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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임하나는 자신의 친구와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우는 일이 본인에게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건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황당한 이야기일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녀에게 발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임하나는 그제야 모든 예술은 생활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녀는 아직도 그날 숙소의 문을 열어 마주한 육성재와 소이현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날의 충격과 배신감으로 인해 아직도 등허리가 저릿했다. 그들은 임하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그녀가 언니 빼고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들이 제일 더럽고 치사한 방식으로 임하나의 가슴에 칼을 꽂은 것이다. “하나야?” 소이현이 멈칫했다. 순간, 임하나는 시선을 거두고 캐리어를 안쪽으로 밀었다. 임하나는 그들과 인사를 나눌 생각이 없었다. 그녀와 육성재는 이미 헤어졌고 소이현과의 우정에도 마침표를 찍었기 때문에 더는 두 사람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소이현이 육성재의 팔짱을 끼고 안으로 들어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소이현이 고개를 돌려 임하나를 향해 말했다. “일자리 찾았다며? 출장 가는 중이야?” 임하나가 고개를 숙여 ‘응’ 이라고 답했다. 이에 소이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 임하나는 캐리어를 끌며 밖으로 나오던 중 캐리어 바퀴 하나가 엘리베이터 틈에 걸렸다. 임하나는 안간힘을 쓰며 얼굴이 벌게지도록 끌었지만 캐리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그때 육성재가 손을 내밀어 가볍게 바퀴를 꺼냈다. “고마워.” 임하나는 낮은 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도망치듯 떠났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계속하여 아래층으로 향했다. 소이현이 육성재를 보더니 말했다. “하나 많이 변했네. 아직도 우리한테 화난 걸까? 하나 불러내서 제대로 사과하는 게 좋지 않을까?” “굳이 그럴 필요 있어?” 육성재가 담담하게 말했다. “이렇게 된 마당에 사과가 소용이 있겠어?” 소이현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성재야. 너 혹시 내 탓하는 거야?” 육성재는 말이 없었다. 그러자 소이현은 육성재의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빼내며 말했다. “육성재, 너 혹시 아직도 하나 못 잊겠으면 우리 일은 내가 하나한테 가서 해명할게. 내 잘못이잖아. 내가 책임질게. 하나는 착해서 분명 널 용서할 거야...” 그렇게 엘리베이터는 지하 2층에 도착하였다. 문이 열리자 조명이 눈부시게 빛났다. 소이현이 울면서 엘리베이터에서 뛰어나갔고 벤츠 한 대가 귀를 찢을 듯한 경적소리를 냈다. 소이현은 도로 중간에서 마치 몸이 굳어버린 것처럼 서서 두 손을 들어 눈앞을 막고 있었다. 그때 육성재가 빠르게 소이현을 잡아끌었다. 벤츠는 브레이크를 너무 급하게 밟은 나머지 타이어가 바닥과 마찰하며 연기를 내며 멈췄다. 운전사는 머리를 내밀어 그들에게 욕을 하고 나서야 자리를 떠났다. “죽고 싶어?” 육성재가 소이현의 팔목을 잡고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그가 단 1초만 늦었더라도 소이현은 차에 치여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소이현 역시 놀라서 창백해진 얼굴로 눈물을 흘렸다. 바들바들 떨면서 육성재의 품에 안겨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육성재는 한숨을 쉬고는 소이현을 안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울지 마...” 한편 임하나는 차를 타고 학교 숙소로 향했다. 언니의 집을 떠나 그녀가 유일하게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이었다. 원래 숙소에는 네 명이 묵었지만 4학년 마지막 학기라 다들 일자리를 찾고 나갔다. 임하나는 평소 여기에 묵지 않았지만 그녀의 자리는 여전히 존재했다. 배신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여기에 소이현 혼자 묵었다. 소이현의 집은 외지에 있었고 일자리 역시 아직 찾지 못 한 까닭이었다. 그날 밤 임하나는 숙소 건물 전체가 정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 있을 소이현이 걱정되어 함께 있어주려고 찾아왔던 것이다. 결국 문을 열자마자 그런 광경을 목격했지만... 지금은 소이현 역시 여기에 묵고 있지 않았다. 육성재가 밖에 그녀의 집을 마련해 주었다. 임하나는 한스 그룹에 입사하고 나서 바삐 지냈다. 오늘 언니의 아파트에서 두 사람을 마주한 그녀는 사실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육성재가 소이현에게 마련해 준 집이 언니의 아파트인 것도 모자라 같은 동이라니. 우연인지 고의인지 임하나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오늘 언니의 집을 나온 것이 정확한 선택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계속 거기에 있다가 두 사람을 마주친다면 그때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것이기에. 침대 정리를 끝낸 임하나의 폰이 울렸다. 임하은이었다. 전화를 받자 울음이 섞인 그녀의 말소리가 들렸다. “하나야, 너 무슨 일이야? 왜 언니한테 얘기도 안 하고 갔어? 너 어디야? 언니가 데리러 갈게.” 임하나는 침대에 기대며 말했다. “언니, 나 학교 숙소로 왔어. 실습 기간이 지나면 회사 직원 숙소 신청할 수 있어.” “집이 있는데 직원 숙소는 왜? 너 거기 있어. 언니가 금방 갈게...” “언니!” 임하나가 진지하게 불렀다. 그러자 임하은도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임하나는 서러움을 애써 삼키고 천장을 바라보며 활기차게 말했다. “언니. 나 다 컸어. 언니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언니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임하은은 현관 의자에 앉아 전화를 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너한테 기대고 싶지 않아. 내 옆에 있어주기만 하면 돼. 네가 몇 살이 됐든 너는 내 동생이야.” “고마워. 하지만 나 진짜로 독립하고 싶어. 언니는 날 응원해 줄 거야. 그렇지?” 임하은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응원 안 하면 어쩔래? 지금 당장 돌아올 거야?” “아니.” 임하나가 웃었다. 순간, 눈물이 소리 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릴 적부터 언니는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날 응원해 줬잖아. 언니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언니야.” 임하은은 한참을 말이 없었다. 비록 안간힘을 쓰며 눈물을 참았지만 임하나는 그녀의 훌쩍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언니. 나 돈 많이 벌어서 언니한테 큰 집 사줄게. 가게도 차려줄 거야. 그럼 언니랑 형부가 힘들게 일할 필요 없을 거야.” 임하은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 “큰 집도 가게도 필요 없어. 너만 행복하게 잘 지내면 돼.” “그래.” 임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게. 언니.” 전화를 끊고 나서도 임하나는 한참을 울었다. 똑똑똑. 갑자기 들린 노크 소리에 임하나는 눈물을 닦고 문을 열었다. 분명 낮이었던 밖은 갑자기 밤이 되어 있었고 육현우의 준수한 얼굴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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