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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신이서는 더 물을 겨를도 없이 지하철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전수미가 보낸 주소로 달려갔다. 고급 레스토랑. 로맨틱한 크리스털 조명, 꽃으로 된 벽지 그리고 잔잔한 음악까지 곳곳에 정교함이 묻어난다. 현관 밖에 입간판이 하나 세워져 있다. [골프 동호회] 이게 바로 소위 소개팅 대회라는 것인가? ??? 신이서의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가득했다. 전수미는 자신이 일찍 이혼했다고 말한 것 같은데, 설마 이번에... 황혼 연애? 전수미는 관리를 잘한 덕분에 50대 중반의 나이임에 불과하고 40대 초반처럼 보인다. 옷차림도 늘 우아하여 애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왜 신이서를 부른 걸까? 그녀가 의아해 할 때, 손 하나가 그녀를 화초 뒤로 끌고 갔다. "이서야, 드디어 왔구나." "수미 이모? 왜 밖에 있어요? 소개팅 하러 오신 거 아니었어요?” 신이서가 물었다. 전수미는 선글라스를 벗고 피식 웃었다. "내가 이 나이에 무슨, 난 남자 때문에 내 독신 생활을 망치고 싶지 않아, 내 그 나쁜 자식놈이 선을 보러 왔단다. 근데 글쎄 어떤 뻔뻔한 여자가 올 줄 누가 알았겠니. 우리 아들이 그 여자를 무시하니까 그 여자가 갑자기 우리 아들을 헐뜯기 시작했어. 내가 그렇게 힘들게 아들을 설득해서 선을 보러 왔는데 난 그 여자 때문에 이 선을 파괴당하고 싶지 않아. 네가 들어가서 날 좀 도와줘." "이모, 걱정 마세요, 누가 이모 아들이에요?" 신이서는 이를 악물고 치를 떠는 전수미를 부축이면서 다독였다. "창가 쪽 두 번째 테이블, 검은 셔츠를 입었어. 이름은 송서림. 나이는 서른살, 키는 189. 성격은 보통이지만 그래도 잘생겼단다..." "잠시만요, 봤어요, 이모 나한테 그렇게 자세히 말할 필요 없어요. 제가 선을 보는 것도 아닌데.” 신이서는 앞에 있는 나뭇잎을 치우며 창가에 앉아 그녀를 등지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늠름한 뒷모습만으로도 서늘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길고 가느다란 손이 유리잔에 닿자 흔들리는 샴페인이 그의 손가락을 옥처럼 하얗게 비추었다. 유리창에 비친 그의 옆모습 그림자는 깊고 고요해 보였다. 이에 비하면 그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일자 어깨의 롱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안색은 그리 좋지 않다. 여자는 이쁘게 생겼지만 눈에는 야유가 가득 차 있고, 이따금 눈살을 찌푸리는 게 매우 각박해 보였다. 이 상황을 보고 전수미가 신이서를 치면서 말했다 "이서야, 잘 부탁해." "네, 근데..." 신이서는 로비 안을 가리켰다. "이렇게 고급진 연회에 제가 들어가도 돼요?" "걱정 말아, 내가 준비했어." 전수미는 난이 그려진 카드를 그녀에게 건네줬다. "누가 널 막으면 이 카드를 보여줘. 그러면 널 들여보낼거야." "알았어요." 신이서는 머뭇거렸지만 결국에는 승낙했다. 그녀가 카드를 들고 로비로 들어가자 종업원이 예의 바르게 그녀를 막아섰다. "아가씨, 초대장을 보여주세요." 신이서가 난초 카드를 꺼내들자 종업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팔을 내리고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 들어가시죠." "고마워요." 신이서는 손에 든 카드를 바라보았다. 무슨 카드이기에 이렇게 대단하지? [이모님이 혹시 아들을 소개팅시키려고 회원 충전하신 건 아니겠지?] 이 세상의 부모의 마음이란 참 가여운 것이다. 신이서는 카드를 잃어버릴까 봐 조심스럽게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바로 창가로 걸어가는데 입을 열기도 전에 여자의 매몰찬 목소리가 들렸다. "그쪽은 자기 자신을 뭐라도 된다고 생각해? 오늘 여기에 올 수 있는 사람 중에 2억원짜리 몸값이 아닌 사람이 과연 있을가? 