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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3화

“셋째, 이혼하도록 압박했지. 백지안하고 결혼하고 싶어서 한 것까지도 이해하겠어. 하지만 왜 민정화가 내 옷을 벗기는 패악을 부리는 데도 그냥 있었지? 그래, 나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거야. 하지만 사람이 바닥에 눕혀져서 남들이 보는 앞에서 옷이 벗겨지는 게 얼마나 모욕적인지 알아? 당신은 내 존엄을 짓밟은 거야.” “넷째, 말할 거도 없이 민관이 사건이지. 백지안이 납치됐다고 당신은 여주산에서 날 버리고 달려갔어. 가지 말라고 해 봤지만 당신은 매정하게 날 버리고 갔지. 민관이는 내 가족이나 다름없는 아이인데 당신은 그 애에게 어떻게 했지? 손가락을 잘라버렸어. 최하준,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공포스럽지 않아?” ‘공포스럽다고? 내가?’ 하준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여름이 그렇게 하나하나 세지 않았으면 하준은 자신이 여름에게 얼마나 잔인한 짓을 했는지 잊을 뻔했다. 하준은 이상하게도 여름과 관련된 일에서만 유독 악마처럼 변했던 것이다. “여름아, 미안해. 내가 다시는 그런 짓 하지 않을게. 내게 맹세….” “맹세 따위 하지도 마. 당신이랑 사귈 때 얼마나 달콤한 말을 속삭였어? 그게 불과 며칠 전인지 알아?” 표정에서 도저히 혐오를 감추지 못했다. “최하준, 당신 입은 영원히 믿을 수 없다는 걸 알아야지. 사랑의 말을 속삭이고 돌아서면 당신이 어느 순간에 태도를 바꿀지 아무도 모른다고.” “이제 다시는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을 거야. 믿어 줘.” 하준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여름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지안이에게 복수하고 싶다고 했었잖아? 날 빼앗아 가서 지안이에게 고통을 주고 싶다며, 그 기회를 만들어 줄게.” 죽을 때까지 여름에게 괴롭힘을 다하는 한이 있더라도 여름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이 순간 하준은 무력한 아이 같았다. 그저 여름이 자신에게 기회를 한 번만 주기를 바랐다. “고맙지만 그런 기회 따위 됐어.” 전에 이렇게 자신을 잡으려고 애쓰는 하준을 봤다면 ‘최하준, 그렇게 날 무시하더니 본인이 이렇게 가련한 꼴이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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