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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그날 밤, 안시연은 병원에서 나왔다. 막대한 병원비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걱정이 많았던 그녀는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대학 입시를 마치고 방학을 이용해 운전면허를 따서 이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하나 더 생겼다고 생각하니 기뻤다. “5분 줄게. 씻어.” 남자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불안하게 들려오며 얼굴은 홍조로 붉게 물들고 미간을 찌푸린 채 두 눈은 날카롭게 치켜뜨고 있었다. 안시연은 뒤돌아 욕실 앞에서 붉은 입술을 깨물며 작업복을 벗었다. 속옷까지 한쪽에 살포시 벗어둔 채 하얀 발이 타일 바닥을 밟자 차가운 기운이 심장까지 강타했다. 안시연은 몸을 흠칫 떨며 팔 전체에 소름이 돋았다. 곧바로 뜨거운 물이 나왔고 그녀는 바디워시를 짜서 몸의 냄새를 재빨리 씻어냈다. 남자의 바디워시에선 설명할 수 없는 거칠고 차가운 냄새가 났다. 샤워가 끝나고 목욕 타월로 몸을 감싸려는데 남자가 갑자기 문을 확 열어젖히고는 찬바람을 일구며 들어왔다. 놀란 안시연은 겁에 질려 본능적으로 가슴을 가리고 바닥에 웅크렸다. 남자의 눈가가 벌겋게 달아오른 채 흐릿한 눈동자와 함께 숨을 가쁘게 내뱉더니 들어오자마자 재킷을 벗고 넥타이를 풀기 시작했다... 안시연은 눈앞의 광경에 너무 놀란 나머지 화장실 문이 닫히기도 전에 서둘러 나와 침대 위로 뛰어 올라가서 이불로 몸을 꼭 감쌌다. 이불에 싸여 있어도 여전히 추위를 느끼고 온몸이 떨렸다. 남자가 재빨리 밖으로 나오며 ‘탁’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방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거대한 그물처럼 어둠이 그녀를 감싸자 안시연은 두려움에 휩싸여 무의식적으로 안정감을 찾으려고 손을 뻗어 상대에게 기대었다. 약물의 작용에 이끌려 남자는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 일을 마친 남자가 욕실로 들어가고 불쌍한 소녀는 잔뜩 흐트러진 채 침대에 남아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다시 나와 가운을 걸친 남자의 손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샤워한 후 말끔한 모습을 한 남자는 더더욱 차가워 보였다. “계좌.” “휴대폰은 제 옷 가방에 있어요.” 남자가 고개를 들어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안시연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굽힌 채 욕실로 들어갔다. 옷을 마구 뒤적여 마침내 휴대폰에 있는 은행 계좌를 찾아내 두 손으로 남자에게 건넸다. 도착한 알림을 확인한 안시연은 그대로 홀연히 스쿠터를 타고 자리를 떠났다. 안시연의 얘기를 들은 전희진은 가슴이 답답하면서도 화가 나고 안쓰러웠지만 안시연이 오히려 그녀를 달랬다. “희진아, 괜찮아.”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고 나니 안시연은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전희진이 걱정하는 게 싫어 이미 결정한 이상 실행에 옮길 생각이었다. “간 센터 근처에 산부인과가 있어. 아마 할 수 있을 테니까 내일 내가 물어볼게. 넌 가서 출근해.” 하지만 전희진은 고집을 부리며 가지 않았다. 절친이 구급차에 실려 갔는데 일할 정신이 어디 있겠나. “반차 냈으니까 우선 같이 가인 이모 보러 갔다가 다시 상담하러 가자.” 안시연은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눈시울만 붉혔다. 현실이 그녀에게 거듭 치명타를 날리는데 다행히 좋은 친구 전희진이 그녀의 상처를 치유해 준다. 병원에 도착했을 땐 간호사가 잠든 안가인에게 영양제를 놓고 있었다. 위 아래 정맥류와 위출혈로 인해 안가인은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고 영양액에 의지해 버티고 있었다. 급성 간경화로 인해 노출된 안가인의 피부는 누렇게 변해갔고 이불 아래 감춘 배도 약간 불룩하게 튀어나온 상태였다. 안시연은 뒤돌아 눈물을 훔쳤다. 절대 울어선 안 된다. 엄마를 걱정시킬 수는 없었다. 어린 생명을 곧 버려야 한다는 사실도 엄마에게 알릴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안가인이 잠든 틈을 타 서둘러 산부인과로 가서 등록하고 검사를 받았다. 한참을 바삐 돌다가 마침내 의사가 퇴근하기 전 3일 뒤에 임신 중절 수술을 받기로 예약했다. “시연아, 많이 먹어. 넌 너무 말랐어. 수술하면 몸도 망가지니까 한동안 몸조리를 해야 해.” 가냘픈 안시연이 수술의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생각에 전희진의 가슴은 먹먹해졌다. 그래도 수술하기로 예약했으니 안시연은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을 굳게 먹어야 했다. “알겠어.” 안시연은 애써 슬픈 일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손에 든 주의 사항이 적힌 종이를 흔들었다. “그래도 4년 동안 의대생으로 있으면서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까지 다 공부하고 한의학도 배웠어.” “너도 참.” 전희진은 차마 그녀를 나무랄 수 없어 안시연을 임신하게 한 남자를 남몰래 저주하기만 했다. “수술하는 날 나도 옆에 있을게.” 안시연은 전희진의 팔짱을 끼며 머리를 어깨에 기대었다. “희진아, 너밖에 없어.” 전희진을 돌려보낸 안시연은 간 센터 납부 창구로 걸어가 힘들게 모은 16만원을 건넸다. “우선 이 정도만 내고 나머지도 계속 갚아나갈 테니까 엄마한테 고지서 보내지 마세요.” 수납 창구 직원들도 모두 안시연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기계적으로 대꾸하며 돈을 받고 영수증을 건넬 뿐이었다. 안시연은 그들의 퉁명스러운 태도에 진작 익숙해졌고 엄마의 병만 치료할 수 있다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장풍 그룹 건물은 기성의 유명한 대표 건물로 기성 상업구에 우뚝 서 있었다.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건물 전체에 불이 켜져 있었고 꼭대기 층에 있는 대표 사무실은 낮보다 더 밝았다. 똑똑. 규칙적인 노크 소리가 들렸지만 안에 있는 사람은 미동도 없었다. “들어와.” 낮은 목소리고 단호하고 점잖았다.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닥에서 천장까지 내려오는 통유리창 밖으로 화려하고 번화한 야경이 펼쳐졌다. 검은색 책상 위에는 다양한 색상의 서류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남자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대표님, 알아봤습니다.” 조영훈은 상사의 얼굴을 힐끗 돌아보았다. 높은 콧대와 뚜렷하고 매끈한 턱선이 그의 업무 스타일처럼 날카롭고 예리했다. “여자의 이름은 안시연, 기성 의대 8년제 본과, 석박사 통합 과정에 재학 중인 의대생입니다.” “그래.” 짧게 대꾸한 박성준은 눈길 한번 돌리지 않고 긴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일을 이어갔다. 오래도록 비서가 나갈 기미가 안 보이자 그가 말했다. “이제 퇴근해.” “대표님...” 조영훈은 현재 대표님이 처한 상황을 고려할 때 이 사안은 보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안시연 씨가 임신했는데 사흘 뒤 중절 수술을 예약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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