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간신히 손질을 다 마치자, 그제야 우향은 저녁에 고기반찬을 추가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겪은 일을 조경선에게 알리지 않기 위해 석조각으로 돌아온 홍난은 피투성이인 손을 소매 깊숙이 숨겼다.
조경선은 아무 낌새도 눈치채지 못했으나 가져온 고기반찬이 신선하지 않은 데다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러 입에 대지 않았다.
“마마, 반찬이 입맛에 맞지 않으십니까?”
“고기가 오래된 것 같다. 부엌 사람들은 대체 뭐 하는 놈들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것도 못 알아차리는지.”
홍난은 마음이 쓰라렸지만, 묵묵히 반찬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손바닥이 찌르듯 아파서 반찬이 담긴 접시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접시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손이 미끄러져서 그만… 용서해 주시옵소서. 마마.”
“어서 일어나서 네 손 좀 보여달라.”
‘조금 전 홍난은 분명 손을 떨고 있었어. 어디 아픈 건가? 아니면 내가 잘못 봤나?’
홍난이 머뭇거리며 손을 소매 속에 있는 손을 꺼내려 하지 않자,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조경선은 언성을 높였다.
“어서 썩 꺼내지 못할까!”
홍난의 손을 보자마자 조경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
희고 보드라웠던 손바닥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있는 데다 작은 상처들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어서 보기 참으로 흉했다.
“말해보거라. 누가 이리 만들었느냐?”
“쇤네가 부주의로 그만…”
“지금 날 속이려 들어? 이실직고하지 않는다면 널 내 곁에 두지 않겠으니 바른대로 답하거라.”
홍난이 어쩔 수 없이 부엌에서 일어난 일을 사실대로 말하자, 조경선의 눈썹 아래로 차가운 빛이 번뜩였다.
조경선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빌어먹을 놈들.”
“마마, 우 관사님은 부에 오래 계셔서 전하께서도 어찌하지 못합니다. 이 일은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하니 마마께서도 그녀와 척지지 마시옵소서. 쇤네가 내일 그녀에게 은자를 좀 쥐여주면 질 좋은 고기반찬을 내어줄 겁니다.”
홍난의 말을 들은 조경선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
“그 관사가 일부러 너를 괴롭혔는데 오히려 그녀에게 은자를 주겠다고? 전하의 정실부인인 내가 음식도 마음대로 못 먹는단 게 말이 되느냐?”
홍난은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
“쇤네가 무능하여 마마께 치욕을 안겨드렸사옵니다.”
“가장 큰 고통을 받은 건 너인데 이게 어찌 네 탓이란 말이냐! 모든 책임은 권력을 등에 업고 남을 괴롭힌 그 관사에게 있다. 그년을 혼쭐 좀 내줘야겠다.”
우향을 혼내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시급한 건 홍난의 상처를 치료해 주는 일이었다.
조경선은 이것이 그냥 일반적인 상처인 줄로 알았지만, 홍난의 손은 평소보다 훨씬 부어올랐고, 심지어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궤양의 전조증상이구나. 혹 가시에 독이 묻었을 수도 있겠구나. 물속에는 알 수 없는 독소가 많아 물고기를 익히지 않으면 독성이 사라지지 않는데. 만약 제때 치료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어.’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홍난은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조경선은 하마터면 기절할 뻔한 그녀를 침대에 눕힌 후, 영력으로 외용 연고를 소환했다.
강황, 황백, 삽주, 후박, 생천남성, 백지 등으로 만들어진 이 연고는 그녀가 예전에 개발한 것으로, 해열 해독 효과가 있어서 여북 황실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조경선이 젖은 천으로 홍난의 손을 닦으려 하자, 홍난은 힘겹게 일어나려고 애썼다.
“미천한 쇤네를 위해 마마께서 이런 하찮은 일을 하시다니요.”
“잔말 말고 누워나 있으라.”
그녀는 연고를 짜내 두 그릇에 넣었다.
