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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장 열이 많아서요

정승진의 시선은 이가인을 보지 않았지만, 그녀의 궁금증에 해답하듯 말했다. “병실에 너무 오래 있어서 바람이나 쐴 겸 나왔어요.” 그때 차민환이 이가인에게 말했다. “누나, 그러면 저는 잠시 나갔다 올게요. 혹시 무슨 상황이 있으면 바로 연락해 주세요.” 이가인은 정승진에게 머물렀던 시선을 거두며 대답했다. “네,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요.” “누나, 고마워요.” 차민환은 모든 간호사에게 자신의 시그니처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누나라고 불렀다. 이가인은 자기도 모르게 차민환이 처음 병원에 온 날, 사무실에서 간호사들이 하던 얘기가 떠올랐다. “너무 잘생기고 귀엽잖아!” “그러게. 매번 나한테 누나하고 부를 때마다 마음이 사르르 녹는 것 같다니까!” “스물두 살이라고 하던데 내가 스물다섯이잖아. 세 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다는 말이 있잖아.” 정승진이 나타나기 전까지, 이가인은 자신이 누나라고 불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가인 나이에 이모라고 불리는 게 더 이상하니 말이다. 하지만 정승진이 나타나자 뭔가 불편해졌다. 정승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가인에게 눈빛조차 주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미안한 느낌과 불편한 느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정승진은 어느새 점점 가까이 이가인에게 다가왔고 이가인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정 교수님.” “네, 수간호사님.” 정승진의 얼굴에서는 아무 감정도 읽을 수 없었고 이가인은 걱정하듯 말했다. “복도 공기가 차니 외투라도 하나 걸치시는 게 좋겠어요.” “괜찮습니다. 제가 워낙 열이 많아서요.” 정승진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고 너무 담담한 탓인지 이가인은 열이 많다는 게 정말 몸에 열이 많다는 건지, 아니면 열을 받아서 그렇다는 건지 구별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정승진은 이가인 옆을 지나가더니 아예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이가인은 정승진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얇은 환자복만 입고 밖으로 나가면 이 날씨에 감기에 걸릴 게 뻔할 것 같았다. 이가인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구석으로 걸어가 바로 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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