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오늘 밤 온서빈은 평소와 너무 달랐기에 생각 끝에 심유정은 한가지 추측만 떠올렸다.
“아직도 화난 거야?”
“그런 거 아니야.”
온서빈은 여전히 침착했고 목소리에는 무기력함이 담겨 있었다.
거짓말이 아닌 것 같은 그의 표정에도 심유정은 여전히 불안한 듯 손목에 걸린 시계를 흘끗 쳐다보다가 결국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너무 늦었어. 나랑 같이 가.”
그렇게 말하며 현관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온서빈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됐어. 내 친구들 모임인데 네가 가면 불편해지지.”
그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심유정의 움직임도 멈췄다. 그가 거절할 줄은 몰랐던 그녀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번쩍였다.
두 사람이 만나면서 몇 년 동안 온서빈은 친구들에게 그녀를 소개해 주려고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매번 거절했었다. 그런데 이젠 그녀가 먼저 가겠다고 하니 그가 거절했다.
심유정이 막 입을 열려는 순간 온서빈은 이미 그녀를 지나쳐 곧장 문밖으로 나갔다.
모임 장소는 클럽이었고 온서빈이 들어서자마자 이미 도착해 있던 몇 명의 사람들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귀한 손님이 오셨네. 우리 온서빈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왔을까? 이번에도 핑계 대면서 안 올 줄 알았는데.”
“맞아. 매번 초대해도 일이 있다고 했잖아. 진짜로 여자 때문에 친구들 다 버린 줄 알았어.”
친구들의 놀림에 온서빈도 다소 민망해서 자조적인 웃음을 띠었다.
“그땐 내가 멍청했어. 눈이 멀어서 날 사랑하지도 않은 여자 때문에 친구들을 멀리했네.”
그는 사람들 한가운데 앉아 테이블 위에 놓인 술을 자연스럽게 한 모금 마셨고 달큰한 술이 입안에 흐르자 그의 두 눈이 추억에 잠겼다.
사실 그는 술을 즐겨 마셨지만 심유정이 싫어해서 끊었다.
심유정은 두 사람이 소개팅으로 만난 줄 알지만 온서빈이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부모님 장례식장에서였다.
그해에 그는 겨우 열 살에 홀로 부모님 장례식을 준비했다.
친척들은 슬퍼하지 말고 손님부터 잘 접대하라고 말했지만 자기 손으로 두 구의 시신을 화장터로 밀어 넣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 구석에 숨어서 울었다.
그때 심유정이 그를 발견했다.
어머니의 절친 딸이었던 그녀는 슬피 우는 그의 모습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옆에 앉아 손을 뻗어 사탕 하나를 건네주었다.
“사탕 먹을래?”
온서빈이 흐느끼며 손을 뻗어 건네준 사탕을 받아 껍질을 벗기자 입안에서 달콤한 설탕이 사르르 녹았지만 여전히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난 이제 엄마 아빠가 없어. 너무 보고 싶어...”
똑같은 10대인데 그녀는 어른처럼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서워하지 마. 아직 네 옆에 계셔. 단지 네가 학교에 있을 때 부모님은 직장에 있고 집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는 출장 중이고 네가 보러 갔을 땐 마침 집으로 돌아갔을 뿐이야. 늘 곁에 있는데 앞으로는 그냥 서로 스쳐 지나갈 뿐이지.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만날 거야.”
이 말을 들은 온서빈은 마침내 고개를 들어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이후로 그 말만을 되새기며 온서빈은 엄마 아빠가 없는 긴 밤을 버텨냈다.
그들이 여전히 곁에 있지만 매번 스쳐 지나칠 뿐이라고 자신을 설득하고 몇 년이 지나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자신에게 말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온서빈은 그 말과 그녀를 잊지 못했다.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심유정이라는 이름뿐이었지만 말이다.
몇 년이 지나고 온서빈이 어른이 된 후 하림은 심유정과의 소개팅을 주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