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강재욱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이어 눈빛에 연민과 조소가 스쳤다.
연민은 내가 생각보다 쉽게 걸려드는 먹잇감이라는 의미였고 조소는 내가 감히 그를 망상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눈빛 저편에는 내가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숨겨진 감정이 어렴풋이 스쳐갔다.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어?”
“내 곁에 있던 여자들 중에서 감히 나에게 이런 조건을 내건 사람은 없었어. 내 전 여자친구들은 모두 내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 했지. 지우도 포함해서 말이야.”
나는 비웃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어서 가서 오빠 전 여자친구를 다시 붙잡아. 가서 지우 언니를 열심히 떠받들라고 해.”
그 말을 남기고 나는 지팡이를 두드리며 방향을 가늠한 뒤 기숙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길을 걷는 동안 몇 번인가 발이 걸려 휘청거렸고 몇 차례는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기숙사로 가는 길이 평탄하지 않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지금 나는 강재욱의 눈에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비쳐야 했으므로 일부러 비틀거리며 걷는 시늉을 한 것이었다.
기숙사 입구에 도착하자 유리문을 통해 뒤를 힐끗 돌아보았다.
그가 여전히 서 있을까 싶어 본 것인데 예상과 달리 그는 아까보다 훨씬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그 시선은 매섭고 차가웠다.
나는 찰나의 순간 눈살을 찌푸렸지만 곧바로 걸음을 서둘렀다. 더 머뭇거리면 그가 이상함을 눈치챌 수도 있었으니까.
다행히도 내가 기숙사 안으로 들어선 후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도 더 이상 나를 쫓아오지 않고 그 자리에서 돌아선 듯했다.
사실 강재욱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그의 곁에 머물고 싶어 하는 이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송지우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필수였다.
지난 생의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강재욱이 송지우라는 친구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알고 있었고 그래서 몇 번인가 진심으로 그녀에게 다가가려 한 적도 있었다.
예를 들면 애써 요리를 배우고 케이크 만드는 법까지 익혔는데 강재욱에게 음식을 해줄 때면 항상 송지우 몫도 함께

Locked chapters
Download the Webfic App to unlock even more exciting content
Turn on the phone camera to scan directly, or copy the link and open it in your mobile browser
Click to copy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