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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장

나민준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세심했다. 그는 공간이 넓어야 할머니가 편안하실 거라며 큰 밴을 몰고 왔다. 차도 고급형이라 좌석을 조절할 수 있어 할머니가 누워서 갈 수 있었다. 나민준은 직접 할머니를 안아서 차에 태우고, 또 담요까지 덮어준 뒤에야 차에서 내려왔다. 그가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서 나도 모르게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고맙다는 생각과 동시에 약간의 죄책감도 들었다. 그는 분명 나의 친구일 뿐인데도 내 가족에게 이렇게 신경을 써주고 있었다. 그가 너무 많은 걸 베푸는데 나는 그만큼 돌려줄 수 없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왜?” 그때 나민준이 팔짱을 끼고 능글맞은 얼굴로 다가와서는 말했다. “수아 씨, 나 멋있다고 느낀 거야? 혹시 나랑 사귀고 싶은 거 아냐?” 방금까지 느꼈던 감동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나민준을 몇 초 동안 말없이 바라보다가 그의 셔츠를 가리키며 말했다. “민준 선배, 안 불편해요? 셔츠 거꾸로 입으셨는데요.” “...” 나민준은 당황한 듯 입을 다물었다. 오전 11시쯤 되어 드디어 할머니를 모시고 아파트에 도착했다. 할머니를 방에 모셔드리고 점심까지 챙겨드린 후에야 나는 거실로 나왔다. 나민준이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걸 보고 조금 의아했다. ‘오늘이 벌써 설 이틀 전인데 민준 선배는 왜 아직 경성으로 돌아가지 않은 걸까?’ 나는 물 두 잔을 따라 그의 앞에 하나를 건네며 물었다. “아직 안 가셨어요? 모레가 설인데 안 돌아가세요?” 나민준은 내가 건넨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대답했다. “올해는 집에 안 가기로 했어.” “네?” 나민준은 가족을 굉장히 중시하는 사람이다. 부모님이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아버지와는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어머니와의 관계가 서먹하긴 해도 어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부모님 같이 설 안 보내세요?” 나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산에서 수아 씨랑 할머니랑 보낼 거야.” 순간 우리 둘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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