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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이제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돌발상황이 벌어졌다. 두 아이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수영장 방향으로 오다가 앞에 있는 두 여자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속도를 늦추지 못한 채 그만 이채린을 물 안에 빠트리고 말았다.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물보라가 졌다. 차서아도 화들짝 놀라더니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두 아이를 신경 쓸 겨를 없이 바로 이채린을 구하러 수영장에 뛰어들려고 했다. 하지만 이때 누군가가 그녀보다 한발 앞섰다. 거대한 힘이 몰려오는 순간 차서아는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며 겨우 자세를 다잡았다. 성급히 달려온 사람은 바로 윤건우였다. 그는 외투를 벗고 망설임 없이 수영장에 뛰어 들어가서 이채린을 구하더니 싸늘한 눈길로 차서아를 노려봤다. “어떻게 된 거야?” 상황을 설명할 새도 없이 이채린이 먼저 제멋대로 각본을 지어냈다. “다 제 탓이에요. 저 때문에 서아가 괜히 화나서 물에 빠트린 거예요. 전 괜찮으니까 건우 씨 서아 뭐라 하지 말아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갖은 연약한 척을 떨었고 파르르 떨리는 몸짓도 훤히 보였다. 윤건우는 변명 같지만 실은 차서아를 죄인이라 저격하는 그녀의 말에 곧바로 질책하는 눈빛을 보내왔다. “나 안 밀었어요. 내가 아니라...” 차서아는 재빨리 해명하면서 사고 친 두 아이를 찾으려 했지만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림자조차 안 보였다. 결국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제 더는 해명할 기회가 없으니까. “너 아니면 누군데? 나야? 아니면 뭐 설마 채린이 혼자 물에 빠졌다고 하게?” “처음엔 그저 네가 고집 센 아이라고 여겼는데 이제 보니 아예 교양이 없네!” 그의 말은 천둥처럼 차서아의 머리를 내리쳤다. ‘방금 삼촌이 나한테 교양 없다고 한 거야?!’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차서아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바로 교양 없다는 말이었다. 학교 다닐 때 애들이 괴롭히면서 툭하면 어미 없는 자식이라고 그녀를 놀렸는데 그때마다 분명 윤건우가 대신 나서주었다. 그랬던 이 남자가 지금 교양 없다는 말로 그녀의 심장에 비수를 꽂고 있다니. 차서아는 뭐라 더 말하려 했지만 윤건우가 이채린을 데리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주인공이 떠난 마당에 연회를 계속할 의미도 없었다. 하객들도 뿔뿔이 흩어졌고 차서아는 넋을 놓은 채 홀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그녀는 밤잠을 설쳤다. 윤건우에게 똑똑히 해명하려고 전화에 메시지까지 보냈지만 줄곧 회답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날이 어렴풋이 밝아올 때야 윤건우가 이채린을 데리고 별장에 돌아왔다. “삼촌, 진짜 내가 민 거 아니에요. 그때 두 아이가 장난치다가 실수로 채린 언니를 밀쳤어요!” 두 사람이 돌아오자마자 차서아가 황급히 해명했지만 윤건우는 아무 말 없이 이채린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심지어 차서아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차서아는 또다시 그의 앞길을 막아서며 눈시울까지 붉혔다. “제발 나 한 번만 믿어주면 안 돼요? 전에는... 잘만 믿어줬잖아요!”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윤건우도 드디어 걸음을 멈췄다. 과거 차서아는 가족이라곤 윤건우 한 명뿐이라 항상 그의 보살핌만 받아왔다.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윤건우는 무조건 그녀의 말을 믿어주었다. 그때 차서아도 궁금해서 물은 적이 있다. 왜 다들 그녀가 거짓말을 했다고 하는데 유독 윤건우만 굳건히 믿어주냐고, 그때 윤건우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서아는 내가 줄곧 키워왔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 서아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제일 잘 알지.” 그랬던 그가 제자리에 한참 서 있더니 끝내 차서아를 뿌리쳤다. “비켜!” 딱히 힘을 주지 않았지만 차서아는 뒷걸음질 치다가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가 픽 하고 쓰러지니 윤건우도 당황해서 얼른 부축하려 했다. 하지만 손을 내민 순간 이상하리만큼 차가운 온도가 전해졌다. “뭐야? 왜 이렇게 차가워?” 걱정 어린 윤건우의 질문에 차서아는 우물쭈물하면서 마땅한 이유를 둘러대지 못했다. 그는 재빨리 차서아의 손을 잡아당겼지만 놀랍게도 그녀의 맥이 짚어지지 않았다. 이제 막 질문을 건네려 할 때 뒤에 서 있던 이채린이 말을 잘랐다. “서아야, 아무리 건우 씨가 나랑 같이 있는 게 거슬린다고 해도 일부러 아픈 척 하면서 건우 씨 걱정하게 하는 건 아니지!” 문득 윤건우는 걱정이 분노로 뒤바뀌었다. “채린이 수영장에 빠트린 것도 모자라 아픈 척 연기해서 내 관심 끌려는 거야? 널 용서하는 방법은 딱 하나야. 채린이한테 사과해!” 벽에 걸린 시계가 일분일초 흐르고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온몸을 감쌌다.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얼마 없다. 더는 냉전에 시간 낭비할 순 없다는 뜻이다. 차서아는 변명을 멈추고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알았어요. 사과할게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푹 숙이고 빨개진 눈시울로 이채린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뒤에야 윤건우를 다시 쳐다봤다. 이제 그녀의 두 눈동자는 오직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삼촌, 이제 용서해줄 수 있나요?” 원하는 사과도 받았지만 윤건우는 좀처럼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차서아가 너무 큰 서러움을 당한 채 이제 곧 눈물을 터트릴 것만 같았으니까. 그는 음침한 얼굴로 한참 후에 대답했다. “두 번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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