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불을 피우니 주위가 밝아졌고, 두 사람은 추위를 덜 타게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마음은 차갑게 얼어붙은 것 같았다. 두 사람 모두 정말 이렇게 죽게 될까 두려웠다.
진태현은 손을 뻗어 불을 쬐다가, 어느새 바짝 다가온 이설아에게 주의를 돌렸다.
“이사라 씨의 쓰레기 같은 인성을 이제야 알게 되었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이사라 씨를 편든 제가 정말 한심하네요. 이제야 그날 태현 씨가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이해가 가네요. 이사라 씨는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이설아는 팔을 구부려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하... 그날 자리에 있던 모두가 이사라의 편을 들었었죠. 이사라가 진짜 사랑을 찾은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하면서, 이사라를 죽이려고 한 제가 잘못된 거라고 입을 모았잖아요. 이제야 생각이 바뀐 거예요?”
진태현은 비웃으며 말하자, 이설아는 당황스러워하며 변명했다.
“그때는 이사라 씨가 이렇게 나쁜 사람인지 전혀 몰랐어요. 너무 늦게 알게 됐네요. 이제 우리는 여기서 죽게 될 운명인가 봐요...”
이설아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태현 씨,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요?”
불빛이 이설아의 예쁜 얼굴을 비추었고, 그녀의 눈빛이 약간 흐릿해 보였다.
이설아는 말을 꺼내려다 망설였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데요? 말해 봐요.”
진태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설아는 부끄러워하며 진태현을 쳐다보며 얼굴이 발그레 해졌다. 그러고 한참 침묵하다가 간신히 다시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참나! 태현 씨는 정말 눈치가 없어요! 됐어요. 별거 아니에요...”
이설아는 이사라를 편들었던 지난밤의 자신이 부끄러워 배를 움켜잡고 고개를 숙였다.
“이 구덩이에 떨어진 마당에 합심해서 잘 이겨내야죠. 잘 생각했어요. 힘을 합쳐야 그나마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어요.”
진태현은 이설아를 한 번 쳐다보고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설아는 배를 움켜잡고 쑥스러워하며 웃었다가, 진태현의 팔을 잡고 살짝 흔들었다.
“오해도 풀렸고, 우린 이제부터 생사를 함께 나눌 파트너잖아요? 먹을 것 좀 구해줄 수 있어요? 어젯밤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정말 배고파요.”
진태현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오랫동안 공복이다 보니 위가 경련을 일으킬 지경이었다.
진태현은 이설아에게 구덩이에 지핀 불을 꺼지지 않도록 나뭇가지를 주어다 위에 쌓으라고 하고, 구덩이 안에서 먹을 것을 찾아 나섰다.
진태현은 얕은 웅덩이를 발견하고 거기서 먹을 것을 찾기로 했다. 작은 물고기나 조개류가 있을 것 같았다. 먼저 물을 한 모금 마셔보니, 입안에서 청량감이 느껴졌다.
물을 마신 후 진태현은 먹을 것을 찾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이 작은 물웅덩이에는 물고기가 없었고, 벽에 몇 개의 작은 달팽이만 달라붙어 있었다.
진태현은 달팽이라도 주워가 불가에 놓고 구워서 먹기로 했다. 달팽이는 단백질의 좋은 공급원이었지만, 배를 채울 수는 없었다.
진태현은 주변을 더 찾아봤지만, 먹을 만한 것은 없었다.
서서히 지치기 시작할 때쯤, 그는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물웅덩이 옆에 있던 큰 돌을 뒤집어 보았다. 그곳에는 이끼가 많이 자라 있었다.
SNS에서 생존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던 진태현은 이끼는 먹을 수 있는 식물이라고 판단했다. 게다가 이끼는 매우 깨끗한 곳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먹어도 배탈이 날 리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먹고 배탈이 나지만 않는다면 뭐가 됐든 배만 불릴 수 있으면 됐다.
진태현은 모든 이끼를 긁어모아 손바닥에 올려놓고 물에 씻었다. 그런 다음 불가로 돌아가 나뭇잎 몇 개를 찾아 이끼를 올려놓고 한 움큼씩 집어먹기 시작했다. 지금은 맛과 식감보다는 배를 채우는 것이 중요했다.
진태현은 위가 더 이상 경련을 일으키지 않을 때까지 무아지경으로 이끼를 씹어 먹었다. 계속 먹다 보니, 나름 맛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진태현이 우걱우걱 이끼를 먹고 있을 때, 이설아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잠시 후 이설아가 물었다.
“지금 뭐 먹고 있는 거예요?”
“이끼요... 많이 찾아놨으니까 배고프면 먹어요.”
진태현은 배가 어느 정도 찼는지, 마지막 한 입을 먹고 손을 내려놓았다.
이설아는 여행 전문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면서, 예쁘장한 외모와 부드러운 말투, 그리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많은 남성 팬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톱 랭킹 크리에이터는 아니었지만 돈도 꽤 벌어들였다.
부족한 것 없이 살아온 이설아는 이렇듯 허름하고 날것의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기에 ‘이끼’라는 단어를 듣고 얼굴에 혐오감을 드러냈다.
“이거 먹을 수 있는 거예요? 너무 더러워 보이는데요?”
진태현이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아까 다 살펴봤는데 여기 이끼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굶어 죽고 싶으면 계속 투정 부려요. 말리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진태현은 구워진 달팽이를 꺼내 한 번에 세 개를 먹었다. 오랜 시간 굶주리니 달팽이조차도 아주 맛있게 느껴졌다. 이설아는 잠시 투정을 부리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이끼를 두 움큼 집어 입에 넣었다.
하지만 역시 비릿하고 역한 맛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씹지도 않고 곧바로 웅덩이로 달려가 웅덩이 물을 입에 넣고 약을 삼키듯이 이끼를 꿀꺽 삼켜 버렸다.
어쨌든 결국 이설아는 남은 이끼를 다 먹어 치웠다.
배를 채우고 따뜻한 모닥불 곁에 있으니 잠시나마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기분이었다.
하지만 곧 진태현은 이곳에 계속 머물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구덩이에서 나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끌어모은 나뭇가지는 내일 아침까지밖에 탈 수 없었다.
내일도 나갈 수 없다면 정말 여기서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진태현은 이설아에게 자신의 뒤를 따라오게 하고 구덩이 안에서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이 구덩이는 꽤 넓어서 말소리도 메아리칠 지경이었다. 진태현은 이설아를 데리고 구덩이를 한 바퀴 돌며 모든 구석구석을 살펴보았지만, 모든 출구는 막다른 길이었다.
두 사람은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잠시 침묵했다.
진태현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사람이 오지 않는다면 두 사람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설아도 그 점을 분명히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창백한 얼굴로 진태현에게 다가가 기댔다.
두 사람은 한 바퀴 돌아 다시 모닥불 쪽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태현은 뒤로 누워 손을 베개 삼아 조용히 잠을 청하려 했다.
진태현이 거의 잠들 뻔했을 때, 갑자기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서 소리가 나는 쪽을 확인해 보니 역시나 이설아가 울고 있었다.
“왜 울어요? 아직 죽는다고 절망할 필요 없어요. 내일 다시 출구를 찾으면 돼요.”
진태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