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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고서준은 야자도 나오지 않았다. 그건 이지현도 마찬가지다. 그는 수능시험 전부터 대학교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몸이다. 심지어 해외 명문대의 초청 메일까지 받았다고 한다. 학교에 오지 않아도 되는 그가 꼬박꼬박 등교하는 이유는 이지현 때문이었다. 후에는 유학도 포기했다고 한다. 이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두 사람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나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문제 풀이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버려서 집에 돌아간 다음에도 다운된 상태였다. 하지만 인간쓰레기 아버지와 계모도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나는 두 사람을 무시하고 위층에 올라갔다. 그러나 김정태는 악착같이 쫓아오며 물었다. “수아야, 서준이랑은 얘기 잘 됐어? 응?” “고서준이 바보인 줄 알아요? 걔가 미쳤다고 내 말을 듣고 몇백억짜리 계약서에 사인하겠어요?” 김정태는 어두운 안색으로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이때 이미영이 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네 아버지는 그런 뜻이 아니란다. 그저 네가 기정그룹의 연결고리가 되어주길 바라는 거야. 우리 집에 와서 밥이라도 먹게 초...” “싫어요. 안 그래도 너무 집적대서 미움받던 중이에요. 이만 포기하세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수아야, 네 아버지 화나게 하지 마. 네 아버지도 너를 위해 그러는 거지. 회사가 파산하면 너도 같이 고생이야.” 나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저는 차라리 파산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나를 팔아서 하찮은 목숨 이어가는 게 아니라 말이다. “김수아!” 김정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도 나는 상큼하게 무시했다. 방 안에 들어간 나는 통장 잔액을 확인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친어머니 노수영은 김정태와 이미영 사이에 나와 동갑인 딸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노수영은 이혼 재판에서 거액의 돈을 받아서 쿨하게 해외로 떠났다. 지금은 외국인 남편과 재혼해서 쌍둥이를 낳고 행복하게 잘 지냈다. 이미영도 딸을 데리고 원하던 명분을 얻었다. 나만 어디에서나 쓸모없는 존재였다. 그래도 두 사람은 나의 용돈을 빼먹을 정도로 극악무도하지 않았다. 통장에 꽤 많이 모인 돈을 보고 나는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김정태는 애인을 키우는 데만 수준급 실력이 있었다. 사업에는 전혀 소질이 없어서 어리석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전생의 나는 고서준을 질리게 쫓아다니는 사람에 불과했다. 그러나 김정태는 우리가 벌써 사귀는 것처럼 큰소리를 치면서 기정그룹의 덕을 보려고 했다. 그는 자신을 고서준의 장인이라고 칭하면서 투자를 했다. 손해 본 다음에는 애걸복걸 고서준에게 애원하고는 했다. 고서준 본인은 한 번도 이에 관해 얘기를 꺼낸 적 없었다. 그러나 집안 어른들은 볼 때마다 나를 나무랐다. 그렇게 나도 점점 작아지고 말았다. 이번 생 나는 고서준에게서 최대한 멀어질 것이다. 김정태의 말을 고분고분 듣기만 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틀 후 모의고사가 끝난 다음 나는 친구 정서현과 함께 노래방에 갔다. “시험 드디어 끝났다! 이제는 네 생일파티 보충할 차례야! 제대로 놀아보자고!” 정서현은 꽃가루를 날리며 말을 이었다. “김수아 생일 축하해!” 흩날리는 꽃가루 속에서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친구 사이였다. 전생의 나는 고서준을 따라 경성대학교에 붙었고, 그녀는 평소 성적대로 평범한 대학에 갔다. 대학 졸업 후, 정서현은 유학 갔다가 가업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나는 고서준 부모의 요구에 따라 사직하고 전업 주부가 되었다. 그때 정서현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나를 말렸다. “너 이렇게 살려고 경성대 갔어? 김수아, 너 분명히 후회하게 될 거야!”