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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고설아가 말을 이었다. "제 동생은……." 허윤진은 고설아의 몸에서 나는 과한 향수 냄새를 맡고는 또다시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도우미가 그 상황을 보고는 방해가 되는 고설아를 밀어냈다. "저리 비키세요! 우리 아가씨는 지금 당신을 상대할 상황이 아니에요!” "아가씨, 괜찮아요?" 도우미들은 탈진한 허윤진을 조심스럽게 부축해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고설아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데다 밀쳐지기까지 해서 기분이 매우 안 좋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저택에 사는 사람에게 감히 어쩌지 못했다. 허씨 가문 운전기사가 차창을 내리고 친절하게 충고해줬다. "빨리 가세요. 이곳은 당신이 함부로 캐묻고 다닐 곳이 아니에요." 고설아는 고개를 돌려 물었다. "당신은 이 집의 운전기사예요? 이 집에 도대체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말해 주세요." 운전기사는 매우 신중한 자였다. "이곳에 어떤 사람이 사는지 말해줄 수는 없지만, 듣기로는 최근에 도우미들을 새로 뽑았다더군요. 아마 당신 동생도 그 안에 있을 거예요!" ‘도우미? 고연화가 여기 도우미로 들어간 거야? 그 애는 A회사에 다니잖아?’ 고설아는 더 캐묻고 싶었으나 운전기사가 이미 차를 차고로 몰고 떠난 뒤였다. 그녀는 생각할수록 수상쩍어 A회사에 다니는 동창에게 연락해 물어보았고, 고연화가 이미 해고된 것을 알게 되었다. ‘잘렸다고? 그래서 고연화가 정말 이 집에 도우미로 들어간 거야? 집을 구했다더니, 사실은 가사도우미로 24시간 대기해야 해서 집을 나온 거지? 고연화 고것도 기껏해야 이 정도네. 그 비싼 외투도 주인집 남자 옷을 훔쳐간 것이 분명해!’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고설아는 갑자기 기분이 상쾌해져 집에 돌아가 아버지에게 고자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허씨 저택 이 층. 고연화는 나른하게 창가에 기댄 채 고설아가 삐뚤거리며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은은하게 미소 지었다. 다음날, 점심. 온화한 분위기의 한 노부인이 부축을 받아 H계열 허머에서 내려 허씨 가문 저택으로 들어갔다. 노부인을 발견한 허윤진이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할머니, 드디어 오셨군요!" "네 연락을 받고 오늘 아침 비행기표를 예약하게 했다!" 허 여사가 귀염둥이 손녀를 애틋하게 살펴보았다. "윤진아, 며칠 사이에 살이 쪽 빠졌구나?" 허윤진이 울먹이며 말했다. "할머니, 오빠랑 결혼한 새신부가 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저에게 실력행사를 한 탓에 토하다 탈수 증세로 병원에 실려 갔지 뭐예요. 흑흑흑…….” 아직 정정한 허 여사가 예리한 두 눈을 번쩍 부릅떴다. "어디, 새신부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 번 보자꾸나. 감히 내 손녀를 괴롭히다니! 자네, 가서 고연화를 나에게 데려오게!” 허윤진은 허 여사를 소파 위로 부축해 주고는 할머니의 곁에 기대어 이것저것 얘기 나눴다. ‘고연화, 너 오늘 죽었어. 할머니가 아주 혼쭐을 내줄 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고연화가 집사에게 이끌려 들어왔다. "네가 고연화냐?" 허 여사는 그녀를 아래위로 살펴보았다. 고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를 찾으셨어요, 어르신?" 허 여사가 곱지 않은 눈빛으로 물었다. "듣자 하니 네가 우리 집 윤진을 괴롭혀 병원 신세를 지게 했다면서? 어디, 시집오자마자 자신이 허씨 가문 안주인이라도 된 줄 알았더냐?" 고연화는 노부인이 누군지 알아차렸고, 허윤진이 어떻게 사실을 왜곡해 고자질했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기죽지 않고 차분히 설명했다. "할머님,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남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지요? 어제는 아가씨가 먼저 더러운 물을 저에게 뿌렸고, 저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반격했을 뿐이에요. 그러니 제가 아가씨를 괴롭혔다는 말은 맞지 않아요.” 허 여사는 얼굴을 돌려 손녀를 바라보았다. "윤진아, 정말 그랬어?” 허윤진은 눈물을 머금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할머니, 저 여자가 하는 허튼소리를 믿지 마세요! 어제 집안 도우미들이 현장에 있었으니, 모두 저를 위해 증언해 줄 거예요!” 아가씨가 눈짓하자 옆에 있던 도우미 몇 명이 바로 나섰다. "제가 증인이에요. 아가씨는 결코 작은 마님을 건드리지 않았어요." "저도 증인이에요!" "저도요!" 허 여사가 또다시 엄한 눈빛으로 고연화를 바라보았다. "또 할 말이 있느냐?" 고연화는 앞으로 나선 도우미들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 있는 자들은 모두 허윤진의 사람이라 그녀는 입이 백 개라도 변명할 말이 없었다. "할머님, 저는 제가 할 말은 다 했으니, 할머님께서 믿지 않으시면 더는 할 말이 없네요." 