그쪽은 그래봤자 고작 월급이 4백만 원인 프로그래머일 뿐이고, 차도 그 폭스바겐이나 끌고 다니는 주제에, 나 같은 아가씨가 그쪽이 잘 생겼다고 체면봐서 같이 한 잔 하자는 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거절해? 잘 들어, 나한테 사과하지 않으면 오늘 누가 감히 그쪽한테 말을 걸 수 있는지 보자고, 그쪽은 오늘 그 회원비를 괜히 냈어." 여자는 말한 다음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길은 탐욕스럽게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손끝은 유혹하듯 가슴 앞 머리카락을 휘감았다. 신이서는 그녀의 말투가 너무 몰아붙이는 것 같아 빠른 걸음으로 탁자 앞을 가로막았다. "내가 걸 거예요." "내가 저 사람이랑 사귈려고 하는데, 아가씨가 마음에 안 든다면 우리..." 신이서는 말을 하면서 얼굴을 송서림에게로 돌렸다. 그리고 입에 막닿은 말을 잇지 못했다. 빼어난 미모의 얼굴이 충격적으로 신이서의 눈으로 들어왔다. 이런 얼굴도 마음에 안들면 그 어떤 사람이 마음에 들 수 있을까? 먹물 같은 눈동자, 약간 치켜진 봉황 눈매, 자잘한 별빛이 가득하여 정이 있듯 없듯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 남자는 정말 아름다웠다. 하지만 조금도 여성스럽지 않았고 눈매는 청초하고 침울했으며, 살짝 찌푸리면 사람의 기세를 빼앗는 듯한 압박감이 몰려왔다. 송서림은 살짝 신이서를 쳐다보더니 눈매가 좀 무거워졌다. 정말 공교롭게도 그 2천만 원 아가씨. [남자친구랑 헤어지자마자 소개팅하러 온거야?] 신이서는 그 남자의 눈길에 당황했다. ‘아는 사이인가? 저 사람이 왜 이렇게 날 쳐다볼까?’ 맞은편에 있는 여자가 송서림이 신이서를 쳐다보는 걸 알아차리고 화를 내며 일어섰다. "저 여자 궁상맞은 꼴 좀 봐요, 여기 온 것도 돈 있는 행세를 해야 하는데, 뭐가 대단하다고?" "적어도 그 여자의 얼굴은 진짜야, 난 성형 얼굴은 싫거든." 송서림이 몸을 기대자 손가락 사이에 담배 한 대가 꽂혀졌다. 그가 천천히 불을 붙이자 얇은 입술에서는 흰 안개가 뿜어나와 그의 얼굴을 가리면서 한가닥의 나른한 위험을 더했다. 여자는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벌떡 일어났다. "역시 거지라 보는 눈도 없구나." 여자는 콧방귀를 뀌며 하이힐을 밟고 일부러 신이서를 밀어내면서 그녀를 매섭게 쏘아보기까지 했다. 신이서는 어깨가 아팠지만 재빨리 발을 내밀었다. "악!" 하이힐을 신은 그 여자는 삐끗하면서 그대로 엎어졌다. 그때 신이서가 말했다. "아가씨, 당신 코가 비뚤어진 것 같아요." 여자는 자신의 코를 움켜쥐고 비틀거리며 뛰쳐나갔다. 신이서는 입술을 오므리고 웃음을 참다가 송서림이 보내는 시선을 눈치채고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송서림에게 설명을 하려는데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서? 왜 여기 있어? 네가 감히 날 배신해?" 정말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뜻밖에도 고운성을 마주치다니. “아니야, 이건 소개팅 모임이잖아?” 아까까지도 그녀와 결혼했다고 말하던 사람이 지금은 고급 소개팅 모임에 나타났다. 무슨 자격으로 그녀한테 뭐라고 하는 걸까? 신이서는 고개를 돌려 냉랭한 표정으로 고운성을 바라보았다. "너도 여기에 왔는데 나라고 못올 건 없잖아? 그리고 우리 사이는 배신이라고 할 수 없어, 우린 이미 헤어졌으니까." 고운성의 눈에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명령식으로 말했다. "빨리 돌아가. 여긴 네가 올 곳이 아니야." 신이서는 그를 상대하기 귀찮아 송서림의 맞은편에 앉았다. "서림 씨, 저 사람 신경 쓰지 말고 우리 계속해요." 송서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서 담배를 피우며 숙연한 모습으로 고운성을 완전히 무시했다. 고운성은 다른 남자들에게 무시당하는 게 창피했는지 책상 위에 놓인 송서림의 신분증을 쳐다보더니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신이서, 이게 바로 네가 찾은 다음 남자냐, 고작 프로그래머? 