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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나 하시훈 씨랑 정략결혼을 하기로 했어.” 어두운 방, 설인아가 핸드폰으로 친구에게 결혼소식을 알렸다. 친구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란 듯 보이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드디어 육진수랑 헤어지기로 한 거야? 만난 시간이 얼만데 대스트랍시고 네가 팬들한테 그렇게 욕먹는데 공개할 생각도 없었잖아. 너희들 언젠간 헤어질 줄 알았어.” 설인아가 덤덤하게 말했다. “네 말이 맞아.” “근데...” 친구가 잠깐 망설였다. “갑자기 왜 헤어지는 거야? 네가 정략결혼에 동의한 거 육진수도 알아? 혼인 신고는 언제인데?” “날짜는 잡혔어.” 설인아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내일 바로 혼인 신고하러 갈 거야.” “설인아.” 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고 큰 키에 웅장한 체격을 가진 육진수가 안으로 들어왔다. 수많은 팬을 열광하게 하는 잘생긴 얼굴은 지금 오만함으로 가득했다. “혼인 신고? 설인아. 내가 언제 내일 혼인 신고한다 했어?” 설인아가 수화기 너머로 듣고 있는 친구에게 일이 있어 먼저 끊겠다고 하고는 몸을 돌려 육진수를 마주하고 섰다. “여긴 어쩐 일이야?” 설인아는 설명 대신 이렇게 되물었다. “내가 나타나길 바라서 그런 문자 보낸 거 아니야?” 육진수가 핸드폰을 들고 거들먹거렸다. “석 달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고집부리는 거야?” 육진수의 핸드폰에 어제 오후 설인아가 보낸 메시지가 보였다. [진수 씨, 내일 오전 10시까지 구청으로 혼인 신고하러 오지 않으면 우리 다시 보지 말자.] 설인아가 직접 보낸 문자를 보고도 멍한 표정을 짓자 육진수의 차가운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나 지금 인기 상승세인 거 몰라? 찍어야 하는 작품이 산더미인데 지금 혼인 신고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기나 해?” “알지.” 설인아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잘못했어. 앞으로 절대 결혼 소리 꺼내지 않을게.” “너...” 화를 내려던 육진수가 이 대답을 듣고 잠깐 넋을 잃었다가 설인아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마음이 약해져 드물게 목소리를 낮췄다. “잘못한 거 알았으면 됐어. 언젠가는 할 결혼인데 지금은 아니야. 그리고 그 의심병 좀 고쳐. 나랑 연우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이를 들은 설인아가 웃음을 터트렸다.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설인아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일 욕심이 하늘을 찌르는 남자가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파파라치들을 무시하고 설연우와 밀회를 즐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설인아가 육진수를 사랑한 지도 10년이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설인아는 육진수 뒤에서 숨어 지극정성으로 뒷바라지했다. 어릴 때 아버지의 외도로 원래도 몸이 좋지 않은 어머니가 마음의 병까지 얻게 되면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새어머니와 재혼하면서 여동생까지 데려왔다. 그 뒤로 설연우는 설씨 가문의 공주님이 되어 설인아가 누렸던 모든 걸 뺏어갔고 설인아는 구박이라는 구박은 다 받으면서 자랐다. 육진수의 등장은 설인아에게 따듯함이자 구원이었다. 평생 함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연우도 육진수를 좋아하게 되었다. 처음엔 육진수도 설연우를 미워했다. “설씨 가문에서 인아를 얼마나 구박했는지 다 알아. 난 언제나 인아 편이니까 멀리 떨어져.” 설인아는 이 말에 감동했고 위안을 느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설연우는 자신감이 넘쳤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요. 오빠는 내 롤모델이니까 우러러보면서 가까이하고 싶은 건 당연한 거예요. 고작 쓴소리 몇 마디 들었다고 가버린다면 오빠를 좋아할 자격이 없어요.” 설연우는 생긴 건 부드럽고 연약했지만 말하는 건 직설적이면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귀여우면서도 오만한 고양이 같은 설연우를 보며 육진수도 잠깐 넋을 잃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좋아한다는 말이 그렇게 쉬워?” 설연우가 턱을 쳐들며 콧방귀를 뀌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를 보러 온 거지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게 아니에요. 오빠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왜 안 된다는 거예요?” “나 오빠 좋아해요.” 이 말에 설인아의 가슴이 철렁했다. 설연우의 말보다는 넘봐서는 안 되는 사람을 넘보는 그 태도였다. 육진수는 이 말이 틀렸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했고 오히려 낯빛이 밝아지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두 사람은 마치 드라마의 남 여주인공 같았다. 그 뒤에 일어난 일들도 설인아의 생각을 입증해 줬다. 설연우가 설인아와 육진수 사이에 나타나는 횟수가 늘어났고 두 사람은 연락처까지 주고받게 되었다. 설인아와 육진수의 데이트도 어느새 세 사람의 나들이가 되었다. 설인아는 원래도 설연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점점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고 육진수는 그럴 때마다 팬에게 가까이할 기회를 주어 소원을 성취하게 하는 거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쫓아버릴 거라고 위로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설연우는 쫓겨나지 않았고 설인아와 육진수의 사이만 점점 더 멀어졌다. 게다가 육진수가 이런 말을 하는 경우도 점점 늘어났다. “인아야. 어른들이 잘못한 건데 연우까지 끌어들이면 안 되지. 연우 순진하고 착한 아이야. 마음이 약한 데다 겁도 많고. 뭘 잘못할 아이는 절대 아니야.” “연우는 너에 관해서 싫은 소리 한번 한 적 없어. 왜 너는 연우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불편한 거 있으면 아버지 찾아가서 해결하면 되잖아. 마음 약한 애 괴롭히는 게 맞아?” 설인아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툼이 잦아졌고 육진수도 점점 바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래도 짬을 내서 보러오곤 했지만 뒤에는 문자에도 별로 답장하지 않았다. 설인아도 정말 바빠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지만 스태프들을 통해 들은 건 육진수가 아무리 바빠도 설연우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간다는 말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회사나 촬영팀에 데리고 나가는가 하면 에르메수까지 사줬다. 설인아도 에르메수를 받긴 했지만 열어보니 가방이 아닌 사은품이었다. 이 문제로 육진수에게 따진 적도 있지만 육진수는 매번 언짢은 표정으로 그를 사랑해 준 팬에게 보답하느라 해준 것일 뿐 의심하지 말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설인아도 어쩔 수 없이 꾹 참고 지내다가 어느 날 두 사람이 키스하는 사진을 받게 되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찍은 사진들이었고 보낸 사람은 심지어 설연우였다. 육진수가 말했던 연약하고 부드러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말투가 당당했다. [언니, 이미 눈치챘을 것 같은데. 이제 진수 오빠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야.] [언니는 영원히 나 못 이겨.] 설인아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 육진수를 찾아가 따졌지만 육진수는 그 벌로 석 달 동안 설인아를 방치했다. 오해일지도 모른다고, 막무가내로 가서 따졌으니 성가셔서 찾아오지 않는 거라고, 대화로 잘 풀면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용기 내어 그런 문자를 보냈지만 설인아는 문자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눈으로 직접 두 사람이 밀회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설인아는 웃음이 짙어졌다. 육진수는 설인아의 웃음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이렇게 말했다. “왜 웃어? 설마 아직도 화난 거야? 내가 다 설명했잖아. 나랑 연우는...” “믿어요.” 육진수의 말을 끊은 설인아가 덤덤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하지만 내가 한 문자도 진심이에요. 오늘 오전 10시에 나타나지 않았으니 우리 사이도 여기까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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