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남자의 키스가 임하나의 몸 곳곳에 쏟아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폭풍과 같은 시간이 지나고 임하나는 남자의 따뜻한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임하나는 몸을 뒤척이다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낯선 느낌에 정신이 번쩍 들어 눈을 천천히 떴다. 정교한 이목구비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응? 대표님?”
임하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되더니 이내 뜨거운 어젯밤을 상기시켰다. 그녀는 눈을 부릅뜨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때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보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그녀를 더욱 숨 막히게 만들었다.
넓은 텐트 안에 이불은 어지럽게 널려 있고 육현우는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얇은 담요 하나만 허리춤에 덮고 있었다.
!!!
임하나는 세상이 무너진 것과 같은 충격을 받으며 그대로 멍하니 앉아있었다.
‘혹시 꿈인가?’
이제 막 회사에 입사한 지 보름밖에 되지 않는 실습생이... 대표님인 육현우와 잠자리를 하다니!
임하나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육현우의 손이 움찔거렸다. 아마도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임하나는 깜짝 놀라 얼른 옷을 입고 빠르게 현장을 벗어났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 급하게 나온 나머지 자신의 진주 팔찌를 베개 옆에 흘렸다.
밖은 아직 날이 밝지 않았다. 어젯밤 밝혔던 모닥불은 이미 꺼진 채 허공에 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주위에는 열몇 개의 텐트가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임하나는 맨발로 잔디를 가로질러 신속히 핑크색 텐트 안에 들어갔다.
임하나가 금방 누웠을 때 이지영이 몸을 뒤척이더니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
임하나는 놀라서 숨을 헉하고 들이켰다.
하지만 이지영은 그녀를 한 번 보고는 다시 눈을 감고 물었다.
“이렇게 일찍 어디 갔었어요?”
“저...”
임하나는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러나 신속히 머리를 굴려 답했다.
“화장실 좀 다녀오느라...”
이지영은 더 묻지 않았고 이내 그녀의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임하나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심장 역시 규칙적으로 뛰었다. 그녀는 눈이 빠지라 텐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날이 밝을 때까지 그녀는 뜬 눈으로 새웠다. 사람들이 거의 다 일어났지만 임하나는 아직 텐트 안에 있었다.
밖에서는 동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임하나는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만 이불 밖에 내놓고 멍하니 있었다.
이지영이 텐트 지퍼를 열고 안에 있는 임하나를 향해 말했다.
“하나 씨, 일어나요. 아침 먹고 등산해요.”
이건 회사의 워크숍이었다. 그들 몇십 명은 함께 풍경이 아름다운 산속에 5일 남짓하게 지내야 했다. 어제는 첫날이었는데 사람들은 긴 시간을 달려 도착한 이곳에서 저녁에 술을 마셨다.
임하나는 원래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동료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에 몇 잔을 마셨다.
하지만 그 몇 잔의 술로 인해 임하나는 텐트를 잘 못 찾아 들어가고 심지어 회사 대표 육현우랑 잠자리까지 하다니!
그 생각에 임하나는 또 머리가 아팠다.
“하나 씨? 하나 씨?”
이지영은 몇 번이나 임하나를 불렀지만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이지영은 신발을 벗고 텐트 안으로 들어가서 말했다.
“하나 씨. 무슨 일 있어요?”
임하나는 울고 싶은 마음에 울적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 괜찮아요.”
이지영이 손을 내밀어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세상에. 열나잖아요.”
“저 괜찮아요.”
임하나는 입술을 깨물고 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저 누워있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신경 쓰지 말고 등산 다녀와요.”
이지영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해열제를 꺼내 임하나에게 먹이고 나서야 동료들을 따라 등산하러 갔다.
밖에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임하나는 그제야 흐느끼며 울었다.
몸이 너무 힘들었다. 어젯밤 흔적이 아직 몸에 남아있었다. 후각이 너무 예민한 탓인지 임하나는 들숨과 날숨 사이 육현우의 향기가 맡아졌다. 또한 열이 났기 때문에 임하나는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같은 시간. 등산을 간 동료들은 이미 산 아래에서 집합했다.
차에서 내린 육현우는 여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꺅! 대표님 너무 멋져요!”
“평소에는 정장 입은 모습만 봤는데. 사복 입은 모습도 너무 멋있잖아요!”
“침이나 닦고 얘기해요.”
“하하하. 오늘 진짜 운 좋은 날이네요.”
육현우는 엄청난 분위기를 풍기며 서있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사람들을 훑어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다들 잘 주무셨어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네!”
육현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비서인 한승호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한승호가 그의 뜻을 알아채고는 얼른 입을 열었다.
“어젯밤 혹시 누가 대표님 텐트에 들어갔어요?”
사람들은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다들 밥그릇이 중요한 사람들이다. 비록 비서팀에 육현우의 미모에 사로잡힌 여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의 직업을 걸고 대표의 텐트에 들어갈 만한 용기가 없었다.
인정하는 사람이 없자 육현우의 미간은 더욱 세게 찌푸러졌다. 그는 진주 팔찌가 걸린 손가락을 들고 물었다.
“이건 누구의 것이죠?”
사람들은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본 적이 없음을 알렸다.
“혹시 누구의 것인지 아는 사람 있으면 나한테 알려줘요.”
육현우는 잠시 말을 멈추다가 한 마디 보탰다.
“상금 있어요.”
“또한...”
그는 다시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
“연말 상금 2배로 줄게요.”
그의 말을 끝으로 현장이 소란스러워졌다.
“2배라고?!”
“나 작년에 연말 상금 2천만 원 받았잖아요. 2배면 4천만 원? 너무 좋은데요?”
“저거 대체 누구의 것일까요?”
“평범한 팔찌 같은데. 그렇게 값어치가 나간다고요?”
“지영 씨는 혹시 알아요?”
“네?”
이지영은 정신이 번쩍 들더니 미묘한 표정으로 답했다.
“저도 모르죠...”
“그럼 지금부터 인원점검할게요.”
한승호가 호명하기 시작했다.
‘임하나’ 를 호명할 때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임하나 씨는요?”
한승호가 묻자 이지영이 나서며 답했다.
“하나 씨 아파요. 텐트 안에 있어요.”
“아프다고요?”
한승호가 어쩔 줄 몰라 육현우를 바라보았다.
육현우는 검은색 차 안에서 생각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진주 팔찌를 만지고 있었다.
한승호는 그를 방해하지 않고 계속하여 호명을 끝냈다.
“그럼 이제 떠납시다.”
노트를 닫고 차에 다가간 한승호가 물었다.
“대표님, 함께 가실 건가요?”
육현우는 심드렁한 태도로 계속하여 손에 든 팔찌를 만지더니 답했다.
“난 안 가. 네가 잘 이끌어.”
“알겠습니다.”
“지영아, 뭘 봐?”
안은실이 이지영을 끌며 말했다.
“빨리 가자. 선착순 10명에겐 상금을 준대.”
이지영이 순간 몸을 돌이켜 한승호를 향해 말했다.
“총괄 비서님. 저 하나 씨가 걱정이 돼서요. 돌아가서 하나 씨 케어할게요.”
“그래요.”