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장 고현우보다 더 역겨워
정승진은 머릿속이 텅 비었다.
이가인은 참을성이 많았다. 그녀는 제자리에 서서 평온하게 말했다.
“얘기해.”
정승진은 귓가에서 윙윙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된 마당에 숨길 필요는 없었다. 설명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저 사실대로 얘기하는 것뿐이었다.
“나 염혜원이랑 만난 적 있어.”
이가인의 안색은 달라지지 않았다.
정승진의 안색은 따뜻한 조명 아래서도 창백해 보였다.
“... 난 걔랑 헤어진 뒤에 널 좋아하게 됐어. 양다리가 아니야. 난 너랑 사귈 때 너 몰래 걔를 만난 적은 없어. 나도 걔가 왜 오늘 유리안에 왔는지는 모르겠어. 내가 걔를 만난 건 걔에게 앞으로 절대 걔랑 만날 일 없다고 말하기 위해서였어.”
정승진은 매우 긴장해서 거의 모든 날에 ‘나’를 붙였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싶었고 이가인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까 봐 불안했다.
이가인은 참을성 있게 그의 얘기를 다 들은 뒤 무감정한 얼굴로 물었다.
“왜 나야?”
정승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가인이 말했다.
“난 항상 궁금했어. 왜 하필 나였는지.”
정승진은 뭐라도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이가인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날 클럽에서 네가 날 따라서 나왔던 건 염혜원 씨한테 매우 실망했기 때문이겠지. 넌 내가 그 전날 길가에서 사람을 구했던 사람이란 걸 알아봤을 거야. 그때 난 내가 혜임 병원에서 일한다고 했었고.”
“그래서 내가 키가 크든 작든, 어떻게 생겼든, 집안 형편이 좋든 안 좋든 상관없었겠지. 내가 여자기만 하면 되니까. 임혜원 씨에게 네 여자 친구가 되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보여줄 수만 있으면 되니까, 네 여자 친구가 되면 얼마나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으면 되니까.”
이가인은 아주 차분하게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자신의 일이 아닌 듯, 교과서를 읽듯이 말이다.
정승진은 얼굴이 창백해져서는 저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처음엔 그랬어. 하지만 그 뒤엔...”
이가인이 말했다.
“넌 고현우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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