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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서약피의 서약
By: Webfic

제6장

노수영과 김은지는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고개를 든 순간 두 사람 모두 얼어붙었다. 김소연을 상대하라고 불러온 두 남자는 의자에 묶인 채 중요 부위에 은침이 꽂혀 있었다. “움직이지 마요. 자칫하다가 평생 못 쓸 수도 있어요.” 김소연은 능글맞게 웃으며 돌아서서 육수를 집어 두 사람에게 부었다. “아.” 노수영과 김은지의 얼굴은 순식간에 육수로 뒤덮였다. 김소연이 서재 뒤쪽의 문을 열자 그곳엔 계단이 나타났고 예전에 기르던 보더콜리 두 마리가 돌진해왔다. 그들은 사나운 데다가 김소연의 말만 들었다. “착하지? 가서 국물 좀 먹을까?” 김소연이 웃으며 명령하자 보더콜리 두 마리는 김은지와 노수영을 둘러싸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김소연, 너 뭐 하는 짓이야?” 계획이 탄로나자 노수영은 표정이 돌변했다. 그 시각 김소연은 과일칼에 묻은 지문을 닦으며 싸늘한 눈빛으로 김은지를 향해 걸어갔다. “일부러 내 지문을 남기려고 한 거야? 내 추측이 맞다면 넌 몸에 피를 묻히고 나중에 여기 누워있겠지? 그러면 나는 납치당한 후 정신을 잃은 채 의붓동생을 살인하려고 시도한 미친년으로 낙인찍히겠네? 게다가 남자 동료를 집에 불러서 성폭행했다고 퍼뜨리면 더 난리가 나겠지? 설마 내 알몸 사진까지 찍으려고 했던 거야?” 보더콜리가 얼굴을 핥고 있는 탓에 섣불리 답하지 못한 김은지는 어느새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김소연은 태연하게 장갑을 끼더니 칼을 들고 김은지의 손바닥을 그었다. “김소연, 감히 나한테 손을 대?” “우리 동생... 언니를 감옥 보내려고 애를 썼는데 증거가 없어서 어떡하지?” 김소연은 섬뜩한 웃음을 지으며 칼을 한켠으로 던졌다. 물론 그 위에는 아무런 지문도 찍혀있지 않았다. 곧이어 돌아서서 침을 거두자 두 남자 주주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려고 했다. “임 대표, 유 대표. 뭐 하는 거야? 얼른 붙잡아야지. 맘껏 놀아도 된다니까?” 노수영은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보더콜리를 보기만 해도 겁을 먹었고 오히려 원망 섞인 목소리로 노수영을 탓했다. “사모님, 일 처리를 똑바로 하셔야죠. 이번 일은 절대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두 사람을 도망치다시피 아래층으로 달려갔다. 김소연은 침술 도구를 정리한 후 보더콜리를 다시 내려보냈다. 그 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노수영과 김은지를 보며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아줌마, 내가 당신들이 밟고 싶으면 밟고, 속이고 싶으면 속이는 멍청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동안 생각 없이 말을 잘 들어서 그런가? 계획한 것치고는 너무 허술한데요? 아니면 나이를 먹어서 지능이 못 따라가나?” 분노에 눈이 먼 노수영과 달리 김소연은 할 말을 이어갔다. “반성 좀 해요. 쪽팔지도 않나.” 노수영은 본색을 드러내며 야비한 웃음을 지었다. “은지를 다치게 해놓고도 네가 무사할 것 같아?” “경호원, 쟤 때려죽여.” 건물 아래층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이 전부 올라왔고 건장한 체격의 남자 7, 8명이 김소연의 앞에 나타났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눈빛이 급격하게 흔들리는 김소연의 모습에 노수영은 피식 웃었다. “이제야 겁이 나는 거니? 지금 당장 옷 다 벗겨버려.” 경호원이 달려드는 순간 김소연은 은침을 손에 쥐고 최후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이때 그녀에게 손을 댄 경호원 한 명이 ‘툭’하는 소리와 함께 팔이 부러졌다. 고개를 돌리자 어디선가 정장을 입은 젊은 청년 두 명이 뛰어 들어왔다. 움직임이 어찌나 빠른지 불과 몇 초 만에 방 안에 있던 모든 경호원을 제압했다. “누구야? 여긴 어떻게 침입했어?” 노수영은 당황한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김소연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곧바로 젊은 남성에 의해 제지됐고 손 쓸 틈도 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이를 본 김은지는 비명을 질렀다. “이쪽으로 가시죠.” 남자는 고개를 돌려 김소연에게 길을 안내했다. 김소연은 감히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곧바로 그들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해질 무렵. 김씨 가문의 저택 아래는 아침의 벤틀리가 아닌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얼핏 보니 뒷좌석에는 마스크를 쓴 키 큰 남자의 형체도 보였다. 정신이 번쩍 든 김소연은 우물쭈물하다가 물었다.