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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는그때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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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송서윤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녀가 화내지 않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육지완과 김인우도 한숨을 돌렸다. 이때 육지완이 먼저 앞으로 다가가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짐 정리 안 해도 돼. 너무 많아서 일일이 하려면 힘들 거야. 내가 나중에 우리 집 기사님 불러올 테니까 그때 함께 새집으로 이사하면 돼.” 김인우도 그의 말에 찬성했다. 그 순간, 송서윤은 두 남자한테서 한때 듬뿍 사랑받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어릴 때 송서윤이 까르르 웃으면 육지완과 김인우는 사랑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지그시 바라봤다. 다만 이젠 소년들의 맹세가 부질없는 백지장으로 변해버렸다. 송서윤은 서지아를 힐긋 보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괜찮아. 대부분 짐은 내가 직접 정리해야 하거든.” 말을 마친 그녀는 두 남자의 안색을 살피지도 않고 단호하게 자리를 떠났다. 집에 돌아온 후 그녀는 짐 정리를 마치고 깨끗이 씻은 후 침대에 누웠다. 이때 갑자기 서지아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앙증맞은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전해지고 말투 속에 의기양양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언니, 나 오늘 밤에 지완 씨랑 인우 씨네 집에 다 다녀왔지 뭐야. 두 분 부모님들도 나한테 엄청 잘해주셨어.” “집안에서 대대로 물려받은 액세서리까지 나 주겠다고 하는데, 이거 설마...” 송서윤은 한참 듣다가 그녀의 자랑질을 가차 없이 잘랐다. “너희들 그까짓 일은 관심 없으니까 나한테 얘기할 필요 없어. 나랑 무관한 일이잖아.” 말을 마친 그녀는 전화를 툭 꺼버렸다. 해성을 떠나기 전날, 송서윤은 절친 주아린과 약속을 잡았다. 그녀는 해성에 친구가 많지 않다. 어려서부터 육지완과 김인우가 그녀의 사교 범위를 지나치게 통제하다 보니 남자친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연애편지까지 차단하는 수준이었으며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여자애들까지 일일이 간섭했다. 그들은 딴 사람이 송서윤에게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가여운 표정을 지으면서 가스라이팅을 해댔다. “서윤아, 우리 둘만으론 부족해? 네가 너무 완벽해서 여자애들까지 널 좋아하게 될까 봐 걱정돼서 그래.” 두 남자는 송서윤을 향한 소유욕이 끔찍할 수준이었고 그녀의 두 눈에 오직 본인들만 채워지길 바랐다. 그랬던 두 인간이 지금은 이토록 매정하게 그녀를 밀쳐내고 있었으니... 새로 오픈한 레스토랑에서 주아린은 송서윤을 한참 기다렸다. 드디어 그녀가 들어오자 주아린은 다정하게 포옹해주었다. 내일 막상 떠날 걸 생각하니 차오르는 서러움을 어쩔 수가 없었다. “서윤아, 정말 경주 돌아가서 결혼할 거야? 난 너랑 떨어지기 싫단 말이야.” “난 그래도 네가 지완이나 인우 둘 중 한 명이랑 결혼하고 평생 해성에 남을 줄 알았어. 그렇게 되면 우린 자주 만날 수 있잖아.” 송서윤은 그녀의 말을 듣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걔네들은 걔네들만의 선택이 있고 나도 내 나름 선택을 했어.” 이 말을 들은 주아린은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문득 서지아가 떠오르자 주아린의 안색이 확 일그러졌다. 그녀는 씩씩거리면서 송서윤에게 말했다. “네가 전에 서지아 걔를 그렇게 잘해줬는데 어쩜 이래?” 이에 송서윤이 얼른 말을 잘랐다. “됐어. 이런 쓸데없는 사람들 얘기는 그만하자. 나중에 결혼하면 더는 서지아 볼 일도 없어. 어떻게 수작 부리든 나랑 아무 상관 없잖아.”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서지아가 마침 이 레스토랑으로 들어왔다. 송서윤과 주아린이 레스토랑 입구 쪽 테이블에 앉다 보니 방금 나눈 대화가 얼핏 들렸지만 자세히 듣지는 못했던지라 서지아가 쪼르르 다가왔다. “언니, 누가 결혼해? 나도 참석할 수 있어? 아직 결혼식 한 번도 못 가봤는데.” 사실 송서윤은 이토록 분수를 못 지키는 인간을 별로 본 적이 없다. 다만 서지아가 수작이 많은 여자란 걸 진작 알고 있었고 또한 이제 곧 해성을 떠날 테니 더 화내지도 않고 침착하게 임했다. 오히려 옆에 있던 주아린이 분노를 못 참고 포크를 테이블에 힘껏 내팽개치고는 서지아를 째려봤다. “내 결혼이야! 넌 올 자격 없어. 이제 만족해?” “제발 선 좀 지켜. 우리가 아주 친해?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 건데? 오지랖도 정도껏 피워야지.” 주아린이 언성을 높이면서 험하게 쏘아붙이자 서지아는 식겁한 듯 몸을 움찔거리며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뒤에서 따라오던 육지완과 김인우가 마침 흐느끼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서지아는 이때다 싶어 두 남자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다. 육지완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따지지도 않은 채 어두운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속상해하는 서지아를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내가 있는 한 우리 지아는 누구 결혼식이든 다 참석할 수 있어.” 김인우도 뒤질세라 한 마디 덧붙였다. “나도 있잖아! 결혼식이 아니라 하늘의 별이라도 우리 지아만 따달라고 하면 따줄 수 있어. 그러니까 하찮은 인간들 신경 쓰지 마.” 두 남자가 양옆에 든든하게 서서 어르고 달래자 서지아가 끝내 미소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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