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2장

18살의 나는 이런 고백이 아주 청춘답고 용기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스스로 뺨을 때리고만 싶었다. 청춘은 무슨, 그냥 미친 사람 같았다. 천만다행인 것은 내가 아직 고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은 만회할 여지가 남아 있었다. 전생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해도 이제는 되돌릴 수 있다. 나는 고서준의 근처에 가지도 않을 것이다. 지난 생의 비참함도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마이크를 들었다. 그러고는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맞는 말입니다. 저도 반성하고 있는 바입니다. 전에 불편함을 끼쳐드린 건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앞으로 다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을 겁니다. 이제는 공부와 꿈에 집중해야 할 때이니까요.” “...” 고서준은 놀란 표정으로 넋을 잃었다. 나는 토끼보다 빠른 속도로 내려가 버렸다. 학생들 역시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 “김수아가 고서준을 포기했다고?” “포기? 말도 안 되지. 고서준 좋아하는 애들이 김수아한테 무슨 짓을 당했는지 몰라? 수백 번 거절당해도 포기하지 않던 김수아야. 얼마 전에는 고서준이랑 같이 경성대에 간다고 내기까지 했다니까?” “경성대 못 갈 것 같아서 그러는 거 아니야?” “고서준은 좋아하겠다. 이제 스토킹 안 당해도 되겠네.” 웅성대는 강당에서 고서준은 가만히 도망가는 김수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표정은 전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교실에 들어갔다. 심장은 아직도 세차게 뛰고 있었다. 책상 위에 있는 거울에는 나의 얼굴이 비쳤다. 25살도 나이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불행한 가정 속에서 나는 진작 생기를 잃었다. 피부도 수면 장애로 인해 항상 푸석했다. 쿠션을 두껍게 발라야만 가릴 수 있는 다크서클도 있었다. 그러나 거울 속의 나는 피부가 아주 탱글탱글했다. 눈동자에는 빛이 돌았고 입술 색도 발그레했다. 건강하게 예쁜 젊음의 기운이었다. ‘정말 18살로 돌아오기는 했구나.’ 이제야 실감이 나면서 나는 상기되기 시작했다. “보긴 뭘 봐? 아무리 기생처럼 보기 좋아도 서준이는 널 좋아하지 않을 거야. 서준이는 우리 지현이한테 마음이 있다고!” 정신을 문득 차리자 여자애들에게 둘러싸인 이지현이 보였다. 그녀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떨굴 뿐 부정하지는 않았다. 나는 웃는 얼굴로 말한 여자애에게 말했다. “예쁘다는 칭찬 고마워.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여자애의 안색은 파리라도 삼킨 것처럼 어두워졌다. 나는 항상 이지현이 싫었다. 전생, 내가 고서준과 결혼한 다음에도 그녀는 훼방을 놓지 못해서 안달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결혼은 애초에 세 사람의 결혼이었다. 그녀는 나의 결혼이 파멸에 달한 주요한 원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이 더러운 게임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나는 이지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수능까지 3개월 남았어. 난 이제 공부만 하고 싶어. 두 사람 잘 되길 바랄게.” 내가 태연한 말투로 말했는데도 이지현은 믿지 않았다. 그러나 겉으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경성대에 붙지 못할 것 같아서 그러는 거지? 너무 부담가지지 마. 못 붙어도 괜찮아.” 또 이런 식의 말이다.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지현은 항상 이런 식으로 좋은 사람인 척 연기했다. 뒤에서 헛소문을 퍼뜨리는 사람 역시 그녀인데 말이다. 그녀의 말을 듣고 여자애들은 대놓고 비아냥대기 시작했다. “난 이런 사람 진짜 재수 없더라. 어떻게 서로 좋아하는 사람 사이에 끼어들 수가 있지? 고서준이랑 가까워지려고 경성대 간다는 헛소리까지 했다잖아.” “쟤가 경성대에 가면 나도 수석으로 갈 거다.” “내일 모의고사 있는 거 알지? 쪽팔려서 시험은 어떻게 보는지 몰라.” 전생, 나는 이런 말에 쉽게 영향받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고서준이 오해할까 봐 이지현에게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마인드로 들었을 때는 유치하게만 느껴지는 말들이었다. 나는 이지현을 바라보며 피식 비웃었다. “경성대는 계속 갈 거야. 그게 고서준이랑 무슨 상관인데? 더러운 수작 부릴 생각 말고 꺼지시지. 난 너랑 엮이고 싶지 않아.” 이지현은 표정이 굳었다. 곁에 있던 여자애는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야! 김수아! 너 그거 무슨 뜻이야?” “무슨 뜻이라니? 난 두 사람 축복한다고 했잖아. 사귀든 말든 알아서 해.” 전생의 두 사람은 도덕과 윤리도 무시한 채 꾸준히 만났다. 이번 생의 나는 도덕과 윤리를 만들어낸 걸림돌이 되지 않을 생각이었다. 내가 말을 마친 순간 한 무리의 사람이 들어왔다. 선두에 있는 사람은 고서준이었다. 그의 표정은 아주 이상했다. 아무래도 내가 한 말을 들은 모양이다. 이지현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서준아, 수아는 장난으로 한 말이야. 신경 쓰지 마.” 고서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불쾌함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뭐 어쩌겠는가?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짧게 시선을 마주치고 나는 고개를 숙여서 책을 봤다. 고서준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공부 안 해?” 사람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고서준은 천천히 걸어왔다. 그리고 교복 끝이 나의 책상을 스치면서 뒷자리에 앉았다. 그의 존재감은 어릴 때도 여전했다. 나는 어쩐지 호흡이 가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고서준에게 공부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는 핑계로 이 자리에 앉았다. 고서준의 태도가 차가운 건 여전하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특별한 존재라도 된 줄 알았다. 그렇게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지금 보면 그냥 나의 집착이 귀찮아서 허락한 것 같다. 나는 심호흡 하며 문제집에 집중하려고 했다. 고서준에게는 조카가 아주 많았다. 가정주부로 사는 3년 동안 나는 시댁에 잘 보이겠다고 가정교사 노릇까지 했다. 안 그러면 지금쯤 고등학교에서 배운 걸 전부 잊었을 것이다. 오후 사이 나는 시험지 3개나 해치웠다. 수능시험 준비할 때의 느낌을 되찾으려고 말이다. 모르는 문제는 역시나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시험지를 들고 몸을 돌렸다가 고서준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했다. “...” 분위기는 약간 경직되었다. 고서준이 먼저 눈썹을 튕기더니 덤덤한 표정으로 펜을 들며 시험지를 받으려고 했다. 이때 나는 빠르게 몸을 틀어서 그의 옆자리에 앉은 서이준에게 시험지를 건넸다. “이준아, 이것 좀 알려줘.” 공기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서이준은 당황한 표정으로 안경을 올리며 물었다. “너... 사람 잘못 본 거 아니야?” “아닌데.” 서이준은 고서준을 힐끗대며 머뭇거렸다. 마침 고서준을 찾아왔던 남자애가 그의 마음의 소리를 밖으로 내뱉었다. “왜 서준이한테 안 물어봐?” “그동안 충분히 귀찮게 한 것 같아서.” 남자애는 놀란 듯 입을 다물었다. 싸늘한 정적이 계속되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이준을 재촉했다. “이것만 알려주라. 내가 아이스크림 살게.” 서이준은 약간 떨리는 손으로 시험지를 받았다. 고서준은 퍽 소리 나게 펜을 내려놓고 교실에서 나가버렸다.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