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유소정이 여씨 가문에 돌아가기도 전에 여민석이 전화를 걸어왔다. "혼인신고서, 네가 한 짓이지? 돈 줬잖아."
유소정은 휴대폰을 꽉 잡고 호흡을 가다듬은 후 말했다. "혼인신고서를 보고 이혼서류를 봐야 더 기억에 남잖아. 안 그래?"
"유소정, 분수 지켜." 여민석은 짜증 섞인 차가운 말투로 협박하듯 말했다. "너..."
"끊을게." 여민석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유소정은 통화를 종료했다.
여민석과 말씨름 하기 싫어서가 아닌, 유산 후 출혈이 다시 일어난 것이었다. 유소정은 벌벌 떨며 배를 움켜쥐고 가방에서 바늘이 담긴 파우치를 꺼내 자신의 혈 자리에 침을 놓았다.
휴대폰은 끊임없이 진동했고, 유소정은 택시에 힘없이 기댄 채 잠들었다.
여씨 가문에 도착할 때쯤에야 유소정은 기색을 조금 회복했다.
차 문을 열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뉴스 하나에 우리 주가가 얼마나 내려갔는지 알아? 유씨 집안 몇 개로도 턱없이 부족해!"
"결혼한 지 3년이나 됐는데 아이도 없이 우리 집에 재수만 사나워졌다니까."
"그러니까. 집안이 있어, 재능이 있어? 아이 하나도 가지지 못하니 원!"
말을 하는 사람은 여민석의 어머니 곽미정과 여민석의 고모 여진화였다.
그들은 여민석이 유소정을 선택한 것에 항상 불만을 품고 있어 만날 때마다 가시 돋친 말을 했다. 마치 이렇게 해야 유소정과 가족이 되어 깎인 체면을 돌이킬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모두 조용히 해라!" 위엄있는 목소리가 울리자, 두 사람 모두 입을 다물었다.
이분은 여씨 어르신, 여씨 가문의 창립자이자 여민석의 할아버지였다.
여태식은 평생 상업계를 누비며 여씨 가문에 길을 틔웠고, 집안에서는 그의 말씀이라면 감히 거역할 사람이 없었다. 여씨 가문에서 여민석이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사람이 바로 할아버지였다.
하지만 곧바로 할아버지가 세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참전하여 폐에 상처가 남아 있었다. 젊을 때는 괜찮았으나, 나이가 드니 그때의 고통이 점점 드러나는 것 같았다.
"약 주세요." 여민석이 급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유소정이 거실에 들어서자, 이미 난리법석이었다.
여진화는 유소정을 보자마자 유소정을 힘껏 밀치며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왜 기침을 하는 가 했더니, 네가 돌아와서 그런 모양이구나!"
유소정은 휘청이며 뒤로 물러섰고, 뼈에 금이 간 탓에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여진화는 사과는커녕 오히려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재수도 없어라. 그래서 아이를 못 낳나? 자식이 생겨도 네가 죽일 팔자구나!"
이 말을 들은 유소정은 눈앞이 흐릿해졌다.
옆에 있던 여민석은 유소정의 안색이 안 좋아 보이자 무의식적으로 팔을 내밀었다.
그러나 여민석이 손을 내밀자마자, 유소정은 몸을 피했다. 조금 전 단호하게 끊긴 통화를 생각하자, 여민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시선을 줄곧 자신에게만 두던 유소정이 오늘은 여민석을 피하고 있다.
여민석은 콧방귀를 뀌며 손을 거두었다.
유소정은 있는 힘껏 이를 꽉 깨물고서야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말을 하지 않고 할아버지의 혈 자리를 몇 번 반복하며 주물렀다.
곧바로 유소정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마사지가 힘든 게 아닌, 식은땀이 계속 나 손이 미끄러졌다.
그러나 유소정의 마사지에 할아버지의 기침도 점점 줄어들었다. 하인이 약을 가져오자, 할아버지는 곧바로 약을 마셨다.
