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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꺅!” 임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꿈에서 깼다. 눈을 떠보니 병원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방금 보았던 육현우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옆 병상에 새로 온 환자, 이옥자가 웃으며 물었다. “아가씨, 악몽 꿨어? 잘 때 계속 손으로 이불을 잡아 뜯던데. 무슨 꿈을 꿨어?” 임하나는 어릴 적 악몽을 꾸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면 악몽이 현실이 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여 이옥자가 물으니 그녀는 답했다. “저의 대표님이요.” 이옥자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사장이 아주 악덕인가 보네.” 바로 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훤칠한 누군가가 등장했다. 임하나는 화장실을 가려고 침대에서 일어나던 찰나 병실에 등장한 사람을 보고는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육현우는 흰 셔츠를 입고 넥타이는 살짝 풀어 헤친 상태였다. 그리고 검은색 정장 바지는 그의 다리를 더욱 길어 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한 손에 도시락을 들고 다른 손에는 정장 외투를 든 채 엄청난 분위기를 내뿜으며 서있었다. 임하나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심장이 철렁하여 저도 몰래 살짝 주먹을 쥐었다. 한편 육현우는 임하나를 지나쳐 옆 병상의 이옥자 곁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여 불렀다. “할머니.” 순간, 임하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옥자는 자애롭게 육현우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평소 회사에서 차갑고 냉정하던 육현우가 이옥자 앞에서는 순하고 착한 손자 같은 모습으로 있었다... 아니. 그는 이옥자의 손자가 맞았다. 임하나가 아직 경악하고 있을 때 육현우는 도시락을 열어 이옥자에게 국을 드렸다. 육현우에게도 이런 면이 있다니. 임하나는 어리둥절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이옥자가 연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까 사과 먹었어. 더 이상 못 먹어.” 이옥자는 고개를 돌려 임하나를 보면서 말했다. “아가씨, 아직 식사 안 했지? 손자가 갈비탕을 끓여 왔는데 이것 좀 먹어 볼래?” 육현우의 시선이 임하나에게 쏠렸고 깜짝 놀란 임하나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 “아뇨. 괜찮아요. 전 배고프지 않아서요...” 이옥자는 열정적으로 권했다. “내가 먹던 거 아니야. 혹시 늙은이라서 싫은가?” “그럴 리가요.” “그럼 됐어.” 이옥자는 육현우를 밀며 말했다. “얼른 가. 저 아가씨 참 안됐어. 이렇게 오랫동안 병원에 있었는데 가족들이 오지도 않았어. 방금 악몽을 꿨는데 꿈에서 회사 대표를 봤대. 엄청 놀랐던데 사장이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 임하나는 이옥자의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 그때 육현우가 눈썹을 튕기며 임하나를 향해 말했다. “그래요? 무슨 짓을 했길래 회사 대표를 그렇게 무서워해요?” 임하나는 말문이 막혔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육현우는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저...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얘기들 나누세요.” 임하나는 도망치듯 화장실로 숨었다. 짝! 이옥자가 육현우의 등짝을 때리며 나무랐다. “왜 아가씨를 놀려! 애가 겁을 먹었잖니!” 육현우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할머니, 제가 그렇게 무서워요?” 비록 평소 업무에 있어 엄하게 요구한다지만 임하나가 저렇게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고 육현우는 생각했다. “그래!” 이옥자가 육현우를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생긴 건 무섭지 않다만 계속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무섭지. 저 아가씨 담이 아주 작은 것 같아. 사람이 아주 선하고 예의도 있는 게 아주 마음에 들어...” “그만!” 육현우는 머리가 지끈거려 이옥자의 말을 가로챘다. “저 사람 남자친구 있어요. 할머니 이상한 생각 하지 마요.” 이옥자는 믿지 않았다. “남자친구?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제 직원이니까요.” “뭐?” 임하나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병실에는 육현우 혼자 있었다. 임하나는 나오자마자 육현우의 시선이 느껴져 멈칫하더니 쭈뼛쭈뼛 병상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손에 아직도 링거를 꽂고 있었는데 까치발을 들고 손에 들고 갔던 링거병을 거치대에 걸려고 했지만 키 때문에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나 줘요.” 그때 임하나의 귓가에 남자의 낮은 소리가 들렸고 동시에 시원한 향기가 그녀의 코를 자극했다. 이어 육현우가 링거병을 쉽게 거치대에 걸었다. “고맙습니다. 대표님.” 임하나는 고개를 숙이고 육현우와 전혀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임하나가 병상에 앉자 육현우는 도시락을 그녀의 침대 옆 테이블에 놓았다. “이거 줄게요.” 임하나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어 육현우를 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다시 고개를 숙인 임하나는 볼이 빨개졌다. 육현우는 그 모습이 웃겼다. 지금까지 살면서 여자를 많이 봤지만 임하나처럼 수줍음이 많은 여자는 처음이었다. 그녀는 마치 미모사처럼 조금만 다쳐도 얼굴이 빨개졌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재밌었다. 임하나가 이상한 생각을 할까 육현우가 한 마디 보탰다. “할머니께서 드리는 거예요.” “네. 이따가 할머니께 인사드릴게요.” 임하나가 답했다. 그러자 육현우는 한참 서있다가 말했다. “또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요.” “말씀하세요.” 그는 정장 바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임하나의 앞에 내밀며 물었다. “이거 본 적 있어요?” 임하나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건 그녀의 진주 팔찌였다! ‘왜 이 사람한테 있지?’ 육현우는 임하나의 표정을 관찰하며 다시 물었다. “본 적 있어요?” 임하나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 아뇨.” 육현우의 눈빛에 실망이 서렸다. “확실히 본 적 없어요?” “네.” 임하나는 너무도 긴장한 나머지 주먹을 쥔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그래요.” 육현우가 진주 팔찌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임하나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팔찌를 육현우에게 흘렸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저렇게나 귀중한 물건을 말이다! 임하나는 어릴 적 아주 병약했는데 임하은이 그녀를 위해 산꼭대기에 있는 절에 가서 그녀를 위해 받아 온 진주 팔찌였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임하나는 줄곧 몸에 지니고 있었는데 평소에는 소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친한 사람만 팔찌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임하나는 회사에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동료들은 더욱 그 팔찌의 존재를 몰랐다. 하여 육현우가 진실을 알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임하나는 저 팔찌를 어떻게 회수할지 고민했다. 오후에 이지영이 임하나에게 문자를 보내 몸이 괜찮아졌는지 물었다. 하여 임하나는 예의 상 답장을 보냈다. 임하나와 이지영의 사이는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간단하게 몇 마디 나누고 나서 대화는 끝났다. 이지영이 그때 또 문자를 하나 보냈다. [하나 씨, 대표님께서 병원에 가셨어요?] 같은 육현우의 비서 팀에 있는 동료로서 임하나는 이지영이 육현우에게 볼 일이 있다고 생각하여 솔직하게 답했다. [점심에 오셨어요.] 이지영이 바로 임하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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