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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장

고승겸은 최면 상태에 빠져 있는 소만리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가 잘못 듣지 않았다. 소만리는 방금 누군가의 이름을 확실히 말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 이름은 뜻밖에도 기모진이 아니었다. 고승겸이 계획한 최면 과정에 차질이 생긴 것이었다. 그는 소만리를 보면서 그녀의 마음을 자신이 이끄는 대로 끌어오려고 다시 한번 시도했다. “소만리, 다시 한번 더 물어볼게. 이 수정구 안에 누가 보여?” 눈을 감고 있던 소만리는 고승겸의 물음에 자연스럽게 말했다. “여온이, 우리 딸 여온이가 보여.” 고승겸은 같은 이름을 말하는 소만리의 대답을 듣고 지금 그녀의 마음속에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이 그녀의 딸 기여온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기여온은 지금 F국에 있지만 어디에 있는지 건강 상태는 어떤지 모든 것이 불분명한 상황이라 그녀가 이렇게 마음 졸이며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소만리의 반응에 고승겸의 최면 계획에 차질이 생겼지만 그는 임기응변이 빠른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최면술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데에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심리학에도 조예가 깊은 그에게 사람의 마음을 장악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일이었다. 그는 눈앞에서 이미 최면 상태에 빠진 소만리를 가만히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최면을 건지 30분 정도 지났을 때 고승겸은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려던 남연풍은 마침 고승겸이 소만리의 방에서 나오자 시중에게 휠체어 방향을 바꾸어 달라고 부탁하며 고승겸을 향해 소리쳤다. “고승겸, 거기 서!” 고승겸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처음에는 남연풍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다가 남연풍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그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고승겸은 몸을 돌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남연풍을 바라보았다. “나한테 또 뭘 가르치려고 그러셔?” 그가 차가운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비꼬았다. 남연풍은 손가락을 들어 소만리의 방을 가리켰다. “뭐 하러 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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