이 사람이 네가 원하는 걸 다 들어줄 수 있을 거 같애?" "고운성!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신이서가 경고하듯 고운성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고운성은 겨우 체면을 세울 기회를 찾았는데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두 손으로 테이블을 받치고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송서림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내가 판을 깨는 게 아니라 내가 당신이 사기당할까 봐 걱정하는 거에요. 저 여자는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랑 같이 있었는데, 지금은 당신을 찾아온 걸 보면 분명히 당신을 등신으로 본 모양인데, 저 여자가 얼마나 탐욕스러운지 아마 상상도 못할 거예요." 그 말을 듣자 신이서는 책상 아래에 놓인 두 손을 힘껏 움켜줬다. 3년 동안 사랑한 사이, 그녀는 늘 헤어지더라도 서로 체면있게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보니 저 남자의 눈에는 자신이 이렇게 끔찍한 모습일 줄은 몰랐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송서림 앞에 놓인 술잔을 집어 고운성의 얼굴에 뿌렸다. "정신이 들어? 네 옷에 착용한 신분증을 한번 봐볼래? 부서 총감? 언제 승진했지? 연봉 2억 원? 해피빈이야? 무슨 자격으로 남을 그렇게 얘기해?" "신이서!" 고운성은 의아한 눈길로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얌전하고 말을 잘 듣던 그녀가 이렇게까지 반항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신이서의 말에 주위 사람들이 자신한테 손가락질하는 것을 보고 그는 부끄러움을 참지 못했다. 그는 신이서를 향해 손짓을 하려는데 송서림에게 손목을 붙잡혀 책상에 짓눌러졌다. 그 아픔에 그의 얼굴은 더욱 망신스럽게 변했다. 송서림은 여전히 차갑고 심지어 틈틈이 손가락 사이에 있는 담뱃재를 털기도 했다. 은은한 담배 냄새가 테이블 상공을 맴돌았지만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가짜 시계, 가짜 목걸이, 가짜 벨트, 가짜 신분, 여기는 회비가 만만치 않은데, 사람들 앞에서 들통나고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당장 내 앞에서 꺼져." "너..." 고운성은 깜짝 놀랐다. “분명히 고급 모조품을 샀는데 한낱 프로그래머가 어떻게 알아보았지?" "셋, 둘..." 송서림은 묵직한 목소리로 카운트 다운을 했다. "갈게, 가." 고운성은 필사적으로 몸을 빼고 겉옷을 털었다. 그리고 불쾌한 시선으로 신이서를 바라보며 자신의 신분증을 가리켰다. "이서야, 얼마 안 가서 이게 곧 내 신분이야. 난 네가 날 많이 사랑한다는 걸 알아. 내가 너한테 후회할 기회를 줄게." "얼른 안 꺼져?" 신이서는 그의 말을 한마디라도 더 듣는 게 귀에 거슬렸다. 고운성이 떠나자 신이서는 고맙다는 눈빛으로 송서림을 바라보았다. 막 인사를 하려던 참에 옆에 한 그림자가 앉았다. "이서야, 저 개 같은 자식이랑 헤어진 거 축하해. 저 개자식이 소개팅 모임이 시작하자마자 여자들을 유혹했어." 말하는 사람은 바로 전수미였다. 전수미가 그녀를 이곳으로 부른 목적은 신이서에게 고운성의 본질을 확인시키려고 한 것이다. 한 달 전, 그녀의 어머니가 갑자기 중병에 걸렸을 때 바로 그때였다. 알고 보니 고운성의 다정다감은 다 연기한것이다. 그는 단지 한편으로는 그녀를 후보로 삼고 또 한편으로는 더 나은 출구를 찾고 있을 뿐이다. "이모, 고마워요." 신이서가 석연하게 말했다. "무슨, 우리 본론부터 말하자. 아니면 이서야, 좀 억울해도 우리 아들한테 시집올래?" "..."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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