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남자는 김소연을 힐끗 보고선 되물었다. “안 왔으면 뱃속의 아이는 어떻게 지키려고 했어?” 그의 위압감에 김소연은 아무 말도 못한 채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남자는 자연스레 문을 열었고 김소연은 말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김소연의 행동을 보며 깊은 산속에 있던 그날 밤이 떠올랐다. 그때와 똑같이 오늘도 새끼 고양이처럼 매력적이고 요염한 자세로 차에 올라탔다. 그 시각 김씨 가문의 2층에는 김기태가 나타났다. 이 상황이 달갑지 않아 씩씩거리며 창가로 달려간 김은지는 입구에 주차된 고급 승용차를 보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뭐지? 설마 죽어가는 와중에 남자를 꼬신거야?’ 곧이어 뒷좌석에 앉은 가면 쓴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물론 고급 승용차인 건 맞지만 일반인이 충분히 살 수 있는 레벨이었다. 김은지는 재빨리 머리를 굴리더니 뭔가를 알아챈 듯 고개를 돌려 노수영과 김기태에게 일러바쳤다. “언니도 참 대단하네요. 도망치는 와중에 양아치랑 눈이 맞았나 봐요. 도와달라고 요청한 게 틀림없어요.” 노수영은 번호판도 없는 차를 보며 피식 웃었다. “고귀한 아가씨가 양아치들한테 도움 구하는 신세가 됐네.” 김기태는 이 상황이 매우 언짢았다. “둘 다 입 다물어. 감옥 보낼 수 있다며 장담했잖아. 그런데 이게 뭐야.” 김은지와 노수영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졌다. “예전에는 정우한테 현혹되어서 잠깐 상황 파악이 안 됐을뿐이야. 내가 예전부터 말했잖아. 소연이는 은지보다 훨씬 뛰어난 애라고. 가만히 있는 애를 건드려서 이 사달이 난 거잖아. 정신 안 차려?” 질투심이 불타오른 김은지는 고개를 숙이고 화를 삼켰다. 그런데 때마침 하정우의 차를 보게 되었고 그는 김소연이 탄 차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 노을 몇 줄기가 남자의 깊은 실루엣에 떨어졌다. 김소연은 순간 그가 사람을 놀라게 할만한 미남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동안 지켜보다가 그녀는 감사함을 전했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남자는 싸늘한 분위기를 풍기며 다리를 꼰 채 서류를 훑어보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답이 들려오지 않자 김소연은 머쓱한 듯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이때 그가 입을 열었다. “말로만 고맙하고 하는 거야?” 고개를 돌리자 마침 남자와 두 눈이 마주쳤다. 해가 져서 그런지 그의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김소연이 그 말에 담긴 뜻을 모를 리가 없다. 앞좌석에 앉은 비서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남자한테 마음을 전하는 방법은 여러 개 있잖아요. 아시죠?” 김소연은 멀뚱멀뚱 눈만 깜빡였다. “대표님, 제 말이 맞죠?” 비서는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는 남자를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그는 김소연의 입술을 바라보고선 나지막하게 답했다. “응.” 그의 시선이 느껴진 김소연은 몸 둘 바를 몰랐다. ‘왜 갑자기 입술을 쳐다보는 거지? 설마 뽀뽀라도 하기를 바라는 거야?’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김소연은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가렸다. “그건 안 돼요...” 그녀의 행동에 남자는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뭐가 안된다는 거지?” 김소연은 일을 마친 그가 너무 심심해서 이런 장난을 치는 건가 싶었다. 남자는 차 문에 완전히 붙어있는 김소연을 보며 짓궂게 눈을 감았다. 김소연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최대한 진정시켰다. 그런데 때마침 핸드폰이 울렸고 발신자를 확인한 순간 눈빛이 가라앉았다. 허정우다. [김소연, 양아치 새끼랑 붙어먹었다며? 가면 쓴 못생긴 놈은 누구야?] [설마 산에 갇혀있을 때 그놈이랑 잤냐?] [소연아, 나한테는 너밖에 없어. 내가 왜 너를 죽이려고 하겠니...] 김소연은 가슴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죽음의 문턱에 있을 땐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더니 이제는 다른 남자가 옆에 있다고 나무라는 그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김씨 가문보다 그녀는 허정우가 더 미웠다. 애써 숨을 가다듬으며 핸드폰을 끄려던 찰나 김은지의 문자가 날아왔다. [하긴 너 같은 인간은 양아치를 만나는 게 어울려. 아참, 형부가 우리 결혼하면 한울 그룹을 나랑 아기한테 넘겨준대. 열받아 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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