그리고 진한 식초를 붓은 뒤에 잘 젓고는 홍난의 손을 그릇에 담갔지만, 외용만으로는 부족했다.
궤양과 통증을 완화하는 사묘용안탕도 필요했으나 체력이 너무 딸린 탓에 그녀는 영력으로 소환하지 못했다.
그래서 약방에 가서 약을 지어올 다른 하녀를 불렀지만, 그 하녀의 얼굴에는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마마, 쇤네가 다른 할 일이 있어서… 제시간에 일을 끝내지 못하면 관사님께 꾸지람을 들을까 걱정입니다.”
“감히 내 명을 거절하겠다고?”
그러자 하녀가 웃으며 답했다.
“그런 것이 아니오라 약방이 멀어서 오가는데 시간이…”
“알겠다.”
한시가 급해서 그녀와 말씨름할 겨를이 없었다.
조경선은 은자 한 묶음을 하녀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약 짓고 남은 은자는 네 것이니 어서 다녀오거라.”
“예. 그러면 지금 바로 출발하겠사옵니다.”
조경선이 방으로 돌아와 보니 홍난의 상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열 때문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벌겋게 된 홍난은 헛소리하기 시작했다.
“마마, 쇤네가 독에 중독되었으니 아마도 곧 죽겠지요?”
홍난의 말에 조경선은 가슴이 아팠다.
“죽지 않을 것이니 그런 말 하지 말거라.”
“하오나 쇤네는 괴로워서 미칠 지경이옵니다. 몸이 불에 타는 것 같아서 견디지 못하겠사옵니다.”
조경선은 찬물에 적신 수건으로 그녀의 몸을 닦아주며 말했다.
“죽지 않는대도 그러느냐. 약이 곧 올 거다.”
“마마, 만약 쇤네가 죽으면… 마마께서는 스스로 잘 돌보셔야 합니다. 전하와 다투지 마시고 원비 마마께도 많이 양보하세요. 그분들과 다투시면 마마만 손해를 봅니다.”
“선원주!”
조경선은 갑자기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씹어 삼킬듯한 기세로 선원주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스스로를 자비로운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아서 억울한 일을 당하면 절대 가만있지 않는 성격이었다.
‘홍난은 내가 안선 왕조에 온 이후에 유일하게 나를 보살펴 준 사람이야. 이뿐만 아니라 그녀가 중독된 이유도 내게 고기 요리를 대접하려 했기 때문이지 않은가.’
병상에서도 자신을 걱정해 주는 홍난의 모습을 보며 조경선은 눈물이 핑 돌았다.
“넌 반드시 나을 거다. 어찌 됐든 널 해친 자들을 내 절대로 용서치 않겠다.”
다행히 하녀가 약을 빨리 가져왔다.
하녀더러 약을 달이게 한 다음 조경선이 직접 약을 홍난에게 먹이자, 홍난은 흐릿한 의식 속에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좀 나아지겠지.’
그녀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조경선은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조경선을 본 요리사들은 억지로 예를 갖췄다.
“마마, 어인 일로 예까지 오셨습니까?”
“홍난에게 물고기를 손질하게 한 자는 스스로 앞으로 나오라.”
“홍난 아씨가 스스로 하겠다고 한 거지, 강요한 것이 아니옵니다.”
그 말을 들은 조경선이 식칼을 집어 들고 도마 위에 문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깜짝 놀라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마마, 어찌 이러시는지?”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너희들 혀를 잘라버리려고.”
“그것이… 최화가 우 관사님께 제안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말하면서 옆에 있던 최화를 앞으로 밀치자, 최화도 바짝 긴장했다.
“마마, 제 탓이 아니옵니다. 저는 단지 관사님의 지시에 따라 홍난 아씨께 물고기를 주었을 뿐입니다.”
조경선은 식칼을 든 채 차가운 눈빛으로 최화를 쏘아보았다.
“내 앞에서 감히‘저’라고 말해? 네년이 정녕 벌을 받아야 정신 차릴 테냐? 말할 줄 모르니 그 혀를 잘라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