허 여사는 목소리를 내리깔고 콧방귀를 뀌었다. "아직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느냐? 보아하니 너의 집안에서는 너에게 사람 됨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것 같으니, 우리 허씨 가문에서 가르쳐주마! 자네, 가서 허씨 가문 규칙을 가져와 저 애가 백 번 베껴 쓰게 하게나. 다 베껴 쓰지 못하면 밥을 주지 말게. 어디, 우리 허씨 가문 규칙을 잘 배워보거라!" 고연화는 어이가 없었다. ‘이 두 사람은 어찌 모두 다른 사람에게 규칙을 가르치기를 좋아할까?’ "할머니, 저 대신 나서줘서 고마워요!" 득의양양해진 허윤진이 허 여사의 곁에 기댄 채 탁자 위의 과자를 하나 집어 들었다. "할머니, 막 비행기에서 내린 참이라 아직 식사 전이죠? 먼저 과자로 요기하세요. 제가 주방에 가서 할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라고 할게요.” 고연화가 큰 소리로 제지했다. "잠깐만, 그건 먹으면 안 돼요!" 허윤진이 불만스레 말했다. "고연화, 여기는 허씨 가문이야. 우리 할머니가 못 먹을 게 뭐 있어? 할머니, 저 여자 말은 무시하고 어서 드세요.” 허 여사는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손녀가 입가에 대준 과자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고연화가 또다시 막으려 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허윤진은 도발적이 눈빛으로 고연화를 바라보았다. "너는 빨리 가문의 규칙을 베껴 쓰지 않고 뭐해? 백 번이야!" 바로 이때 허 여사가 갑자기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크게 벌리고는 숨을 헐떡였다. 허윤진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할머니? 왜… 왜 그러세요?" 노부인의 상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본 고연화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상태를 살펴보았다. 그 모습을 본 허윤진이 질색하며 그녀를 밀어버렸다. "저리 가! 우리 할머니, 건드리지 마!" “어르신 상태가 위험하니 방해하지 마!” "위험하다니! 우리 할머니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허윤진이 그녀 앞을 가로막고 난리를 쳐대며 고연화가 할머니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고연화는 급한 마음에 그녀의 뺨을 한 대 갈겼다. 그 힘에 떠밀린 허윤진이 옆으로 물러났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곧바로 소파 위의 허 여사를 일으켜 하임리히법 응급조치를 취했다. 뺨을 부여잡고 일어난 허윤진이 고연화가 할머니를 괴롭히는 것을 보고는 비명을 질렀다. "아! 고연화가 미쳐 할머니를 죽이려고 해! 뭣들 하는 거야, 빨리 막아!" 허씨 가문에서 일하는 장정들이 무기를 들고 고연화를 포위했다. 그러나 허 여사가 그녀의 손에 있는지라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다. "다들 다가오지 마세요!" 고연화는 허 여사를 안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여사님!" "어서 여사님을 놔줘요!" "허튼수작 부리지 마세요!" 이때 문득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이리 시끄러워!" 허태윤이 들어오자마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허윤진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허태윤의 품에 뛰어들었다. "오빠, 빨리 할머니를 구해줘. 할머니가 고연화의 손에 죽을 거 같아!” 허태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할머니를 껴안고 있는 고연화를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왜 할머니에게 손댄 거야?" 고연화가 입을 열어 설명하려던 차에 허윤진이 재빨리 말머리를 채갔다. "저 여자가 할머니를 화나게 해서 할머니가 저 여자에게 가문의 규칙을 베껴 쓰라고 벌주었어. 거기에 불만을 품은 저 여자가 이렇게 할머니에게 복수하는 거야! 오빠, 저 여자 미쳤어. 빨리 저 여자와 이혼해!" 허태윤은 소란스러운 허윤진을 옆으로 밀어내 정시후에게 건네주고는 매서운 눈빛으로 고연화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죽고 싶지 않다면 당장 우리 할머니를 놓아줘!" 고연화가 입을 열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허태윤이 짜증을 냈다. "무엇을 기다리라는 거지?" 허 여사가 갑자기 심하게 기침하기 시작했다. 고연화는 그제야 노부인을 놓아주었다. 그러자 허씨 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곧바로 다가와 허 여사를 둘러싸고 숨 쉬는 것을 도와주었다. 할머니가 숨을 헐떡이며 기침하는 것을 본 허태윤이 고연화의 목을 덥석 잡았다. "무슨 용기로 감히 우리 할머니에게 손댔지?" "저는…… 컥…….” 고연화는 두 발이 갑자기 공중으로 붕 뜨자 숨이 턱 막혀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는 허태윤의 새빨개진 눈동자에서 살의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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