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정서현은 히쭉히쭉 웃으며 말했다. “내가 서프라이즈를 준비했어.” 그녀는 노래방의 출입문을 대뜸 열었다. 그러자 한 무리의 사람이 웃으면서 들어왔다. “김수아 생일 축하해!” 나 역시 미소로 맞아주다가 한 사람을 발견하고 굳어버렸다. 소년은 타고난 분위기가 고급스러웠다. 동네 노래방도 고급 회관으로 만드는 분위기였다. ‘고서준? 얘가 왜 왔지?’ 전생, 나는 결의대회에서 대차게 거절당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생일파티에 와달라고 고서준에게 졸랐다. 고서준은 마지못해서 와줬다. 비록 차가운 얼굴로 빈손에 왔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주 행복했었다. 생일을 핑계로 그의 곁에 꼭 붙어 앉아 파티 내내 들떠 있었다. 이번에 나는 그에게 생일파티의 생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쳤다가 나는 묵묵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와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를 골라 앉았다. 정서현은 나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면서 말했다. “뭐해? 빨리 적극적으로 대시해 봐!” 범인은 정서현이었다. “일단은 고마워. 초대하느라 힘들었지?” “아닌데? 그냥 시간 있냐고 물어보니까 바로 오케이 했어.” “?” 전생에 나는 몇 날 며칠을 애원에서 고서준을 초대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정서현은 한 방에 성공했다니 말이다. 내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진짜 포기한 거야?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을?” “...” 나는 어떻게 설명할지 몰라 그냥 대충 대답했다. “나 이제 연애에 관심 없어. 공부 열심히 해서 경성대나 갈래.” 주변이 하도 시끄러워서 나는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한 순간 한 곡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나의 목소리는 방 안에 그대로 울려 퍼졌다. 정적이 맴돈 것도 잠시 방 안의 온도는 빠르게 차가워졌다. 고서준의 주변에 앉은 애들은 전부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어쩐지 찬 바람이 부는 것 같아서 말이다. 나의 안색은 추호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서준 쪽을 바라보지는 못했다. 나는 어색하게 앉아 있다가 말했다. “나 화장실 다녀올게.” 역시 도망이 상책이다. 정서현도 나서서 분위기를 전환했다. “이거 누가 예약한 노래야? 빨리해야지.” 방 안은 다시 시끄러워져다. 그러나 고서준의 안색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몇몇 남자애들은 조용히 수군댔다. “김수아 쟤 밀당하는 거지? 서준이를 보는 체도 안 하네.” “에이, 진짜 마음 접은 게 아닐까? 지난번 대회에서도 말했잖아. 정신 차리고 공부하려는 걸 수도 있지.” “벌써 포기한다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나 보네...” 고서준 곁에 앉아 있던 윤도하가 황급히 말렸다. “함부로 말하지 마!” 눈치도 없이 떠들어 대는 애들이 꼴 보기 싫었던 것이다. 윤도하는 고서준의 오랜 친구다. 고서준의 기분 정도는 쉽게 보아낼 수 있었다. 남들은 모르겠지만 고서준은 지금 살벌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는 마른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김수아가 서준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 2년이나 따라다니고 갑자기 포기하는 게 말이나 돼? 시험 끝나고 다시 잘 해볼 생각이겠지. 경성대에 못 붙어서 서준이랑 떨어질까 봐 공부에 신경 쓰는 걸 거야.” “그렇구나!” 남자애들은 머리를 끄덕였다. 고서준의 표정도 이제야 약간 풀렸다. 윤도하는 몰래 식은땀을 닦으며 속으로 자신의 영리함에 감탄했다. 나는 화장실에서 한참 뭉그적대다가 밖으로 나갔다. 혹시라도 고서준이 떠나지 않았을까 봐서 말이다. 지금쯤이면 떠나고도 남았을 것 같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떠난 줄 알았던 사람은 이상하게도 복도에 서 있었다. ‘뭐야? 왜 안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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