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우리는 학교 내에서 유명한 캠퍼스 커플이었다. 하지만 난 말할 수 없는 이유로 우리의 사랑이 한창 불타오르고 있을 때 임세린의 옆을 떠났다.
그리고 몇 년 후, 난 다시 임세린의 앞에 나타났고, 임세린은 출중한 능력과 비상한 머리로 업계에서 떠오르는 샛별이 되었다. 그리고 난 그 여자의 부드러움에 푹 빠져 결국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 모두가 나한테 말했다. 임세린은 지난 몇 년 동안 미친 듯이 날 찾고 있었고 나를 뼛속까지 사랑한다고.
하지만 난 결혼 생활이 7번째 해가 되던 때에야 드디어 깨달았다.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난 아무렇지 않게 스캔들 상대를 집으로 데려오는 임세린을 보며, 이제는 내가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난 내가 떠나면 임세린이 만족할 줄 알았지만, 그 여자는 미친 사람처럼 무릎을 꿇고 애처롭게 애원했다.
“제발 날 버리지마.”
——
병원 건물에서 나오니 밖에는 조금 먹구름이 꼈다.
난 외투로 몸을 꼭 감싸고 병원 진단서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의사의 말로는 난 뇌암이고 남은 시간은 3개월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난 전혀 개의치 않았고, 드디어 이 고통스러운 결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해탈감이 들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보고 싶은 풍경들을 두 눈으로 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지난 시간 동안, 난 사랑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너무 많은 풍경을 놓쳤다.
“주환아, 저녁 준비해. 나와 강우는 집에서 밥 먹을 거야.”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이 문자를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유강우는 임세린의 비서였다.
비록 뛰어난 업무 능력은 없지만, 임세린의 옆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회사 사장님들이 아부해야 하는 상대가 되었다.
나와 유강우는 회사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 내가 도시락을 들고 임세린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니, 유강우가 안에서 나왔다.
그는 일부러 목에 있는 옅은 립스틱 자국을 드러내고, 문 옆에 기대어 날 바라보며 조롱이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형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누나는 지금 바빠요, 조금 뒤에 다시 오셔야 할 것 같은데.”
“특별한 일은 아니에요, 이거, 세린이한테 전해 줘요.”
난 무의식적으로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가, 곧 풀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도시락을 건네주었다.
난 임세린이 바쁘단 말이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달려 들어가 따질 용기가 없었다.
매번 결혼을 배신한 거냐고 따질 때마다 우린 크게 싸웠고, 임세린은 그날 밤에 바로 다른 남자를 집으로 데려왔기 때문이다.
매번 내 앞에서 새 남자를 자랑하는 임세린의 낯짝을 바라보며, 내 마음도 점점 차가워졌다.
그리고 이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내 목숨은 3개월만 남았으니 남은 시간 동안만큼은 나를 위해 살고 싶었다.
난 마지막 남은 돈을 들고 슈퍼로 향했다. 떠나기 전에 한 상 가득 차리고 정중하게 작별 인사를 할 생각이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어야 하니 이런 방식으로 우리 사랑을 끝내고 싶었다.
임세린은 밤 9시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식탁 위의 요리들은 진작에 식었다.
임세린은 온몸에서 술 냄새를 풍기며 유강우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걱정이 내 눈동자에서 스쳐 지나갔고, 다가가 부축하려다가 바로 포기했다.
유강우는 숙련된 솜씨로 임세린을 소파에 내려놓고 따듯한 수건을 얼굴에 덮어 주었다. 그리고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나한테 말했다.
“형, 물 좀 끓여 줄래요? 누나가 너무 많이 마셨어요.”
난 가볍게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가 물을 끓였다. 그리고 식탁에 있는 식은 요리들을 전부 쓰레기통에 버렸다.
비록 내가 반나절을 허비하며 정성스레 만들었고, 작별 인사를 위한 마지막 만찬이지만, 이제는 의미를 잃었다.
내가 다시 임세린의 맞은편에 앉았을 때, 그 여자는 술이 조금 깬 듯했다.
난 따뜻한 물을 임세린의 앞에 갖다 놓고, 눈썹을 찌푸리고 있는 그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한테 할 말 있어.”
“나한테?”
임세린은 술이 아직 덜 깬 듯이 그 말을 듣고 멍한 표정을 짓다가 한참을 지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할 말 있으면 빨리해, 난 시간 없어.”
난 그 말을 듣고 가볍게 웃었다. 지금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었고 그저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응.”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나와 함께 할 시간이 없는 거겠지.’
하지만 난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바로 하려던 얘기를 시작했다.
“우리 이혼해!”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난 분명 심장의 떨림을 느꼈다.
그 느낌은 기쁨 같았지만, 사실 아쉬움이 더 많았다.
난 흙으로 빚은 인간이 아니었으니, 8년이란 시간은 그렇게 쉽게 내려놓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3개월밖에 남지 않은 내 목숨을 여기서 낭비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난 정말 떠나야 한다.
유강우는 그 말을 듣고 믿기 힘든 표정으로 나를 힐끔 바라보았다. 분명 그 눈빛 속에서 비웃음을 느꼈다.
내 추측이 맞다면 유강우는 지금 나한테 바보라고 했을 것이다.
사실 유강우의 반응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줄곧 “정실”이 되고 싶었지만, 법률상의 남편인 내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남편이 지금 주동적으로 이 모든 것을 표기했으니, 이건 분명 바보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짓이었다.
하지만 임세린의 반응은 의외였다.
그 여자는 갑자기 술이 완전히 깬 듯했고, 술에 취해 찌푸리고 있던 미간 주름이 더 깊어졌다.
“대체 뭐 하자는 거야?”
“이혼하자니까, 임세린, 우리 이혼해!”
난 임세린의 전체 이름을 부른 적이 거의 없었다. 어떤 때이든 항상 그랬다.
오직 진지하게 의논할 일이 있을 때만, 그렇게 불렀다.
“이혼?”
임세린은 믿을 수 없는 말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유강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넌 나가 있어.”
유강우는 그 말을 듣고 밖으로 나갔고, 방문까지 닫았다.
이제 방에는 나와 임세린 두 사람만 남았고,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고 무거운 침묵만 흘렀다.
“왜?”
한참이 지나고, 결국 임세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얼굴에는 먹장구름이 가득했다.
“우리 사랑은 이제 종착역에 도착했고 더 이상 서로를 괴롭힐 필요 없어.”
내 목소리는 아주 평온했다. 마치 나와 상관없는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괴롭혀? 허! 넌 우리 사랑이 가장 뜨거울 때 사라졌으면서, 이제 와서 내가 널 괴롭힌다고? 대체 뭐가 불만이야? 너 돈 좋아하잖아? 줄게, 60만 원, 600만 원, 6000만 원, 심지어 6억이라 해도 내 말 한마디면 넌 가질 수 있어. 하지만 이혼은 꿈도 꾸지 마. 다시는 내 곁에서 떠날 생각하지 말라고.”
임세린은 일어서서 마치 흥미로운 장난감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번 의논이 이렇게 끝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강우와 결혼하고 싶지 않은 건가? 대체 왜 나한테 집착하는 거지?’
난 숨이 막혔고, 눈앞이 점점 흐릿해졌다. 아마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