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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긴급 속보입니다. 오늘 오전 10시 23분, 나루 항공사 NA620 편이 비행 중 태평양 상공에서 실종되었는데...” 사방에서 차오르는 물 때문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숨이 막히는 질식감에 임유나는 손발을 허우적거리며 발버둥 쳤다. 이때, 부력으로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귓가에 쟁쟁한 파도 소리가 사라지면서 눈이 번쩍 떠졌다. ‘내가 왜 욕조에...?’ 임유나는 안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고, 승무원이 기내식을 나눠주는 동안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더니 누군가 비행기 날개에서 검은 연기가 난다고 외쳤던 기억이 났다. 결국 바다에 긴급 착륙했고, 패닉에 빠진 승객들이 허둥지둥 구명조끼를 입는 와중에 바닷물이 빠르게 차올라 수위가 점점 높아졌다. 순간 임유나는 꿈인지 현실인지 몰라서 막막했다. 이내 목이 간질거리자 연신 기침했다. 이때, 밖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낯익은 얼굴을 보는 순간 임유나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속상한 듯 입을 삐쭉 내밀고 안아달라는 식으로 손을 뻗어 애교를 부렸다. “시후야!” 기다란 속눈썹에는 여전히 물방울이 맺혔고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강시후는 임유나의 남편이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때부터 사랑에 빠져 대학교를 졸업한 다음 결혼까지 골인했다. 이 세상에서 누가 임유나를 가장 예뻐하냐고 물으면 단연코 강시후밖에 없을 것이다. 강시후가 예전처럼 그녀를 끌어안고 볼에 입맞춤하면서 꿈은 가짜라고 자기가 곁에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해줄 거로 생각했지만 갑자기 목을 덥석 붙잡히게 될 줄이야! 임유나는 비로소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앞의 남자는 강시후인 듯 강시후가 아니었다. “누가 널 보냈어? 감히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다니? 간덩이가 부었군.” 남자의 싸늘한 눈동자가 임유나의 얼굴을 향했고, 마치 그녀를 통해 누군가의 모습을 회상하는 듯싶었지만 단 1초도 지나지 않아 그리움은 곧 무자비함과 쓸쓸함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뿜은 탓에 임유나는 잔뜩 겁에 질렸다. 어쩌면 눈앞의 남자는 정말 그녀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두 가지 선택권을 줄게. 스스로 가서 얼굴을 바꾸든가, 아니면 내가 도와주도록 하지.” 말투는 가볍기 그지없었지만, 차마 거절하기 힘든 단호함이 묻어나 결코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말을 마친 남자는 똑바로 일어서더니 옆에서 휴지를 집어 들고 마치 더러운 것을 만진 것처럼 손을 박박 닦았다. 임유나의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고, 추위와 두려움에 저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 기억 속의 강시후는 항상 웃는 얼굴로 자신의 투정을 모두 받아주었다. 심지어 소년미가 넘치는 깔끔하고 산뜻한 모습이 좋다는 한마디에 나중에 아빠가 되고나서 그룹사를 이끄는 존재로 거듭날지언정 다른 사람과 달리 성숙한 올백 머리는 절대 안 했다. 그녀는 포스 있는 모습과 거리가 멀다고 놀리기까지 했다. 당시 강시후는 피식 웃기만 했을 뿐 여전히 같은 스타일을 고수했고, 항상 햇살처럼 청량한 분위기를 풍기며 다녔다. 하지만 앞에 있는 남자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3대7 가르마로 단정하게 빗어넘긴 헤어스타일, 몸에 딱 들어맞는 검은색 셔츠는 단추를 두 개 풀어헤쳤고, 맑고 순수하던 눈동자는 어둠과 냉기로 가득해 싸늘한 살기를 뿜어냈다. 예전의 강시후는 따스한 햇볕 아래 배를 드러낸 채 기지개를 켜는 애교쟁이 고양이었다면 지금은 어둠 속에 숨어서 날카로운 송곳니로 먹잇감이 방심한 틈을 타서 언제든지 목을 물어뜯을 준비를 하는 흑표범을 연상케 했다. 이내 남자의 쇄골로 시선이 향하자 눈에 거의 띄지 않은 흉터가 보였고, 당시 그녀를 구하기 위해 깨진 유리창에 다쳐서 생긴 상처였다. 임유나는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남자의 눈가에 있는 자잘한 주름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지만... “왜 이렇게 늙었어?” 