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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장

남연풍은 어느새 멀리 내달리던 생각을 다잡았다. 희뿌연 하늘에서 보슬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그녀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녀는 몸이 불편한 자신을 차에 태워준 운전기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기사는 모자와 마스크를 깊이 눌러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친절하게 그녀를 차에 태운 뒤 휠체어를 접어 트렁크에 넣었다. 차에 탄 남연풍은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운전을 하던 기사는 이따금씩 눈을 들어 백미러로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 남연풍은 차창 밖만 계속 쳐다보고 있어서 운전기사가 자신을 힐끔 쳐다보는 줄도 몰랐다. 빗줄기가 계속되자 남연풍은 자신의 마음에도 억수같이 비가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유일한 가족이 죽었고 그녀를 살뜰히 보살펴 주던 친구도 죽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앞장서서 가장 사랑하는 남자의 앞날을 망쳐 놓았다. 남연풍은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인생도 참 기구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이런 실패한 인생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비웃으며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차는 어느새 아주 먼 곳으로 내달렸다. 차가 어디로 가는지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던 남연풍은 갑자기 주변이 낯선 것을 확인하고는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공항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의 고향인 경도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 길은 분명 공항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다. 남연풍은 경도가 고향이긴 했지만 이곳 산비아에서도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모든 길이 다 익숙했다. “기사님, 이 길은 공항으로 가는 길이 아닌데요. 방향을 잘못 잡으신 거 같아요.” 남연풍이 기사에게 말했다. 그러나 기사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계속 운전했다. 처음에 남연풍은 기사가 잘못 운전한 줄 알았지만 운전기사가 자신의 말을 무시하자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기사님.” 남연풍이 다시 소리를 질렀지만 운전기사는 여전히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녀는 조바심이 났다. 비록 그녀는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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