"쯧, 서민 집안 출신답게 하인 노릇은 잘하네." 여진화는 할아버지가 좋아진 걸 보자 무안해하며 불쾌한 듯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다. "불쌍한 척은 누가 보라고 하는 거야?"
여씨 어르신과 여민석의 눈빛이 여진화에게 몰리자, 그녀는 아니꼬운 듯 고개를 돌렸다.
"오늘 성안병원에서는 어떻게 된 일이냐?" 할아버지는 매서운 눈빛으로 여민석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왜 민석이 탓을 해요?" 곽미경은 여민석을 보더니 유소정을 흘겨보며 말했다. "민석이는 항상 분수를 잘 지켜요. 여기 누가 자꾸 사모님 자리만 떡하니 차지하고 있잖아요. 우리 여씨 가문, 이러다가 정말 대가 끊어지겠어요."
곧바로 곽미정은 웃으며 말했다. "제가요, 민석이 사주를 좀 봤는데... 우리 민석이는 음기가 강해 양기가 강한 백 씨 성을 가진 여자와 아주 잘 맞다고 하더라고요! 그때가 되면 아이는 당연히 문제없죠. 누구처럼 인공수정으로도 임신 못 하는 신세가 아니라요!"
사주를 보기는 무슨, 백은서는 귀국 후부터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어 더이상 3년 전의 백은서가 아니었다. 의학계의 유망주이자 제일 미녀, 백은서 이름만 들어도 곽미정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어디 이 아무것도 없는 유소정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곽미정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쿵 하고 치며 물었다. "내가 너한테 물었냐?"
"할아버지." 여민석은 어깨를 곧게 펴고 말했다. "은서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할아버지가 화를 내려던 그때, 유소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저 임신했어요."
순간, 거실 전체가 조용해졌다. 여민석은 유소정을 앞으로 끌어당기며 반짝이는 두 눈으로 말했다. "임신했어?"
여민석은 유소정을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지워." 여민석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유소정은 눈을 감았다. 다행히도 눈이 너무 건조해 눈물이 나지 않았다. 유서정은 진지하고 낯선 눈빛으로 여민석을 보며 지금 이 단호하고 매정한 모습을 기억하려는 듯했다.
기대도 정도껏 해야지. 꼭 직접 답을 들어야 절망하다니.
"유소정!" 유소정의 넋을 잃은 모습을 보자, 여민석이 재촉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오해하기 쉽게 말을 했네요. 오늘 민석이와 은서 씨는 오해입니다." 유소정은 고개를 숙였다. "제가 임신했다면, 민석이가 은서 씨를 병원에 바라다 준 게 오해가 되지 않을 거 아닙니까. 할아버지,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
유소정이 이렇게 말을 하면, 여민석의 말대로 백은서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 된다.
유소정의 말을 듣자, 여민석은 유소정을 힐끔 쳐다보았다. 유소정의 얼굴은 매우 창백했으나, 단아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감출 수가 없었다. 차가운 눈빛은 매우 맑았으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오히려 유소정 본래의 차갑고 도도한 분위기가 돋보였다.
여민석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유소정이 이런 눈빛으로 자신을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거냐?" 할아버지는 크게 호통치며 말했다. "오해라고 해도 다음부터 다시는 이러지 말아라! 알겠느냐?!"
할아버지가 유소정의 말을 믿는 게 아닌, 이 정도로 끝내자는 뜻이었다.
할아버지는 협박 편지 사건도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뜻 없이는 아무도 공식 계정에 성명서를 낼 수 없었다.
둘이 잘살고 있으니, 백은서 때문에 이러는 건 의미 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둘이 결혼 3주년 기념일이니 돌아가서 잘 보내라." 할아버지는 손을 흔들더니 여민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은 어디도 가지 말고 소정이랑 보내..."
"할아버지, 사실 말씀드릴 일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유서정은 가방에 준비해 둔 서류를 꺼냈다.
유소정이 이혼 서류를 꺼내기도 전에 여민석이 유소정의 다시 손을 밀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