외모가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그가 강시후라는 사실은 확신할 수 있었다. 한 마리의 매처럼 예리한 눈이 가늘어지더니 강시후는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고 혐오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대모사도 감쪽같네? 하지만 난 대타 찾을 생각이 없어. 누가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죽기 싫으면...” “시후야, 나 잊었어? 뭐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아니면 타임슬립이라도 했나? 말도 안 돼!” 무시무시한 경고가 끝나기도 전에 임유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이내 화가 나서 주먹으로 물을 내리치며 씩씩거렸다. “이름이 강시후 맞잖아!” 강시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싸늘한 얼굴로 노려보기만 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모습을 목격했더라면 겁에 질릴 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곧 다가올 폭풍전야를 의미하는 표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두려운 건 임유나도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아드레날린이 폭발하고 게다가 낯익은 얼굴을 마주하자 분노가 공포를 능가했다. “예전에 정왕시 운빛구 동강로에 살지 않았어? 비록 못하는 게 없지만 유독 음치잖아. 그리고 망고 알레르기가 있는데 내가 좋아해서 억지로 먹어주다가 두드러기가 나서...” 임유나는 혼잣말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이내 목이 붙잡힌 부위가 아픈지 만지작거렸고, 말을 이어가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안 그래도 무서운데 푸대접까지 받으니 괜스레 서운하고 마음이 울컥했다. 결국 한참을 훌쩍이다 창피한 듯 팔을 들어 삐진 아이처럼 눈물을 거칠게 닦아냈다. 물론 목을 조른 사람이 강시후라서 억울함이 배가 되었다. 그러나 혼잣말이 길어질수록 남자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며, 양옆으로 늘어뜨린 손이 떨림을 멈추지 않고 새빨간 눈동자에 분노가 서서히 차오르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너 누구야.” 울컥하는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고, 무미건조한 한 마디는 마치 온 힘을 다해 쥐어짜낸 듯했다. “임유나! 내가 임유나가 아니면 누구겠어?” 욕조에서 걸어 나온 임유나는 걷잡을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지만 시야가 흐릿했고, 옆에서 목욕 가운을 집어 들고 우두커니 서 있는 남자를 힘껏 밀쳤다. “저리 비켜. 이 빵꾸똥꾸야.” 빵꾸똥꾸는 그녀가 화가 날 때마다 강시후를 욕할 때 쓰는 말이다. 문밖으로 밀려난 강시후는 비틀거리며 벽에 기대었고, 마치 물에 빠져 기사회생한 사람처럼 숨을 헐떡였다. 그리고 무언가 떠올린 듯 벽을 짚고 있던 손으로 주먹을 말아쥐더니 팔을 힘껏 뻗었다. 잔뜩 찡그린 미간이 서서히 펴지기 시작했고, 피범벅이 된 손가락을 바라보며 넋을 잃고 말았다. ‘아프네?’ 욕실에서 젖은 옷을 벗고 목욕 가운을 걸친 임유나는 한바탕 화를 내고 나니 점차 이성을 되찾았고,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일단 비행기 추락은 꿈이 아니라는 건 확신했고, 심지어 당시 비행기를 탔을 때 입었던 착장과 똑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여기에 나타나게 되었단 말이지? 강시후는 왜 또 저 모양이고? 이내 밖으로 나가 강시후와 이야기를 나누려는 순간 욕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남자의 품에 와락 안겼다. 익숙한 스킨십에 바짝 긴장한 임유나도 차츰 안정을 되찾았고 불만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분명 비행기가 추락해서 바다에 빠졌는데 어떻게 눈 깜짝할 사이에 돌아왔지? 그리고 방금 태도가 그게 뭐야...” 임유나는 말을 이어가다가 멈칫했다. 목덜미가 축축한 느낌에 강시후가 설마 울고 있나 싶었다. “유나야, 네가 실종된 지 무려 15년이 지났어! 그동안 찾아다니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데!” 탄탄한 팔이 허리를 꽉 조여왔고, 임유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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