리는 거론할 가치도 없으니까. 그런데 백인하가 이런 터무니없는 말을 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이서아의 표정이 급격하게 싸늘해졌다.
“한 번 더 말해봐요. 내가 뭘 건드렸다고요?”
백인하는 한수호의 뒤에 숨어서 겁에 질린 척했다.
“대표님.”
한수호는 이서아를 보며 말했다.
“지금 인하한테 따지는 거야?”
다시 말해 입을 다물라는 뜻이었다.
이서아는 백인하의 이런 저급한 수작들이 그저 가소롭기만 했다. 하지만 한수호의 한마디에 95% 정도 쌓였던 억울함과 분노가 바로 극에 달했다. 그녀는 거의 포효하듯 소리쳤다.
“인하 씨의 말이라면 그저 다 믿어요?”
그러자 한수호가 되물었다.
“그럼 뭐가 사실이 아니라는 거야?”
백인하가 겁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대표님, 전 거짓말한 적 없어요. CCTV 확인해보시면 되잖아요. 사실만 말했어요, 전...”
이서아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방금 공장장님이 CCTV가 없다고 했잖아요. 못 들었어요?”
‘어디서 저런 발연기를!’
이서아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자 한수호가 바로 호통쳤다.
“소리 다 쳤어?”
이서아는 순간 멍해졌다. 곧이어 팔다리가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지더니 나중에는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한수호의 성격이 그리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이서아에게 화를 낸 적은 없었다. 3년 동안 단 한 번도.
이번이 처음이었고 입을 다물라고 했다.
백인하는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대표님, 저 진짜 거짓말 안 했어요...”
“난 널 믿어.”
한수호의 한마디에 이서아는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한수호가 이서아에게 말했다.
“오늘 계속 정신이 딴 데 팔렸던데 진짜 건드리지 않았어?”
이서아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침대 머리에 기댔다. 이 순간 한수호가 점점 낯설게 느껴졌다.
그녀는 한수호의 옆에서 3년 일했고 한수호가 직접 비서 실장 자리에 앉혔다. 일이든 생활이든 그 어떤 실수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한수호는 왜 이서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할 거라고 믿는 것일까? 단지 백인하가 한 말이어서?
이서아가 또박또박 말했다.
“만약 제가 건드려서 사고가 난 거라면 인정할 겁니다. 전...”
‘절대 책임 회피하지 않고 거짓말도 안 한다고요.’
하지만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않았는데 한수호는 앞의 말만 듣고 제멋대로 해석했다.
“그럼 지금 뭘 부정하는 거지? 네가 건드린 걸 인하가 봤다잖아. 설마 인하가 널 모함하겠어?”
이서아는 가소로운 나머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당연히 날 모함한 거죠.’
하지만 이 순간 이서아는 제일 미운 사람이 그녀를 모함한 백인하가 아니라 한수호였다.
그녀의 3년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한수호의 눈에 이서아는 대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